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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l 16. 2024

생이별하듯 쓰는 휴지

   하얀색 모자를 쓰고 하얀색 유니폼 상의까지 받쳐 입은 중년 여성 한 무리가 승합차에서 내렸다. 잘해 보자며 손을 모아 화이팅을 외친 뒤 각자 뿔뿔이 흩어지는데 그 중 두 사람이 깎새 점방으로 직진했다. 새로 지은 아파트 분양 홍보 차 나온 이들이라는 건 그들이 건네 준 각티슈를 보니 알겠더라. 그들은 서류를 주섬주섬 꺼내 들더니 QR 코드를 인식시키면 각티슈를 무데기로 더 주겠다고 했지만 차를 댄 주차장에서 갑자기 깎새를 찾는 바람에 그들을 돌려 보낼 수밖에 없었고 각티슈 세 개만 겨우 받아 챙겼다. 허나 그것만도 가물에 단비마냥 오감할 따름이었으니.  

   아낀다고 아낀다고 해도 휴지가 늘 모자란다. 머리 깎는 점방에서 휴지 쓸 일이 무에 있을까 의아할 테지만 실상 한 달도 못 가 두루마리 한 롤이 금세 동난다. 개업 선물로 받은 휴지 팩이 바닥을 드러내자 만만찮은 휴지 가격에 흠칫 놀란 깎새는 더 싸게 파는 데를 찾아 인터넷 망망대해를 떠돌지만 녹록지 않다. 그런 차에 공으로 얻은 각티슈 3개는 천금에 비할 만하다.

   왜 써야 하는지 곰곰 따져 보고 나서야 각에서 티슈 한 장을 조심스레 뽑는다. 한 장이 끼치는 휴지 구매 비용 이연 효과를 최대한 누리자면 티슈를 살붙이나 다름없이 다뤄야 한다. 이런 절창이 좋은 본보기다.  


   한 칸 한 칸

   한 명 한 명

   가족이랑 생이별한다


   2020년 당시 제주도 한 초등학교 6학년이 쓴 동시다. '생이별'이란 단어를 들먹거리면서까지 드러내야 할 안타까움을 초등학교 6학년짜리도 아는데 반백년을 넘게 산 깎새가 모른다면 인생을 헛산 게고 휴지 쓸 자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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