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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버슬립 May 27. 2024

노션남매가 커뮤니티 맨땅에 헤딩하는 이유

작은 조직 인터뷰 #6 힐링가라지&노션남매 박현태 대표님

이번 인터뷰 주인공은 지방(부산)에서 노션남매라는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며 힐링가라지라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박현태(헌트)님을 인터뷰했습니다. 2년간 적자를 보면서도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는 이유, 노션남매라는 작은 성공으로 마주한 새로운 기회 등 지방이라는 약점을 극복하며 새로운 유형의 커뮤니티를 만들어가는 힐링가라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힐링가라지 소개

힐링가라지(HEALING GARAGE)는 도전하고 성장하고 싶은 크리에이터를 위한 공유작업실이자 사이드 프로젝트입니다. 개인 작업 뿐만 아니라 다양한 협업을 통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어갑니다. 

▪️디스코드 커뮤니티 : https://discord.gg/4nNHcd6gvQ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healing_garage/ 
▪️홈페이지 : https://healinggarage.oopy.io/


동티모르 오지에서 시작한 사회생활


Q.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대학생 때부터 창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늘 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새로운 거, 좋아하는 걸 하고자 하는 성향이어서 남들과 다른 길을 가려고 계속 꿈쩍꿈쩍했던 것 같아요.

대학교 4학년 때 졸업하고 어떤 걸 할지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았는데 그때 막연히 해외에 나가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그 당시에도 해외에 나가려면 여행을 가야 하나, 아니면 해외에 가서 창업을 해볼까 아니면 어학 연수를 갈까 등 고민했는데요, 자아실현을 해보자는 생각에 해외 봉사활동을 나게 되었어요. 


Q. 어느 나라로 갔나요?

동티모르예요. 처음에는 국제개발이라는 개념 자체도 잘 모를 때여서 저는 그냥 비행기 끊어서 오지 날아가는 게 해외 봉사인 줄 알았어요. 인터넷에 해외봉사를 검색해 봤더니 KCOC라는 국제협력 민간협의회, KOICA 코이카라고 하는 한국국제협력단 등 기관과 제도들이 있는 걸 알게 되었어요.


한 NGO에서 해외봉사단 사업 설명회를 한다고 해서 무턱대고 대구에서 티켓 끊어서 서울 올라갔다 듣고 보니 ‘내가 몰랐던 길도 있구나, 이런 제도 안에서 가면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지원했어요. 전공이 광고 홍보 쪽이다 보니 1년 동안 서울에서 일한 후에 NGO 봉사단원으로 동티모르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Q. 동티모르는 상상이 안 가는데, 2년 동안 동티모르에서 루틴은 어땠나요?

제가 처음에 갔던 동티모르 활동지는 시골이었어요. 수도에서 제일 먼 동쪽에 있는 지역이었는데 사실 거리가 한 220km 정도밖에 안 되거든요.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걸로 치면 2시간 정도인데 거기는 버스로 13시간 가야 하는 거리였어요.


말 그대로 대자연 속에서 살았어요. 보통 루틴은 아침 8시에 출근을 해서 오전에는 지역 개발 사업들을 모니터링하는 업무를 했어요. 현지 직원분 뒤에 오토바이 얻어 타고 1시간씩 걸리는 옆 마을로 넘어가서 그분들이 개발 사업을 잘하고 있는지 이런 현황들을 모니터링했는데요,

진행했던 사업 중엔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이 있어요. 한국에선 소액 대출 사업이라고 불리는데요, 예를 들면 100불 정도의 대출을 해드려서 이분들이 수익 사업을 할 수 있게 일종의 저금리를 제공하는 거죠.


Q. 지역 개발사업은 실제로 실효성이 있었나요?

사실 보는 시각마다 되게 차이가 커요.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이 되게 의미 있다고 보는 분들도 있고 '고리대금의 하나가 아니냐?' 이렇게 보는 시각도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작은 거 하나라도 어쨌든 현지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니 의미 있다고 봐요.


