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부쩍 주위 사람들이 자주 물어보는 질문 중 하나는 '간호사라서 좋은 점'이 뭐냐는 거다. 술자리나 소개팅, 혹은 스몰톡으로 이 얘깃거리가 나올 때면 나는 자주 말문이 막혔다. 음........... 글쎄, 힘없이 말하다가 금세 주제를 돌리곤 했다.
거창하게 내세울 게 없을 수도 있지만 애초에 간호사라는 직업이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직장, 부서에 따라 업무도 천차만별이라 가벼운 대화라 할지라도 감히 내가 대표해서 말하기가 꺼려지곤 했다. 내가 간호사 대표도 아니고.
그래도 언젠가 시간을 내서 생각해보면 다음번에 누군가 물어보았을 때나 후배들에게 얘기할 때, 또 개인적인 자존감 측면에서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머리에 생각나는 대로 필터 없이 장점들을 열거해 보려고 한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고 누군가에게는 그리 좋지만은 않을 사실들일 수도 있다. 어떤 점들은 간호사라서 좋은 점이고, 또 어떤 점들은 병원에서 일하고 있어서 좋은 점, 혹은 어떤 것들은 중환자실에서 일해서 좋은 점일 수도 있다. 나는 쓰고 나면 항상 아- 맞다 그거. 있었는데. 하는 경우가 많아서 아마 높은 확률로 몇 개 더 생각날 것 같다.
1.
3교대. 개꿀. (★20대 한정★)
어딜 가나 사람들이 북적이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 새벽 밤늦게까지 깨어서 자기 시간 갖는 거 좋아한다. 하는 사람들한테 꽤 괜찮다. 평일에 쉬면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 값싼 비행기 티켓, 나 말고 아무도 없는 영화관, 어딜 가나 기다릴 필요 없는 관공서나 은행. 텅 비어있는 평일의 캠핑장.
또 이브닝 근무나 나이트 근무여도 '늦잠'에 대한 걱정이 아예 없다. 이브닝은 보통 오후 두시 출근, 나이트는 저녁 열시 출근이라 이브닝 출근이면 새벽 여섯시에 해뜨는거 보고 자도 일곱 시간은 잘 수 있다는 소리다. 서울이 잠든 밤, 오롯이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아 이것만 빨리 보고 자자.. 일찍 자야 하는데..' 같은 거 없었다. 그냥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놀 만큼 논다. (대신 그만큼 빨리 늙긴 한다. 이제 와서 보니 젊음과 수명을 깎아서 노는 거였는지도..) 나이트 끝나고 아침에도 아직 쌩쌩하니까 그렇게 시간적으로 손해 보는 느낌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행여나 가고 싶지 않은 자리나 불편한 자리는 어지간하면 선택해서 갈 수 있다. 나는 친척들과 그렇게 끈끈한 사이가 아니어서 추석이나 설날 때 몇 년 동안 일해야 된다고 안 갔다가 몇 년만에 본가에 가서 밤 근무하고 왔다고 핑계대고 들어가 잠만 자고 왔다.
방문 너머로 '다들 3교대해서 피곤해서 그래.' ‘아이고 어쩌나. 몸상할라.’ 걱정해 주시는데 죄책감이 들어서 고개를 들 수가 없어서 그냥 그대로 더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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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은 같은 부서 동기들도 다 비슷한 상황이고 뭘 해야 할지 몰라 맨날 다 같이 모여 술만 오지게 퍼먹었다.
그 당시에 내 시간을 더 관리하고 스스로 생산적인 걸 해낼 수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는 있다. 그 당시에만 느낄 수 있던 감성들이나 날 것의 생각들, 뭐든지 새롭던 삶과 일상이 아깝다. 이제는 모든게 더 익숙해진 이제는 더는 느낄 수 없을 것들. 무엇이라도 더 써놓았으면 좋았겠다.'라는 아쉬움.
