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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일 Nov 24. 2024

시 읽는 일요일(180)

봄날은 간다

        손로원 작사/박시춘 작곡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부산 국제시장 한 다찌집에서 이 노래를 불러주던 선생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10여 년 전 민락포구 포장마차촌에서 술장사할 무렵 이웃한  <아! 그집> 이모도 세트로 떠오른다. 선생을 기억하며 썼던 글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했다. 


   사연 하나쯤 가슴에 품고 술잔 기울이는 손님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자면 꽁꽁 동여맸다고 여긴 멜랑콜리가 어떻게 풀렸는지 불쑥 심사를 뒤흔들어 놓는다. 그럴 바에야 그들과 마주앉아 터놓고 수작이나 부릴까 하는 오지랖이 대책없이 들고 만다. 

   그렇지 않아도 순정덩어리인 맞은편 《아!그집》 이모는 무엇이 그리도 울적한지 엊저녁에는 라디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자락에 기대 사슴같이 깊은 눈망울에 눈물이 한가득 고였고 귀에 익은 가락에 나는 나대로 잠시 회상에 잠겼더랬다. 선생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시는지, 흥에 겨우면 여전히 이 노래를 부르시는지, 자취는 사라졌건만 노래는 생생하다.


   누구는 이 노래가 떠나버린 연인을 그리워하는 사모곡思慕曲처럼 들리기도 하고, 인생의 화양연화를 추억하는 노래로도 들릴 수 있댔다. 혹은 흘러가 버린 세월을 한탄하는 노년의 회고담처럼 읽힐 수도 있고, 자신이 결혼식 날 입었던 연분홍 치마와 저고리를 아들 결혼식 때 입고 싶다는 유언을 남긴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지은 사모곡思母曲일 수도 있다.(김진국 문화평론가)

   아무려면 어떠랴. 봄날이 던지는 의미야 여러 가지이고 자기 식대로 해석하면 그것으로 그만일 터. 어쩌면 작사가도 그것을 염두에 두고 노랫말을 지었을지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애수가 잔잔히 흐르는 노랫말은 정말 곱다. 또 그윽하다. 그러니 시인들도 좋아하지.(2009년 '시인이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 압도적 1위))


https://www.youtube.com/watch?v=uTFsVXsgvf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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