다른 사례로는 가축은행 사업이라는 걸 했었는데요, 그 나라의 주 가축들이 돼지, 소예요. 돼지가 생각보다 고부가가치 동물이에요. 가축은행 사업을 통해 현지 분들에게 새끼 돼지를 구입할 수 있는 자금을 대출해 줘 대출을 해드리고 돼지를 키워서 돼지를 새끼를 치든 판매를 하든 해서 수익을 발생시키도록 하는 거죠. 그 사업에 몇 년 동안 참여하신 분들은 집에 돼지가 몇십 마리 있는 분들도 계셨어요.


예산을 받아서 사업을 진행하는 구조다 보니까 후원자 측에 보고해야 해요. 오후에 와서는 주로 행정 서류를 작성했어요. 당시 현지에서는 많은 사업을 했었어요. 마을 기업 사업이라고 해서 현직 여성 기업을 조직을 해서 현지 재료로 만든 쿠키를 수도 마켓에 납품하는 그런 사업도 하고 우리나라 전통주처럼 현지 전통주를 상품화해서 수도에 판매하는 유통 사업도 했어요. 현지 고등학생들에게 동화 구연을 교육해서 더 멀리 있는 지방에 있는 초등학생들한테 교육하도록 돕는 사업도 하고요. 


Q. 가장 기업에 남았던 사업이 있나요?

동티모르가 원래는 부족 국가였어요. 지역마다 쓰는 언어들이 다 달라요.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말을 이제 공용어로 쓰고 있는데 어른들은 공용어를 잘 모르세요. 지역마다 언어가 다르다 보니 40여 개 언어가 있는 문제가 있는 거죠.


당시 봉사단원들한테 주어지는 사업 공모전이 있었는데요 국립대학교 학생분들과 같이 팀을 맺어서 지역 언어로 된 이야기를 발굴해 동티모르어랑 포르투갈어 두 가지 언어로 된 동화책을 발간하는 사업을 했어요. 동티모르에는 현지어로 된 책 자체가 거의 없었는데 현지 스토리를 발굴하고 책으로 엮어낸 거죠. 


Q. 이 프로젝트가 현태님께 어떤 의미였나요?

이 프로젝트가 저에겐 첫 번째 사업이라고 봐도 돼요. 사업 기획부터 수행, 최종 보고, 현지 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을 다 맡아서 했으니까요. 제가 자부심 갖는 게 한국인 중에서도 동티어를 되게 유창하게 하는 쪽에 속해요.

Q. 동티모르 어는 배워서 갔나요?

그 나라 가서 배웠어요. 진짜 작은 사전 종이책 하나 들고 갔어요. 단어가 3천 개밖에 없거든요. 그거를 달달 외웠어요. 마지막 코이카에서 일할 때는 우리나라 대사님과 동티모르 총리님이 면담하는 자리였는데 휴가간 통역관 대신 동시통역을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 정도로 동티모르에 몰입했었어요. 


Q. 한국 돌아와서 현타가 왔다고 들었어요.

네, 맞아요. 박현태는 아직 2016년의 박현태였던 것 같아요. ‘내가 왜 한국에 있지’ 이런 생각들이 되게 강해서 한 두세 달을 집 밖에 안 나왔던 것 같아요. 현지에 너무 깊게 몰입되다 보니 한국이 오히려 낯선 나라 외국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 당시에는 우울증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은데 시간이 흐르고 보니 우울증에 가까웠던 거 같아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동티모르로 나갈 수 있는 자리가 뜬 거예요. ‘이건 내 자리다’라는 생각이 확신이 들면서 채용 과정을 거쳐 코이카 해외 파견직으로 다녀왔어요. 


Q. 코이카에서 하는 업무는 어땠나요?

동티모르 사무소에서 일했는데요, 한국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일하는 방식, 업무수행 방식이 한국 그 자체였어요. 현지 직원분들이 계시지만 현지 커뮤니티를 만나는 일들은 거의 없었기에 괴리감 있기는 했어요. 하지만 그랬기 때문에 다시 돌아왔을 때 이전만큼 한국 돌아와서 어려움은 없었던 거 같아요.


