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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Nov 16. 2024

여자족을 알고 싶다

   배우로 이루어진 배낭족이 유럽을 유람하고 다니는 프로그램을 알고 있겠지? <텐트 밖은 유럽>이란 대제목 아래 <텐트 밖은 스페인>, <텐트 밖은 이탈리아> 식으로 스핀오프 시리즈를 이어가면서 등장인물이 매번 바뀌는 것도? 그럼 묻겠다. 당신은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배낭족 시리즈를 선호하는가 여자 배낭족이 더 보기 좋은가?

   의도된 연출일지 모르겠으나, 만약 의도된 연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면, 낯선 세계를 똑같이 직면했는데도 반응이 남자족보다 훨씬 아기자기하며 질박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여자족은 배우로서 천부적 재능을 타고났다고밖에 볼 수 없는 것 아닌가? 물론 깎새 개인적 견해이긴 하지만 그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여자족은 남자족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더 따뜻하면서 솔직했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 이유가 뭘지.

   여성국극을 소재로 한 드라마 <정년이>를 올해 본 드라마 중 최고로 치는 데 서슴지 않는 깎새다. 중요 배역 중 남자가 단 한 사람도 없이 드라마가 꿋꿋하게 잘만 굴러가는 게 일단 대견하다. 주인공이 때론 밉지 않은 빌런으로 행세하거나 때론 주위 동료들과 연대해서 예술적 성취를 이뤄가는 스토리는 한 위대한 인물에만 초점을 맞춘 성공담이라기보다 그녀와 관계 맺은 여자족 모두의 성장기이기에 남자족의 그것보다 인상적인데다 호소력까지 훨씬 짙다. 드문드문 퀴어 코드 냄새를 풍기지만 브로맨스보다 덜 상그러운 깎새다. 

   여성국극은 전성기가 짧았다고 한다. 1950년대 후반부터 내리막길을 걷는데 영화·라디오가 등장한 시대적 영향을 받은 탓도 있지만 가부장적 이데올로기가 결정적 원인이라고 꼽은 칼럼을 읽었다. '여성국극은 기형적인 통속문화'라는 이미지가 형성돼 정부의 모든 전통예술 지원 정책에서 배제돼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단다(정유진 논설위원, <여적-잊혀진 여성국극>, 경향신문, 2024.11.01 에서).깎새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주목했고 좀 더 파헤쳐볼 작정이다. 여자족을 옥죄었고 여전히 옥죄고 있는 전근대적이고 야만적인 사상의 실체가 무엇인지 남자인 깎새가 남근으로 상징되는 성적 우월성을 분질러 버리고 탐구해 볼 작정이다. 

   <할머니 가설>이라고 들어봤는가. 미국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스가 1957년 과학 저널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제시했다는 가설로 포유동물 중 드물게 인간 여성에게 나타나는 폐경 현상에 대한 진화적 해석이라고 했다. 수전 P. 매턴은 『폐경의 역사』(조미현 옮김, 에코리브르, 2020)라는 책에서 생식의 짐에서 벗어난 할머니의 존재가 인류 집단의 존속에 도움을 주기 때문(나이 든 포유류 암컷은 직접 아이를 낳기보다 생식을 중단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이어받은 아이(주로 딸)가 낳은 손주를 돌보는 일이 집단을 든든하게 번성시키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된다는 것)에 일정 나이가 지나면 아예 더 이상 번식하지 못하도록 하는 진화적 특성이 고착됐다고 했다. 그런 할머니 역할은 무려 3만 년 전부터 사회적으로 그 의미가 지대했다는 글도 있다.


   할머니들은 자기의 자녀가 아니라 자기의 자녀가 낳은 자녀 즉 손자손녀를 돌보고 자녀 양육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지식을 전수함으로써 가족 집단을 번창시켰다는 것이지요.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약 3만 년 전 현생인류의 조상인 호모사피엔스(크로마뇽인)는 그 이전의 네안데르탈인에 비하여 노년층의 비율이 무려 다섯 배나 증가했음을 밝혀낸 것이지요. 노인 세대의 비율이 급증한 시기는 바로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있었던 시기였으며 인류가 장신구를 사용하고 동굴벽화를 그리고 장례 행위를 시작한 때와 일치한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 나이 든 세대의 경험과 역할이 현생인류의 양적 팽창과 질적 발전을 가져온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할머니 역할은 그 사회적 의미에 있어서 오늘날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지요.(신영복)


   여자족은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된다. 할머니 역할을 담당하는 유전자가 잠재하고 있다가 나이가 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 활성화되어 자연스럽게 발현되는지 모른다. 어린아이가 할아버지보다 할머니를 더 선호하는 까닭은 노인냄새가 덜 나서가 아닐 게다. 

   깎새는 여자족을 진지하게 알고 싶어 한다. 남자족보다 진화적으로 결코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고등한 여자족, 그럼에도 지난했고 여전히 지난한 그들의 역사와 현실을 알아야겠고, 남자족이 이해할 줄 모르는 그들만의 심리를 들여다보고 싶으며, 마초적인 남자족에 비해 상대적으로 세련되면서 섬세한 여자족 특유의 유대감도 역시 연구 대상이다. 재차 강조하건대 일부 남자족이 아직도 그들의 전유물이라고 착각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라는 질곡도 꼭 파헤쳐 보고야 말리라.  

   그들을 무지하게 사랑하기에 여자족을 미주알고주알 알고 싶어 환장한 깎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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