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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Jul 24. 2024

의미 있는 포기

   대중음악은 본디 예술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산업의 영역이기 쉽다. 그러니까 무에서 유를 낳는 창조의 영역이 아니라 유가 더 많은 유를 낳는 장사의 영역이다. 인재를 발굴해 자본을 투입하고 스타로 만들어 잉여 가치를 뽑아낸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튀어야 하겠지.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문학동네, 2011, 82~83쪽)


   28살짜리 청년은 고단한 배우의 길을 버리고 포토 디자이너로 진로를 끝내 변경했다. 직원이 세 명뿐인 스타트업 기업에 취직했지만 일 배우는 재미에 흠뻑 빠져 산다는 그의 얼굴엔 생기가 돈다. 연기할 때보다 더 짭짤하냐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무례한 줄 알아서다. 진로를 변경했다고 이상을 향한 그간의 열정마저 폄하해서는 아니 되니까.

   2년 전 고깃국에 동동 뜬 기름기마냥 유들유들하고 낭창낭창한 목소리와 딕션을 보유한 젊은 사내는 귀에 쏙쏙 박히는데다 속까지 후련하게 말할 줄 아는 매력적인 재주를 가졌었다. 인도네시아 신발 공장 운영을 도맡은 용이, 용이와 같이 법학을 전공했지만 인테리어 사업에 여념이 없는 완이 외에 말하는 데 정확성과 유창성을 겸비한 사람을 살면서 별로 만나 본 적이 없던 차에 모처럼 제대로 된 귀 호강을 오래 즐겨볼 요량으로 그 젊은이의 입을 계속 놀리게 옆에서 계속 부추겼다.  

   제5부두와 경부고속도로 입구인 구서 나들목을 잇는 번영로(혹은 부산 제1도시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문화도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부산에도 예술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고 항변이라도 하듯 예술대학교란 이름이 박힌 간판이 하나 보인다. 젊은이는 연기가 하고 싶어 그 학교 연극과에서 진학해 졸업까지 했다. 군 제대 후 부산의 한 극단에 들어갔으나 역병이 창궐하는 바람에 제대로 된 무대 한번 서지 못한 채 학생들을 상대로 한 금연 캠페인 연극 따위에 출연하는 알바나 전전하는 중이고 본격적인 배우생활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라고 밝혔었다. 

   그 뒤 1년 가까이 얼굴을 안 비추다가 작년 가을께부터 간간이 깎새 점방을 찾곤 하던 사내는 연기 말고 딴일하느라 바쁘다고 근황을 알렸지만 구체적으로 무얼 하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그러고 또 몇 달 지나고 나서야 사진 찍는 게 재밌다고 전한 것이다.

   "사진을 연기하듯 찍으면 더 예술적으로 나오겠구만."

   깎새가 해줄 수 있는 덕담은 거기까지지만 왜 자꾸 아쉬운지 모르겠다. 젊은 사내를 볼 적마다 노래 부르는 가수였다가 연기자로 슬쩍 자리를 바꾸는 아이돌이 왜 자꾸 겹쳐지는지 모르는 것처럼.

   가수에서 배우로 전업해 성공을 거둔 아이돌이 드물지 않다. 노선 변경에 성공한 그들의 스토리를 들어보고 있노라면 배우가 되기 위한 방편으로써 가수를 활용했다는 혐의가 짙다. 호소력 넘치는 노래 실력과 보다 선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현란한 율동이 연기 무대에서 요구되는 대사와 동작이랑 도긴개긴, 피장파장이라 치면 물 들어올 때 노 젓듯 아이돌 가수로 반짝 흥행을 타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터득한 무대 체질을 영상 매체에다 고스란히 옮김으로써 인기 가도를 이어가는 그들은 참으로 영악하다. 그들 대부분이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연기 수업을 꼬박꼬박 받으면서 연기 감을 익혔다고 극구 강조함으로써 성공이 결코 운이 아닌 실력임을 강조하는 언론 플레이도 연기의 일환이라고 치면 그들의 영악함은 의외로 치밀하기도 하고.  

   하지만, 대학 시절 세 번씩이나 연극 무대에 올랐던 아마추어 배우 출신이라서, 개뿔도 몰라서 더 래디컬한지 모르겠지만, 연극 무대에서 체득한 연기의 진수로 무장된 자야말로 진짜 배우라고 확신하는 바라 이른바 아이돌 스타의 연기력에는 늘 회의적인 물음표가 달릴 수밖에 없다. 연극만이, 연극이라야 가능한 극적 긴장감에 도취되어 본 적도 없으면서 감히 배우라고 명함을 내미는 치기는 연기를 흉내내려고 하는 엔터테이너한테나 어울리는 경박함이다. 그런 자는 연극 한 편을 무대에 올리기 위해 숱하게 흘린 피, 땀, 눈물의 과정을 경험해본 적 없으면서 천민자본주의 하에서 떵떵거릴 부와 명예를 얻기 위한 기능적 수단으로밖에는 취급하지 않는 저열한 연기관을 소유할 공산이 크다. 하여 솔직히 연극 무대를 단 한 번도 밟지 않은 자를 배우라고 인정할 마음은 추호도 없다. 자기 연기에 확고부동한 철학을 담자면 눈물 젖은 빵맛을 모르면 아니 되고 그런 의미로 척박하기 그지 없는 한국 연극계를 꾸역꾸역 추동하는 이 시대 모든 연극배우들은 언제고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야 한다.

   더는 배우로 나설 뜻이 없는 낌새가 아쉽지만 신기원으로 내딛는 의미 있는 포기이기를 바라며 젊은 사내를 응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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