동티모르 사무소에 소장님을 비롯한 부소장님, 코디네이터, 인턴, 현지 직원 등 20여 명 정도로 사무소가 구축되어 있는데요, 전반적인 총괄 예산 관리 업무를 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그전 NGO에서 일했을 때는 모든 업무를 다 할 수 있었지만 시스템적으로 부족하다고 느꼈는데 두 번째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기관에서 일을 하다 보니 업무 시스템, 의사결정 라인 등에 대해 명확하게 알게 됐죠.


Q. 언제 한국으로 돌아왔나요?

계약이 끝날 때가 코로나가 유행하던 시기였어요. 동티모르가 되게 작은 국가지만 당시 코이카 현지 소장님이 열정 넘치는 분이셔서 20명, 30명이던 봉사단원을 88명 규모로 키웠어요. 코로나 때는 그 인원들이 한날한시에 한국으로 다 대피시켜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마치 작전처럼 80명을 동시에 2월에 귀국 보내고 저는 이제 7월에 귀국했어요. 


Q. 개인적으로 혼란스러울 것 같은데요. 계약이 끝나는 시기에 한국에는 코로나라는 상황이 왔었고.

그런 부분도 있긴 했는데 저는 그간 모든 일이 다 계약직이었잖아요. 처음 인턴도 1년이었고 봉사단원, 코이카 근무도 계약직 있었고요. 이런 상황이 저를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게 했어요. 한 조직에 오래 있었으면 분명히 안일하게 지냈었을 거예요. 오히려 계약직으로 정해진 기간 안에 할 수 있는 최대 퍼포먼스를 내자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노션남매라는 작은 성공


Q. 한국에 와서 커뮤니티로 창업을 한 이유가 궁금해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일 만한 장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의 저라면 지금 뉴스레터 하시는 것처럼 나의 이야기를 글로 써서 팔로워를 모아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만들고 실제 공간까지 이어가는 방식으로 했을 거 같아요. 그때는 똑똑하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사람들이 모이려면 뭐가 필요하지? 공간이 필요하겠네’, ‘그럼 공간으로 사람들이 모였을 때 가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게 뭘까’라고 생각하다가 공간을 같이 공유하자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Q. 보통은 수익 구조을 먼저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 부분은 나중에 고려하자는 방향이었나요?

그 당시에도 염두는 하고 있었지만 사람이 안 모이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을 생각했던 이유는 제 생각을 어떻게 하면 남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딥하게 해보지 않았던 것 같아요. SNS를 그 당시까지 잘 못 다루기도 했고요. 그때도 활용할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가 있었을텐데, 너무 무지하면서 온 선택일 수도 있다고 봐요. 


Q.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 시작한 이유도 궁금해요.

원래는 창업을 서울에서 하려고 준비했었어요. 서울에서 시도했으면 지인들도 많으니 사람 모이기도 쉬울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들과 그다음 과정을 만들어 가는데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국제개발이라는 비슷한 분야에 있던 사람들이고 이야기를 하다보면 계속 국제개발 분야 일들이 자꾸 끼어들어오더라고요.


새로운 걸 고민하던 차에 친누나가 있는 부산에 한달에 한 번씩 놀러갔어요. 그때 부산이 생각보다 큰 도시고 나를 아는 사람도 아무도 없으니 '박현태라는 사람, 내가 가진 비전으로 한번 승부를 봐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안 되더라도  손해(낮은 임대료, 물가)가 적겠다 생각해서 부산을 선택했어요.

