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의 기억
10월 10일 10시 10분. 특별한 하루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어릴 때부터 일하고 공이 합쳐진 10은 단순히 예뻐 보였고, 2002년 월드컵 때 등번호가 10인 선수를 응원하면서부터 더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나에게 매년 10월 10일의 아침은 설레는 날이었다.
10월의 첫눈을 보고 우린 소원을 빌었지.
20년도 10월 10일 토요일 아침, 머리를 말리고 단장을 하며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라디오 DJ는 10월 10일을 맞이하여 특별한 코너를 소개했다. 10시 10분 10초에 정확히 문자를 보낸 사람에게 크고 작은 경품을 선물한다는 이벤트였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1시간 남짓의 시간이 남아있어 큰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옷장 속 예쁜 옷을 골라 코디를 해보며 그를 보러 갈 생각에 들떠있었다. 한걸음에 달려와 준 그는 집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운 서로의 얼굴을 확인한 후 차에 올라타 우린 양양으로 향했다. 가는 길 동안 라디오에서 들은 내용을 꺼내며 숫자 10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다. 그 순간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 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린 설레는 마음으로 시간에 맞춰 문자를 보내보았고, 기다리는 동안 10과 관련된 명곡 3곡을 들었다.
명곡이 나왔던 그 시대 추억을 떠올리며 라디오로 모든 청각을 쏟았다. 명곡이 끝나 당첨자를 발표하는 순간, 우린 아쉬운 탄식을 내뱉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첨 문자를 기다렸지만 그렇게 10분 10초는 멀리 지나갔고, 우린 깔깔 웃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소떡소떡을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웠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서로의 취향을 얘기해 보고, 양양 낙산사로 목적지를 바꿔 드라이브를 즐겼다. 차 안에서 우린 서로가 가봤던 장소, 먹어본 음식, 좋아하는 노래 그리고 소소한 일상 얘기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양양의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서로가 다르게 살아온 세월을 공유해 보았고, 함께 추억을 쌓아갔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서울로 향하는 차가 많은지 고속도로는 꽉 막혀 있었다. 그때의 나는 평소 느꼈던 답답한 도로가 아닌 매 순간이 아쉬운 길 위에 있었던 것 같다. 듣고 싶은 노래를 들으며 우린 깜깜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고, 그 순간 10월의 첫눈이 쏟아졌다. 그중 특별한 눈 하나가 꼬리를 그리며 사라졌다. 그렇게 특별한 10일이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내가 10번이나 넘게 즐겨본 드라마를 함께 시청하며 치맥을 즐겼다. 평소 나는 나의 일상 속 내가 소소하게 즐기던 것을 타인과 공유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고, 같은 것을 봐도 내가 느끼는 것을 똑같이 느끼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시간 동안 든 생각은 함께 본 드라마, 영화, 함께 먹은 음식들과 갔던 장소들을 차곡차곡 쌓아가며 생각과 느낌을 나눠나가면 너무 좋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서로가 다르고도 비슷한 취향을 갖고 살아온 각자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우리'가 되어가는 10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