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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eath in Dec 31. 2021

2021, 조용히 완전히 영원히

영혼의 얼굴이 고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인위적으로 만든 시간의 분절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매년 이 때나 되어서야 뭔가를 진득하게 끄적거리게 된다. 의식의 흐름에 맡겨보는 올해의 단상.


너무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폭풍 같은 한 해였다. 권태를 느낄 겨를이 없을 만큼 뭔가가 자꾸 바깥에서 몰아쳐왔다. 두 팔 벌려 껴안을 수 있는 것 말고, 눈을 질끈 감고 온 몸을 잔뜩 부풀려 받아쳐야 하는 것들이었다.


한때 세상 모든 경이로운 것들이 홍수처럼 내게 밀려들어오던 시기가 있었다. 감각의 축제가 열린 것만 같던, 한껏 젖어들어 전부 내 것으로 흡수할 수 있었던 뜨거운 날들. 해가 저무는 버스 창가 커튼에 드리워진 빛의 무늬에서도 영감을 받을 수 있었던 시간들. 그 때는 아주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꽤 오래전처럼 느껴진다.


이제는 내가 재능을 죽이고 있는 건지, 내게 있던 재능이란 건 애매하기 짝이 없어 짐일 뿐이었는지. 그 미약한 재능이 사그라들어 끝내 사라져 버린 건지. 애초엔 내게 재능 따윈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게 되었다.


탈피를 위해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자주 그런 생각만이 밤을 적셨다. 그 밤이 끝나면 생활의 전장으로 나아가는 게 아찔하고 서글펐지만, 나날이 치열해지는 전투가 오히려 시간을 견디게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쟁취하는 삶 말고 그저 취하는 삶을 산다면 좋을텐데. 싸우자는 게 아닌데 싸워야만 할 때가 너무 많았다. 쟁취함으로써 얻는 긴박한 보람보다 취해 누리는 느슨한 기쁨이 좋은데 말이다.


전장은 여느 때보다 유독 깜깜하고 어수선했다. 진심이 통하는 싸움이 아니었다. 그러니 반작용처럼 취할 만하면서도 해롭지 않은 그 어떤 것을 찾아 유독 어슬렁거릴 수밖에.


실컷 취하며 사는데 마음까지 쓰게 되면 속수무책이다. 잘 취하고 잘 쏟는 내 마음은 너무 취약하다. 품은 애정만큼 고스란히 약점이 생긴다. 그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가치나 관념이든, 일이든, 그 무엇이든 많이 사랑할수록 온통 무르게 되어 스치는 바람에도 쉽게 상처받는다.


어느 여름밤에 친구랑 그런 얘기를 했다. 사랑한다는 것은 우뚝 선 것도 아닌 내가 바닥 없이 무너질 수 있다는 걸 실감하는 일이라고.


취하기만 하고 깊이 마음을 쓰는 것을 주저하게 된 게 그래서일까. 아니면 마음이 닳아빠져서 취할 줄만 알고 쏟아붓는 것은 못하게 된 건가, 가끔 멍해지기도 했다.


어딘가에 취할수록, 또 마음을 온전히 주진 못할수록 자기 자신이 궁금해진다. 내 영혼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영혼에도 얼굴이 있을까. 눈코 입이 달려있어서 표정이란 걸 지을 수 있을까.


내 영혼은 껍데기보다 아름다울까. 아니면 몸에 갇힌 걸 안도할 만큼 닳아빠져 보기 좋지 못할까. 사람들이 서로의 영혼을 감각할 수 있다면 삶은 더 충만해질까, 아니면 비참해질까.


새 것이 늘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라는 게 위안이 된다. 곱게 낡은 것의 아름다움을 새 것은 이길 수 없다. 이상하고 멋진, 좋은 할머니로 늙어가는 길에서 걸음마를 뗀 나는 최후의 영혼을 조용히 빚고 있다.


시류에 잠식되지 않고 귀한 것을 그러모아 영혼의 얼굴을 완성해가는 과정은 올해의 앨범으로 꼽은 이 앨범의 이야기, 마지막 노래와 결이 제법 맞는다. 제목으로 삼고 가사를 끝으로 남긴다.

끝날에 머금은 영혼이 제법 완전에 가깝기를, 영원에 부족함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볼 수 없는 2021년에 행복을 남겨두고, 안녕!



안녕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오늘 날씨만큼 흐렸나요 
화창하진 않았대도 자그만 행복이 깃들었길 바래요 
나의 하루는 여느 밤과 같았어요 
모든  미워지더니 그게 결국  후회가 되고 
전부   탓이 돼버렸어요 
삶이란  알다가도 모르겠죠 
내가 많이 사랑했던  
나의 목을 조르는 밧줄이 되더니 나를 매달고 싶대요 
알아요 나도 수없이 해봤어요 노력이라는  말예요 
근데 가난한 나의 마음과 영혼이
이제 그만해도 된대요
안녕 마지막 인사가 되겠네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이제 다신   없기에 
자그만 행복을 남겨두고 가요

- 너드커넥션, 조용히 완전히 영원히 (New Century Masterpiece Cine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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