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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l 25. 2024

어떤 고백

   깎새가 대학교 다닐 무렵부터 동경해 마지않는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던 한 선배, 이른바 '86세대'로 지칭되며 한때는 그 어떤 세대보다 전위적이었을 그가 어느덧 환갑을 넘겼다. 육십갑자가 일순하면 도통하는 바가 생기는 걸까. 아주 가끔 만나 담소를 나눌 기회가 생기면 선배는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인생 무상'을 토로한다. 거기에 이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개인적인 애환까지 묻어 나오면 깎새는 마치 자기 일인 양 딱해 어쩌지를 못하면서도 뭔가 깨닫는 바가 생기는 것이었다. 

   재차 강조하건대, 선배를 아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소한 깎새에게 있어서만큼은 그는 어떤 세파에도 흔들림 없는 견결한 우상이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선배 모습에서 프로페셔널의 진수를 봤고 선배처럼 돈 많이 버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렇게 번 돈을 친구, 후배들에게 조건 없이 베풀어 우애를 공고하게 다지는 모습은 그것이 풍요로운 인간 관계를 누리며 사는 삶의 전형임을 확신시켜 주는 건 물론이거니와 무엇보다도 무척 낭만적이어서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랬던 그가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얼굴을 하고서 내뱉은 고백은 깎새로서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환갑을 넘기면서 깨달은 게 있다면 머리가 다 큰 친구는 설령 불알동무라고 해도 훈수질을 못한다. 제각각 알아서 사는 녀석한테 순진했던 소싯적만 믿고 감 놔라 배 놔라 끼어들다간 왜 남의 인생 간섭질이냐고 우세 당하기 십상이다. 그러니 빌어먹든 훔쳐먹든 제 사는 대로 냅두는 게 상책이다. 때로는 제 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감수해서라도 필요하다면 친구도 정리하는 게 맞다.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 중대한 계기가 무엇인지 되우 궁금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묻지 못했다. 당사자가 겪은 별일을 당사자만큼 속속들이 내면화할 깜냥을 가진 타자란 세상에 참 드물어서 설령 저간의 사정을 듣는다 해도 '내 일'처럼 심중하게 받아들일 자신이 없어서였다. 깎새가 아는 지인 중에 유일하게 남 부러울 것 없이 모든 걸 다 갖춘 이의 입을 통해 듣게 된 고해성사를 그저 살면서 요긴하게 쓰일 통찰 하나쯤으로 깎새 인식 체계에 주름지게 한 것에 만족할밖에. 쌓여 가는 나이에 비해 성글어지는 관계망이라면 덜어내는 게 맞는 성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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