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께 상갓집을 찾은 깎새는 흠칫 놀랐다. 조문을 마친 뒤 상주가 안내해 준 자리에는 대학 동문 선배들이 포진해 있었다. 처음엔 낯선 얼굴투성이라 어찌나 서먹서먹하던지 바늘방석에 앉은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그러다 먼저 알은체하며 말 걸어줘 '그때 그 선배들이로군' 기억이 되살아나자 그제서야 밥술을 제대로 뜰 수가 있었다. 헌데 그때 그 선배들임을 알자마자 이번에는 예고도 없이 훅 밀려오는 당혹감에 부쩌지를 못했다.
그 동문 모임 기수로 따지자면 깎새는 13기, 선배들은 4~6기이니 깎새보다 연배가 7~9년으로 한참 높다. 이들은 환갑, 진갑이라는 반환점을 돌아 인생 후반생에 몰두하는 이른바 베이비부머다. 힘들고 버거웠던 현실의 질곡을 넘고 넘어 상갓집에 모여 그들이 겪어온 인생 역정을 엊그제 시청한 통속 드라마를 씩둑대듯 도란도란 풀어낸다 한들 전혀 어색하지 않을 나이가 된 것이다. 오히려 그 여유자작한 모습에서 뚝뚝 묻어나오는 연륜이 빛이 날 지경이었다.
허나 세월의 더께가 너무 진 까닭일까. 깎새는 그날 본 그들 얼굴에서 학창 시절 똑바로 쳐다볼 자신이 없어 곁눈으로만 겨우 일별했던 선배 얼굴들을 소환할 수가 없었다. 그 시절 얘기를 나누긴 하지만 정작 그때 그 사람인지 분간이 안 가는 당혹감이란! 그렇다. 그들이 늙어감을 그렇게 확인하는 건 참 속상한 일이다. 깎새 자기도 따라 늙어가는 처지이면서 말이다.
똑같은 부고장을 받지 않는 한 앞으로 그들을 볼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 더 안타깝다. 그들의 노화를 조금이라도 더디 느낄 참이면 그들이 찾는 상갓집만 졸졸 따라다니면 될 일이라 하는 소리다. 틀린 말은 아니로되 어감이 어째 불편하고 깎새 형편에 썩 녹록한 해법 또한 아니다. 그러니 그저 건강하게 늙어서 선배의 위용을 영원히 간직해 주길 바랄 뿐이다.
혹 이 글을 볼 선배들을 위해 위로 아닌 위로를 전할 겸 조선 시대 유학자 김창흡이 늙음에 대처하는 정신승리 한 대목을 남기고자 한다. 신체 기능이 예전만 못해도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다는 선언, 늙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여기느냐가 중요한 핵심이다.
앞니 하나가 갑자기 빠진 김창흡이 말했다.
"얼굴이 망가져서 만남을 꺼리게 되니 차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발음이 부정확하니 침묵을 지킬 수 있으며, 기름진 음식을 잘 씹지 못하니 식생활이 담백해지고, 글 읽는 소리가 유창하지 못하니 마음으로 깊이 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