여하튼, 나는 20대 때는 불규칙하고 자유로운 근무패턴이 무척 행복했다. 지금은 점차 우하향 곡선을 그리며 늙고 병들어 가는 중이다.
나이트 끝나면 내내 잔다. 리듬이 돌아오지를 않는다. 자주 멍해지고 멍청한 상태다.
결론은 20대~30대 초반까지는 삼 교대.. 나이트 킵.. 다 너무 좋았다.
2.
지인들에게 도움을 줄 일이 많다.
병원에서 일해보니, 세상에 이렇게 아픈 사람들이 많았던가 싶다. 무슨 진료 예약하려면 한 달은 기본이고, 진료 보고 검사는 또 몇 주, 결과 보려고 예약하면 또 몇 주. 시술이나 수술 예약하면 또 며칠이다. (물론 병바병, 케바케다.)
사실 내가 아프거나 내 가족이 아프다면 누구라도 더 크고 좋은 병원을 찾아가려 할 테니 이해가 된다. 심지어 병원비도 크게 차이가 없으니. 그리하여 소위 말하는 ‘좋고 큰’ 병원은 예약 잡기가 정말 쉽지 않다. 그리고 겨우 잡아 진료를 보더라도 뒤에 많은 환자들이 밀려있기 때문에 사실 개개인에게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적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친한 지인이나 가족이 병원 내부자라면 무엇보다 질병에 대해 일차적으로 물어볼 수 있는 정보원이 있고, 예약도 손쉽고 안쪽에서 당겨주면 바깥에서 들어오기가 훨씬 수월하다. 아무래도 직원이거나 직원 가족이라면 한 번 더 신경 쓰게 되는 게 사람들이 하는 일이기도 하고. 심지어 대부분의 대학병원은 직원 본인이나 가족 진료비 감면도 된다. (!) (오해의 여지가 있어 '안에서 당겨주는게 쉽다'는 표현을 설명하자면 취소된 예약이나 빈공간을 캐치하기가 아무래도 쉬워서 그렇다는 얘기이다.)
다행히 나는 아직 특별히 아픈 곳도, 앓아본 적도 없지만 슬슬 우리 부모님 주위 분들이 어딘가 안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그럴 때마다 물어볼 곳이 없어서 연락을 받거나, 예약을 잡아드리거나 하는 것만으로도 제법 내가 이 일을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어쩌면 유일하게 확실히 단점 없는 장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3.
자기계발.
3차 병원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보다 높은 중증도의 환자들이 오기 마련이고, 고로 더 높은 수준의 간호를 할 기회가 많다는 얘기고 그럼 그만큼 교육을 해준다는 소리기도 하다.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잘 되어있어서 간호본부 교육팀, 부서 내 교육담당, 레지던시 시스템, 교육 TFT, 원격 교육 및 컨퍼런스. 사실 잘 활용한다면 절대 '바보가 될 수 없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당연히 안쓰는 사람도 많긴 하다.) 대면교육이 금지된 킹시국에도 Webex를 통한 화상교육이나 미리 사전녹화해놓은 교육자료를 유튜브를 통해서 언제든 볼 수 있는 등 엄청난 발전이 이뤄졌다. 오히려 코시국을 기회로 전국적인 교육시스템은 더 단단해져 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
나때는 진짜.... 후...... 맨날 데이 끝나고 회의실 모여서 오버타임도 못 쓰고 저녁 여섯 시까지 임상이랑 전혀 상관없는 교육도 듣고 그랬었는데.. (음소거)
반대로 생각하면 간호사는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점이 단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더 나은 치료, 약물, 시술은 계속해서 나오고, 우리는 빠르게 적응하고 임상에 활용해야 하니까. 지금 새로운 역병이랑 싸우고 있는 것처럼.
4.
높은 호환성!
