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대통령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에서 부산일보 기자가 “흔히들 사과를 할 때 갖춰야 할 요건이 몇 가지 있다고 한다. 어떤 부분에 대해 사과할지 명확하고 구체화하는 것"이라면서 대통령 담화가 "다소 두루뭉술하고 포괄적으로 사과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니 “회견을 지켜보는 국민들이 대통령이 뭐에 대해 사과했는지 어리둥절해할 것 같다”며 돌직구를 날렸다.
기자 질문 내용 중 "사과를 할 때 갖춰야 할 요건"이란 대목에서 기억 하나가 불쑥 떠올랐다. 급하다고 돈 빌려가선 안 갚는 국민학교 동기를 성토하는 글로 동창 모임 SNS가 한때 떠들썩했더랬다. 글을 쓴 이와 한두 번 만난 적이 있어 관심이 동해 읽어봤더니 가게 월세와 고정비로 나가야 할 금쪽같은 돈을 빌려줬다나. 다른 사람도 아닌 국민학교 동기가 통사정하니 안 빌려줄 수가 없었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고 보니 머리 검은 짐승은 구제를 말라는 의미를 이제서야 깨달았다고 통탄했다. 그러면서 친구 간 신뢰를 저버린 인간 말종은 공동체 밖으로 아예 추방시켜 경계를 삼아야 한다고 읍소했다.
빌려준 쪽 일방적 주장만으로 단정짓기엔 사건 전말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만 견원지간으로 전락해 버린 본질을 채무불이행으로만 국한한다면 관계를 복원할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다. 채무자가 하루라도 빨리 돈부터 갚되 상환했다고 해서 과오까지 종지부를 찍었다고 손쉽게 여겨서는 절대 안 된다. 엎지른 물을 주워 담는 심정으로 정성을 기울여 진정한 사과를 건네 성근 우정을 다시 한 땀 한 땀 꿰매는 노력을 병행해야 겨우 일단락될 것이다. 어쩌면 돈 갚는 것보다 더 지난할 게 틀림없지만 그것만이 동기들 사이에서 땅에 떨어져 진창길에 나뒹굴고 있는 우정과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책이라는 걸 채무자가 옆에 있다면 부산일보 기자처럼 돌직구를 날리고 싶다. 마침 사과하는 방법하니까 떠오르는 게 있다. 참고할 만하다.
<사과의 충분조건 6가지>
1. 사과한다고 말한 뒤 '하지만'이나 '다만' 같은 말을 덧붙이지 마라. 변명으로 들린다.
2. 무엇을 잘못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혀라. 과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
3. 책임을 인정한다는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라. 사과를 했는데도 상대방이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사과에 책임 인정이 들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4. 충분한 보상책을 제시하라. 피해자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면 더할 나위 없다.
5.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 앞으로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6. 쉽지 않지만 용서를 청하라. 그래야 용서받을 수 있다. (김호, 정재승, 『쿨하게 사과하라』, 어크로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