중앙동에서 처음 시작한 힐링가라지 공간 모습(전 반창고) 


Q. 공간을 처음 시작한 곳이 어디였나요?

중앙동이라는 동네에서 반창고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어요. 당시 15평 공간을 임대해 공간을 구성했어요. 인스타그램을 데일리 리포트처럼 올리던 때였는데요, 개인 인스타그램에 의자 조립하는 동영상을 올리면서 부산 공유 작업실 이렇게 해시태그를 달아 올렸어요. 한 대학생이 그걸 보고 DM을 보냈는데 당시 DM 기능도 몰라서 확인도 늦게 했어요. 뒤늦게 보고 연락을 해서 그렇게 첫 번째 멤버가 생겼어요.


그 친구한테 홍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고 힐링가라지 인스타그램 계정을 별도로 만들 당근마켓에도 올리기 시작했어요. 8개월이 지나서 자리가 다 채워졌어요. 노션남매를 같이 하는 써니 님도 그렇고 여기 있는 분들 다 초기 때부터 계셨던 분들이세요. 


Q. 커뮤니티 운영은 어떻게 운영했나요?

힐링 가라지를 만들고 1년 동안은 뚜렷한 목표가 없었던 것 같아요. 한 8개월 되는 시점부터 뭐가 잘못됐다는 걸 스스로 느꼈어요. 3개월 동안 매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고민을 했어요. 하루는 멤버분들을 모아놓고 ‘여러분들이 힐링 가라지 들어오실 때 어떤 걸 바라고 들어오셨냐’ 묻고 편하게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만들었어요. ‘이런 거 저런 거 한다 해놓고 안했다’는 얘기들이 나오는 거예요. 그때 잘못된 걸 확실히 깨닫고 ‘결국에는 내가 판을 깔아야 하는구나, 이렇게 공간만 만들면 저절로 될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깨달았어요.

22년 10월에 멤버분들과 같이 워크숍을 하며 ‘아마두’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발표했어요. 만약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지 않고 하지 않겠다고 하면 문 닫아야겠다 각오를 했는데, 멤버분들이 되게 재미있을 것 같다며 같이 해보자고 하는거예요. 그때 전환점을 가졌고 ‘노션 남매’ 아이디어도 그때 써니님께 제안해서 함께 시작하게 되었어요.


Q. 아마두 프로젝트는 어떤 프로젝트였나요?

아마추어가 라틴어로 아마또르라고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 원래 뜻이래요. 자기만의 재능과 경험을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서 대중들에게 공유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보자는 의도로 기획했어요. 예를 들면 저 같은 경우에는 노션 수업을 짜서 진행한다거나 다른 분들은 애니어그램을 주제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거나 작가님 같은 경우 사진 수업을 하는 방식으로요. 클래스101의 일반인 오프라인 버전인 거죠. 


Q. 수익구조는 어떻게 되나요?

운영비는 따로 받지 않았고 참가자들에게 참가비만 받았어요. 참가비는 호스트분들이 다 가져가도록 하고요. 제가 안가져가더라도 수익을 통해 호스트들이 참여하는 이유가 명확해야 된다고 생각했고 작년 말까지 진행을 했었어요.  


Q. 작년 기준으로 현태님은 경제적으로 마이너스였네요.

맞아요. 작년까지는 중앙동에서 같이 넘어오신 멤버들밖에 없었어요. 힐링 가라지 자체는 2년 동안 계속 마이너스였어요. 현재는 노션남매에서 수익을 벌고 있고 수영으로 넘어와서 작년 12월부터는 입주 문의가 늘면서 자리를 늘려가고 있어요. 


Q. 노션남매는 어떻게 시작해서 성장했나요?

써니님은 부산 콘텐츠 코리아 랩에서 진행하는 커뮤니티 메이커라는 수업에서 만났어요. 자기 PR을 잘 못하는 성격이라 힐링가라지 홍보를 위해 심장 벌렁벌렁하면서 ‘이런 걸 하고 있는데 한번 놀러 오실 분’ 이렇게 PR했는데 정작 커뮤니티에 관심 있다고 수업 들으러 온 사람들 중에 아무도 안 오더라고요. 유일하게 왔던 친구가 써니였어요. 그때부터 같이 팀빌딩에서 '브릿지 매거진'이라는 뉴스레터를 발행했어요. 잘 안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써니님한테도 '우리 잠깐 브리치 내려놓고 돈 되는 거 한번 해보자'고 제안한 게 노션남매였어요.