까놓고 말하자면 '저렴한 의료인'이기 때문에, 여러 직군에서 호환이 잘 된다. 의사를 쓰기에는 좀 너무 비싸지만 전문적인 의료지식이 필요한 자리에 간호사가 많이 쓰인다. 예를 들어 보험사 (a.k.a 언더라이터), 혹은 심평원, 건강보험공단, 보건소, 의료 수사, 의료분쟁조정원 등등..
또 솔직히 요즘 핫한 공무원 되기도 다른 직군에 비해 문턱이 낮은 편이다. 팬데믹 이후 세계적으로 보건에 갖는 관심이 높아지면서 보건직, 진료직 공무원의 필요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구급 대원 등의 환자 이송 인프라도 강화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강해지는 추세라 간호사들은 더 많은 선택지를 제공받게 되었다.
의지와 외국어만 있다면 얼마든지 해외로도 나갈 수 있다. 지금 세계는 간호사 구인난에 빠져있는데, 이는 의료 최선진국인 미국에서부터 유럽, UAE, 아시아 모두가 비슷한 처지이다. 대우와 벌이는 나라와 상황마다 많이 다르지만 제일 많이 가는 미국은 한국보다 간호사라는 직업에 대해 월등하게 더 높은 가치를 인정한다. 미국에서 코로나 병동으로 일하는 계약직 널스의 '주급'이 무려 천만 원에 가깝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5.
취직/이직이 쉽고, 초봉도 일반직군에 비해 제법 높은 편이다.
간호학과는 예로부터 ‘취업 깡패’라고 듣긴 했었는데 ‘저 녀석.. 취업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게 만들던 위태로운 동기들도 결국 자기 자리를 찾아서 어떻게든 취업하는 걸 보면서 제대로 실감했다. (학교 교수님과 친구들은 그게 항상 나였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간호사들이 그만두고, 또 새로운 경력직들이 들어온다. 사직률이 높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취업할 곳이 많다는 얘기기도 하다. 마음만 먹으면 이직할 곳도 많고,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곳들도 꽤 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 경력단절이 되더라도, 혹은 경력이 별로 없더라도 들어갈 수 있는 빈자리가 많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초봉은 한국 평균 연봉에 비해 확실히 높은 편이다. 4년제 대졸 신입사원 평균 연봉이 4121만 원이라고 한다.(2021년 초, 잡코리아 정보 기준) 올해 들어온 신규간호사들 연봉이 5000만원 중반대니까, 확실히 높은 편이긴 하다.
하지만 함정이 있는데, 우리는 대개 3교대를 하는 자리가 주류이므로 야간수당, 위험수당 등이 모두 포함되어있어서 실질적으로 따져보면 그렇게 엄청난 것도 아니게 느껴질 수도 있고, 무엇보다 연봉상승률이 대체로 적다. (우리 병원만 그런 줄 알았는데, 빅5를 제외한 대부분의 병원 임금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이나 최저임금상승률에 못 미친다.)
그래서 나는 8년 차인데도, 지금 들어오는 신규간호사들과 놀랍게도 연봉이 크게 차이가 없다. 현타..
3년 차가 1년 차에 비해 적게 받기도 한다. 확실히 문제가 있는 부분이다. 오래 일하고도 별 미련 없이 퇴사하는 이유는 아마 그런 데서 기인하는 것도 클 듯.
지금 생각나는 장/단점은 요 정도, 아마 일하다 보면 더 생각나겠지. 다 같이 팀으로 일해서 좋고.. 환자들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고.. 이런 감성적인 얘기들은 제외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측면에서 현실적으로 느끼는 얘기들만 나열했다.
마지막으로 꼰대같은 얘기를 하자면, 8년 전 내가 입사했을 때에 비해 복지나 처우의 질과 양, 모든 측면에서 엄청나게 발전했다. 환경, 급여 그리고 사회의 인식까지. 그러니까- 앞으로 분명 더 좋아질 것이다. 우리가 다 함께 전문직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장점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고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