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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ss Jul 22. 2021

유산으로 부터 얻은 것 (feat. 신앙심)

 유산하고, 소파수술을 받은 지 약 세 달이 지났다.

그 동안 나는 소소하게는 요리를 하기 시작했고, 달리기를 비롯한 코어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대안학교에서 검정고시과목으로의 영어를 가르치고 있고, 필라테스 강사 일을 시작했다. 법구경과 글쓰기 교실도 나가고있고, 주역공부도 시작해 백수 겸 프리랜서인데 일주일이 꼬박차게 바쁘다. 이렇게 바쁜 걸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또 막상 바쁘기 시작하니 삶이 더 정리가 되며 스케쥴링을 하는 삶을 살고 있다.

꾸준히 하고 있는 일 중엔 #중앙난임심리상담센터 에서 심리상담을 받는 일도 있다. 의례 상담이라는 것이 그렇듯 내담자인 내가 이야기를 많이 하고, 선생님은 질문을 던지며 방향성을 조정해주는 일을 한다. 지난 주엔 샘이 내가 깨달은 것들을 기록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을 해 줘 이렇게 시간을 내 컴퓨터 앞에 앉는다.

두번째 유산은 나로부터 너무도 많은 것들을 뺏어갖고 깊은 절망감을 주었지만, 여기서 회복하며 얻은 것도 많다.

그것들에 대해 기록해보기로 한다.

첫번째론 신앙심이다. 요즘 심지어 불교의 초기 경전인 법구경공부를 하고 있는데도 본래 내 종교인 천주교의 신앙심이 깊어지는 것을 느낀다.

올 해들어 매일같이 하선이와 꿀비를 위해 묵주기도를 하고 있는데, #환희의 신비 1단은 “마리아께서 잉태하심을 묵상합시다.” 란 기도를 주제로 준다. 임신 때엔 ‘나도 저 마음 알지 ㅎㅎ 뱃 속에 아가가 있는 그 신비한 마음을 알지.’라며 공감했는데, 유산 때엔 환희의 신비를 바칠 때 마다 고통이었다. 아니 마리아란 사람은 성령으로 잉태한 것도 말이 안되는데, 어떻게 저렇게 출산까지 잘 가? 나는 두 번이나 유산했는데… 그리고 성령으로 잉태하는게 말이 되? 저건 진짜 난임부부에 대한 모독이다. 라고 생각하며 분노에 휩쌓였었다. 집에 있는 성물이나 십자가를 보면 때려 부수고 싶은 마음과 싸워야했다. 

그렇게 저항을 하면서도 우리 아이들이 가 있을 곳은 천국이라 생각해, 내 마음과는 달리 기도를 열심히 올렸다. 성당에도 가 초 봉헌을 하며 아이들이 아가 천사로 그저 고통받지 않고 행복하게만 있기를 바라며 기도했다. 

그렇게 버티던 어느 날_

환희의 신비를 바치는데 마리아가 너무 안되보였다. 아니 지금같은 시대에도 처녀가 혼전 임신을 한다는 것은 손가락질을 받는데, 그 당시엔 오죽했을까? 그리고 얼마나 억울할까? 성령으로 잉태했다는데 믿어주는 사람도 없을꺼고… 부모님 걱정도 되었을거고… 거기에 본인 인생도 깜깜했을 것이다. 아무리 하느님의 아들을 잉태했다지만 한 여인의 삶으론 너무 가혹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마리아의 삶이 안되보이고, 마굿간에서 혼자 출산했을 그 모습을 상상하니 불쌍함이 올라왔다. 예전엔 질투와 분노의 대상이었던 마리아가 마구 불쌍해보였다. 더구나 그런식으로 어렵게 낳은 자식도 결국엔 자기가 보는 앞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모습을 봐야했으니… 어미로써 얼마나 가슴이 찢어질까 싶었다. 

성경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이것을 인간의 시선으로 이렇게 받아들이는게 맞나 싶지만… 33년간 모태신앙을 갖고 있던 내가 처음으로 다른 식의 자발적 해석을 한 순간이다. 고통에 빠진 자만이 다른 사람의 고통을 바라 볼 수 있는 것일까? 나는 뱃속에 있는 아이를 잃어서_ 마리아는 성령으로 잉태된 자식을 33년 후에 잃어서_ 상실을 경험한 두 존재가 서로를 이해하는 순간이 왔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든 뒤론 환희의 신비를 받칠 때도 화가 나지 않는다. 나는 과연 저런 순간에 바로 ‘네! 순종하겠습니다.’ 라고 할 수 있을것인지… 저렇게 순종하는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나에게 일어난 비극이 아무리 큰 것이라도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겠다. 란 태도… 여전히 그 깊이는 알 수가 없지만, 저항할 수록 괴로운 것임을 알겠다. 마리아는 순종하는 태도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일까? 지혜로운 성인의 길이 맞는데, 그것을 따르기란 여전히 어렵다.

비슷한 맥락이지만 다른 일도 있었다. 지난 주 성당에 앉아 미사를 보다 걸려있는 큰 십자가를 보았다.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을 보는데, 순간 저 분이 너무 불쌍하다란 생각이 들었다. 본인은 지은 죄도 없는데, 우리를 위해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고는 최고 형벌인 십자가에 못에 박혀 돌아가신 그 분. 얼마나 괴롭고 고통스러웠을 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또 저항없이 그런 길을 간 예수님에 대한 연민이 솟았다. 신에게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는 태도 인지는 모르겠으나, 요즘엔 마리아나 예수 같은 신들이 참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이 둘을 보며 고통에 대한 태도를 배운다. 나에게 일어난 두 번의 유산은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적어도 의사의 말로는 그렇다. 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크리티컬한 문제. 유전자를 연구소에 근무하는 친구는 자연적 도태라는 말까지 썼다. 기대하지 않았던 임신을 하고, 또 유산까지 된 뒤 나는 그 이유를 찾는데 있어 많은 고통을 받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나에게 왜 또 이런일이?” 나는 아이를 바라지 않았는데?! 왜 지금??? 뺏어갈꺼면 왜 준거야? 하며 저항의 저항 분노의 끝을 달리는 시간을 보냈다.

이제는 알겠다. 누구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비극 중 하나가 나에게 일어난 것이라고.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나의 태도가 중요한 것이라고.

물론 어리석은 중생으로의 나는 바로 순응하고 ‘받아들이겠습니다.’라는 순종의 태도를 갖긴 어려울 것 같다. 또 고통 속에서 배우는 것도 있으니 무조건 순종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이미 고통받고 있는 나 자신에게 저항함으로써 더 큰 고통을 주는 것과 같은 행위는 끊어내기로 다짐한다.

신들을 인간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점. 그리고 그들과 함께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는 것.

그럼으로 나의 신앙심은 한층 더 성장했다. 더 이상 나의 소망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기복신앙의 수준에 머무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들의 고통이 얼마나 컸을 지 알 것 같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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