당시 인스타그램에 노션 전문 계정이 1개 정도였어요. 처음 이야기를 꺼내고 3일 만에 바로 시작해서 보름 만에 팔로워 300명을 모았어요. 텀블벅에서 클라우드 펀딩도 진행하고요. 펀딩 끝나며 팔로워 1천명, 펀딩금액 약 1200만원을 달성했어요. 전 SNS 콘텐츠를 만들어본 적이 없던 사람이었는데 노션남매를 하며 시그니처 컬러, 카피라이팅, 콘텐츠 배치 등 포장하는 법을 배웠어요.


Q. 수익화는 어떻게 했나요?

아마두 프로젝트에서 노션 클래스를 진행했어요. 당시 클래스 들으셨던 분이 기관 담당자이셔서 자연스럽게 외부 강의로 연결되었어요. 트위터에도 게시물을 올렸는데 web3쪽에서 강의 요청이 와서 무료로 진행했어요. 시작한 지 6~7개월 이후부터 외부 대학과 기관 대상으로 노션 강의를 지속해서 나갔어요. 최근에는 클래스101 강의도 런칭하고 에브리타임 내 노션 강의, 출판도 준비 중이에요. 


Q. 노션남매는 두 분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평소에 말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했는데 노션남매 덕분에 강의를 하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 스스로에 대한 확신도 생겼고요. 주변에서 왜 혼자 안 하고 둘이 같이 하냐는 말을 듣곤 하는데 오히려 둘이기에 더 잘할 수 있다는걸 증명하고 싶어요. 저 혼자서 여기까지 오기도 힘들었을 거고요. 1인 기업가도 성장하는 과정에선 협업이 필수적이라 생각해요.


Q. 두 분이서 함께 수익화를 하면 수익배분에 있어 애매한 부분이 필히 발생할 텐데 그 부분은 어떻게 조율하고 계시나요?

저희는 사업자도 공동대표로 되어 있고 강의 출강도 같이 나가고 있어요. 현재까진 모든 매출을 사업자 통장에 두고 월급을 받고 있어요.

말씀하신 대로 기여도에 따른 배분은 지금 직면한 문제고 풀어야 할 숙제예요. 협업하는 데 있어 서로 재는 순간 한계점이 온다고 생각해요. 각자 해야 할 R&R을 명확하게 구분하려고 해요. 서로가 하는 일을 다 펼쳐놓고 어디까지 일로 생각하는지 깊게 대화도 나누고요.

예를 들어서 나는 A를 일로 생각하지만 파트너는 A를 일이라고 느끼지 않을 수 있어요. 정량적인 부분, 정성적인 부분을 구분해서 업무에 대한 기준을 마련하려고 해요. 같이 하는 시기는 끝났고 서로가 잘하는 파트를 가져가서 분배하는 단계라 생각해요. 


Q. 노션남매의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노션남매 자체가 기업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분기별 업무 로드맵을 짜고 있는데 올해 같은 경우에는 외부 강의나 펀딩해가면서 새로운 파이프 라인을 구축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어요.

유튜브 콘텐츠도 고민하고 있어요. 노션남매 이면에는 헌트(박현태)와 써니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리려고 하는데요, 물론 기존 구독자가 원하는 게 아닐 수도 있어요. 하지만 힐링가라지가 없으면 아마두, 노션남매도 없기에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노션 컨설팅 업체가 되면 직원도 고용해서 확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노션남매를 어떻게 정의하냐의 문제예요. 크리에이터로 볼 것이냐 비즈니스로 볼 것이냐. 지금은 크리에이터 성향을 비중을 두고 가려 해요.


지방에서 서울로,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Q. 힐링 가라지 커뮤니티는 어떻게 운영을 계획하고 있나요?

