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 지난 곡이지만 '골목길 접어들 때에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라는 노랫말이 있다. 이 노래를 부를 때 이 골목은 단순한 통행로가 아니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연결고리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오늘날은 골목길은 사람보다는 점점 더 자동차가 다니거나 주차의 공간을 바뀌고 있다. 그만큼 자동차가 많아지고 주차할 공간이 더 필요한 것은 당연한 편리지만 누군가를 만나는 골목길은 점점 퇴색되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하기에 왠지 모를 허전함이 남는다. 그리고 공짜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림: "2018 제4회 흰여울문화마을 골목예술제 흰여울 그리기 일러스트 공모전" 장려상)
하지만 2018년 현재 우리나라 인구의 60%는 골목길도 없고 마당도 없는 아파트에 살고 있다. (중략) 요즘 1인 가구는 원룸에 살게 되면서 8평 이하의 공간 안에 들어가게 되었다. 일 인당 사용 공간이 3분의 1로 줄어든 것이다. (중략) 지금의 1인 가구는 여유 공간을 찾을 수 없는 원룸에 갇혀 살고, SNS를 이용해 사람을 만난다. (중략)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는 공간을 즐기려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게 집값이든 월세든 카페의 커피값이든 마찬가지다. 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89~91쪽)
사람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다. 그것이 가족이든 친구이든 동료이든 관계를 구성하려면 시간과 장소가 꼭 필요하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하더라도 누군가의 얼굴을 보지 않고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필연이다. 어쩌면 매일 변화하는 기술 발전이 속도를 인간의 유전자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인지 그래서 관계를 만들 유형의 공간은 필요한 것인지 모르겠다.
학교
'마을이 학교다'라는 슬로건이 유행이다.
'요즘 세상에 마을이 뭐냐? 대도시에도 마을이 있냐'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학교와 마을과 무슨 상관인가. 담장으로 둘러싼 학교는 동네에서 별개의 독립 공간이다. 이곳에서 학생은 학교에서 안전하게 공부하고 교사는 안전하게 권위를 보장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미 더 이상 학교는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교실에서 교사의 권위는 그다지 존중받지 못하고 아이들은 좁은 공간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다. 줄 세우기는 여전히 남아있고 12년의 수형생활을 잘 견딘 후에야 자유를 얻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청년들은 다시 취업 전쟁에 뛰어들어야 한다.
학교와 교도소 둘 다 운동장 하나에 4~5층짜리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창문 크기를 빼고는 공간 구성상의 차이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 학교 건축은 교도소 혹은 연병장과 막사의 구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공간에서 12년 동안 생활한 아이들은 전체주의적 사고를 가질 수밖에 없다. (중략) 학교 건물은 저층화되고 분절되어야 한다. 아이들은 사람 몸의 50배 정도의 크기의 주택 같은 교사가 여러 채 있고 그 앞에 다양한 모양의 마당이 있는 공간에서 커야 한다. (중략) 그래야 이 아이들이 다양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가진 정상적인 인격으로 클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아이들은 거의 대부분 획일화되고 커다란 아파트 건물에서 산다. 적어도 학교에서만큼은 그런 전체주의적 '시설' 같은 건물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같은 책 51쪽)
같은 책 40쪽
마을의 미래
눈앞에 다가올 대한민국 미래의 암울한 예언을 두 개 꼽으라면 초고령 사회와 인구 절벽이다. 사람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지만 결국 공간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다. 노령인구가 많아지고 1인 가구가 많아지니 주거 양식도 변화할 수밖에 없다. 시장도 그에 맞는 상품을 만들어야 경쟁할 수 있다. 인구감소로 대도시 외곽 아파트 대단지의 슬럼화, 소유보다 공유를 선호하는 문화 현상을 다른 나라 사례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마을도 변화할 수밖에 없을 텐데 어떻게 되어야 좋은 마을로 남을 수 있을지가 숙제다. 가끔 뉴스에 나오는 나이와 상관없는 1인 가구의 고독사 문제는 이들의 주거 공간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연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동네 주거 공간은 어떻게 변화해야 좋을까?
지금 일본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지방 중소 도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이렇게 인구가 줄고 빈집이 많아지게 되면 인구밀도가 떨어지고 학교, 관공서, 미술관, 경찰서 같은 공공시설을 유지할 돈이 부족해진다. 그래서 현재 일본은 일정 인구밀도가 안 되는 마을의 사람들을 이주시켜서 도시를 폐쇄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일명 '콤팩트 시티 Compact City'라는 프로젝트이다.(같은 채 305쪽)
서울특별시 도시계획국 홈페이지
이 책은 건축의 시각에서 사람과 공간, 사람과 사람의 관계, 경제와 미래의 다양한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아무 유용하다. 가깝게는 내가 사는 동네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돌아볼 기회를 제공한다.
혹시 도시재생, 마을만들기, 열린 학교 만들기 등 조금 더 마을살이에 관심이 있는 시민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면 좋겠다. 그리고 사심이지만 우리 동네에 초대해서 바람직한 마을공간 이야기를 더 들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