의도와 상관없이 상황에 따라 일이 커지는 경우가 있기에 여지를 항상 열어두고 있어요. 기회도 왔을 때 잡는 게 능력이잖아요. 미래에 대해선 항상 열어두고 있어요. 북클럽을 시작하는 분이 있다면 트레바리를 생각하고 하셔라고 애기해요. 목표를 낮게 잡으면 만족감이 너무 빨리 올 수 있으니까요.


현재 힐링가라지 커뮤니티 맴버십 런칭을 준비 중이예요. 기존에는 특별한 규정이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호스트냐 멤버냐 등에 따라 사람에 따라 소속감을 느끼는 차이가 크더라고요. 지속가능성을 시험 보는 단계에 이르렀다 생각하고 커뮤니티 유료 맴버십을 도입하려 해요.


커뮤니티 멤버십 가격은 월 3만원이에요. 호스트가 되어 수익화도 할 수 있어요. 물론 호스트는 부담스럽고 멤버로만 활용하고 싶은데 3만원이 부담스럽다는 의견도 있어요. 그게 소비자(멤버)가 느끼는 힐링가라지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가치를 우리가 어떻게 정하냐의 기로에 놓여있는데, 커뮤니티 존재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 대상만 해도 충분하다 봐요. 지금은 힐링가라지 로고부터 메세지까지 힐링가라지 커뮤니티 브랜딩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어요. 


Q. 멤버십 3만원 가격을 정할 때 기준은 어디에 두셨나요?

그동안은 적자를 보며 사비로 커뮤니티를 운영했지만, 지속 가능한 커뮤니티 운영을 위해 3만원을 책정했어요. 이 가격도 서울과 비교하면 상당히 저렴한 가격이지만 지방이다 보니 3만원이라는 가격에 대한 저항이 커요. 호스트한테도 회당 최소 20만원 벌어갈 수 있는 구조를 짜라고 애기해요. 참여인원을 늘리든, 객단가를 높이든 해서요. 


Q. 사실상 노션남매 외에 대표님이 수익을 가져갈 수 있는 부분이 없는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 이야기를 어제 새벽 3시까지 멤버들과 했어요. 돈 안되는 일을 왜 하냐는 부정적인 말을 수없이 들었어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도 이제 사라졌고 회사가 개인을 지켜주지는 않자나요. N잡도 이제 보편화되는 시점인데 힐링가라지를 통해 생계유지를 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는 다른 사람들이 해내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 좋아요. 사람이 자산이라는 말을 진심으로 믿어요. 이 안에서 노션남매같은 수익사업을 해내면 되는 거니까요.


힐링가라지 안에서도 실질적인 협업이 일어나고 있어요. 저희도 영상편집 같은 경우 입주하신 사진 작가님께 매번 의뢰를 드리고 있어요. 이 안에서 협업, 고용까지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그럴 생각이고요.


Q. 커뮤니티를 운영을 하면서 호스트 기획력이 부족하거나 운영 혹은 진행이 미숙할 땐 어떻게 피드백을 주나요?

현재까지 자기만의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분들 중에서는 그런 분들은 없었어요. 비슷한 경우가 있더라고 해도 저는 행동 자체가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최대한 옆에서 보완해 드리려고 노력해요. 사업을 안 해본 사람들이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저 또한 무작정 뛰어든 케이스이기도 하고요.


예를 들면 관련된 레퍼런스나 일상에서 느낀 부분들을 취합해서 많이 공유해 드리며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 게 사실 정말 품이 많이 드는 일이지만 제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무래도 지역의 한계성이 있는 부분이 있어요. 서울에서는 익숙한 아이템이나 기획인데 부산 사람들이 대부분 모르는 것들도 있어요. 서울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례들을 찾아서 공유드려요. 


Q. 참여자 모객은 어떻게 어떻게 하고 있나요?

오늘도 멤버들과 계속 모객 얘기만 하다 집에 갔는데 결국 모객이 핵심이거든요. 물건이 팔려야 의미가 있는 것처럼 행동도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데 결국에는 이게 모객이 되고 팔려야 유의미해요. 2년 반 동안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면서 가장 유의미한 건 결국 고객 바이럴이었어요.


바이럴이 측정도 안 되고 너무 어려운 부분들이 많아요. 하지만 결국에는 바이럴 때문에 왔다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더라고요. 이걸 어떻게 측정하고 풀어야 할지 아직 찾아가는 과정이에요.


예를 들면 지금 북클럽을 운영한다고 했을 때 광고도 돌리고 스토리도 올리고 이렇게 하는데 거기 오는 분들한테 어떻게 알고 왔냐 물어보면 ‘친구나 누가 소개해 줘서 왔어요’ 이런 얘기를 들으니까 ‘광고가 무의미하네’ 이런 생각도 가끔 들곤 해요. 어떻게 광고비를 적정하게 책정할 수 있을까가 계속 고민이에요.

결국에는 더 많은 인지도를 쌓기 위해 노력해요. 유튜브, 인스타그램, 아티클 배포 등으로 최대한 힐링가라지를 알리려는 노력과 더불어 더 많은 산출물을 찍어내서 노출을 많이 늘리려고 해요. 


Q. 만약에 서울이나 타지역에 계신 분이 참여하고 싶다면 방법이 있나요?

디스코드로도 힐링가라지 커뮤니티를 만들었어요. 참여는 누구나 가능해요. 서울, 타지역 대상으로 멤버십을 받아야겠다는 이런 생각보다는 지금 만들고 있는 힐링가라지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소비해 줬으면 좋겠다가 1차적인 단계예요. 서울 멤버가 늘어나서 진짜 멤버십 운영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시점이 오면 서울에서 오프라인 공간을 준비해 볼 수 있는 단계가 올 거라 생각해요.

힐링가라지 디스코드


Q. 디스코드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은 없나요?

아직 디스코드가 익숙지 않은 분들을 위해서 지금 디스코드 저희 사용 가이드북을 만들고 있어요. 나중에는 외부 사람들도 볼 수 있도록 가이드북을 배포해서 자연스럽게 쓸 수 있도록 하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내부적으로도 디스코드 워크숍을 열어서 사용 방법을 하나하나 다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Q. 커뮤니티, 행사를 계속하다 보면 피로도가 누적이 되잖아요. 지치는 포인트나 멘탈적으로 힘든 건 어떻게 관리하세요?

멘탈적인 부분은 그날그날 해소를 하려고 해요. 퇴근할 때 카카오 바이크 타고 가며 털어내려고 해요. 오늘 어떤 찝찝한 일들이 있었다 그러면 그날에 웬만하면 다 털어내려고 해요. 저도 이런 방법을 원래 못 찾았는데 힘든 시기에 걸으면서 생각 정리를 많이 했어요. 그때 찾은 방법이에요. 웬만하면 그날 있었던 일은 그날 턴다라는 생각으로 퇴근길에 다 정리해요.


Q. 커뮤니티 안에서 협업하다보면 내가 생각한 내공이 아니라든지 결과물이 너무 안 좋다 등이 발생하면 그 이후의 관계가 애매해질 수 있잖아요. 그런 갈등은 없었나요?

노션남매도 세 번째 프로젝트였어요. 그전에 시도했던 것들이 잘 안됐었지만 그 과정에서 학습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서로 일하는 방식에서 부족했던 부분이나 프로젝트 과정에서 테크니컬적으로 부족했던 부분들이 다음 프로젝트에선 개선되더라고요.


새로운 프로젝트가 실패하더라도 다음번에는 보완해서 진행하는 과정들을 겪다 보니 지금까지는 아직 협업에서 실패 사례는 없었던 것 같아요. 2년 전부터 지금까지 힐링가라지 내에 멤버분들이 여전히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그걸 어느 정도 증명하지 않나라고 싶어요. 


Q. 같은 레벨에서 같이 성장하면 괜찮은 것 같은데 커뮤니티가 더 성장하면 멤버별로 레벨, 내공이 다를 수 있잖아요. 못 따라온다거나 협업하기 위해 맞지 않은 코드거나.

맞아요. 결국에는 저도 그 부분을 항상 염두하고 있어요. 힐링가라지에서 내부적으로 말씀드리는 게 어쨌든 우리끼리 최대한 오래 가려고 노력하겠지만 영원하다는 건 없다고 말해요. 부부도 영원히 갈지 안 갈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영원이라고 얘기 안 하고 최대한 오래 가려고 노력은 할 건데 그러려면 멤버 각자도 다 그만큼 노력하셔야 한다고 얘기해요.


저는 계속 앞으로 나갈 건데 그 자리에 멈춰 있으면 우리 간의 거리가 멀어졌을 때는 인간적으로는 케어할 수 있지만 일적으로 케어 못하는 시점이 올 수 있다고 항상 얘기를 해요. 그래서 각자들의 노력과 성장을 굉장히 많이 요구하고 있어요. 지금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 들어올 때의 마인드셋이나 역량적으로 비교가 안 되게 높아요.



Q. 행복한 고민이긴 한데 만약 힐링가라지가 규모가 커지거나 온라인 채널로 대거 들어오면 어떻게 하죠?

그게 사실 걱정되긴 해요. 여기 공간도 처음에 6개월 전에 이사를 왔을 때는 크다고 생각했는데 6개월 만에 여기가 좁게 느껴지거든요. 당장 또 떠나야 하나 이런 얘기를 하기도 해요. 더 넓은 공간으로 갔다 치더라도 현재 12명 있는데 2배 큰 공간으로 해서 20명 받을 수 있냐 물으면 저는 그럴 수없다 주의거든요.


15명 정도 넘어가버리면 그 안에서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지고 끼리끼리 문화들이 생기면 사공이 많아져 배가 산으로 가는 격이 될 거예요. 힐링가라지 커뮤니티 비즈니스의 한계성을 점심 먹으면서 멤버들이랑 얘기했어요. 우리가 공간 임대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막연히 공간 규모 확장으로 해소되는 비즈니스는 아닌 것 같다고요.


Q. 맞아요. 커뮤니티가 커지면서 방향성을 잃으면 초기 팬들도 이탈하는 경우가 잦더라고요.

외부 채널(온라인) 등에서 신규 멤버들이 들어왔을 때 어떻게 해결할 거냐 했을 때 결국에는 멤버십 제도가 한 번 더 레벨링이 돼야 된다 생각해요. 예를 들면 찐으로 자체적인 검증을 통해서 오는 사람들이 속할 수 있는 영역과 단순히 힐링가라지의 소속감, 공간을 즐기는 정도의 사람들이 머무를 수 있는 영역이 따로 설정이 돼야 된다고요.


지금은 당장은 전체 서버 자체에 들어오는 거는 무료지만, 일부 멤버십 방에 들어오는 게 유료가 되는 구조요. 나중에는 전체 서버에 들어오는 것마저도 비용이 발생하는 구조가 될 수도 있겠죠. 그 정도로 가치 있는 공간이라고 판단되면 그렇게 영역을 계속 나눠야 할 거 같아요. 


Q. 온라인으로 커뮤니티가 확장된다면 힘들겠지만 정말 행복한 고민이 되겠네요.

사실 이게 정말 되는 일인가 싶은 생각들을 많이 하긴 해요. 개인적으로 되게 즐겁고 할 것들은 너무 명확한데 이게 진짜 과연 되냐라는 생각. 왜냐하면 사례가 너무 보기 힘든 사례기도 하고 남들 안 가는 길을 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되게 많이 들어요.


장기적으로는 호스트 분들이 B2B까지 연결될 수 있도록 하반기에는 준비를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요즘 기업이나 공공 혹은 대학에서도 직원 복지 프로그램이 많이 진행되잖아요. 힐링가라지 콘텐츠를 패키징으로 묶어서 팔면 수익적으로도 개선될 수 있는 여지들이 있을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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