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책의 바다로 데려다 줄 작은 보트가 되었으면-
서점은 늘 그래왔듯 조용하면서도 복작복작 여름을 버텨냈다. 풍경을 걸어둔 동네 서점의 작은 문이나 광화문 대형서점의 회전문을 열고 들어가면(아니면 모바일 서점의 앱을 그저 터치하는 것만으로도) 그 안은 책과 독자들로 북적거리는 책 세상이었다. 이번 여름도. 누군가에게 이곳은 유영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바다였고, 어떤 이에게는 침잠할 수 있는 깊은 못이었거나,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복해야 할 높은 산이기도 했다. 혹은 놀이터이거나. 서점은 그런 곳. 바다에서 어떤 고기를 낚을지 나는 모른다. 어떤 경우의 수가 나를 어디로 이끌지 모르지만, 바다로 산으로 가는 마음 안에 있는 것은 문득 발견하게 될 어떤 무언가를 기대하는 설렘. 그러려면 일단 가야겠지. 바다로, 산으로, 그리고 서점으로. 서가 사이를 걷다가, 책을 들추다가 어떤 이야기를 만나고, 좋은 문장을 마주치게 되고 그로 인해 어떤 곳을 향하고 있는 내 인생의 좌표가 0.5도 정도 틀어진다면 그것도 꽤 재밌는 일이겠다.
책을 읽다가 어묵 통조림이나 달걀이나 롤빵, 코인 세탁기 같은 어떤 것들이 등장한다면 주의를 기울여야 할지도 모른다. 책 안쪽 세상에서 주인공의 삶을 뒤바꿔 놓기도 하고 책 바깥세상에서 편견을 박살 내버리기도 하는 어떤 사물들의 멋진 등장 장면을 목격하는 중일 테니. 걸어왔던 시절의 마디마다 딱 들어맞는 조각이 되어줬던 책들도, 어린 시절 교실 구석에 숨어 ‘책이나’ 읽기로 했던 독자로서의 첫 기억도, 같이 읽는 시간의 따뜻했던 추억도, ‘이 책 읽다가 네 생각이 났어’라는 말과 함께 건네는 낯선 책 한 권도. 어느 독자들의 희뿌옇고 뭉클한 기억 속 책들이 궁금하다. 들판을 걸을 때면 삶을 등지고 조용한 공간에서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았다는 문보영 시인의 말을 생각한다. 혼자 걷고 함께 걷는다. 아니면 숨바꼭질하듯 무언가를 찾아다닌다. 숲을 거닐다, 바다를 헤엄친다. 책 세상은 너무나 넓어서 숲이나 바다와 참 잘 어울린다. 들판도 그렇고.
벚꽃 잎이 휘날릴 무렵, 교보문고 MD들이 종이 매거진을 발간하겠다고 했다. 물성이 있는 종이 매거진이 아니더라도 분야를 담당하는 MD마다 책의 발견성에 대해 고민하고 독자들에게 좋은 책을 추천하는 기획전들이 이미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지만, 종이 매거진은 온라인 이벤트의 휘발성에 대한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갈 작은 매거진이 책의 바다로 나가게 해줄 작은 보트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준비한 첫 번째 보트를 띄운다. 어디로 가겠다는 좌표는 정해놓지 않는다. 이 배의 조타는 여러분께 맡기고 싶다.
매거진의 이름은 OttOn. '어떤'이다. 책의 바다에 띄울 작은 보트, 어떤. 눈치 빠르신 독자분들은 ‘아니 무슨 동어반복이 왜 이렇게 많아’라고 하셨을지 모르겠다. 매거진 이름을 알리기 위한 밑밥이었으니 너른 양해를 구해본다. 지하철에서 <OttOn>을 읽고 있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반가운 마음 이루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말을 걸 수도. 여름의 문을 닫고 들어선 가을의 시간, 어느 순간 우리 앞에 나타나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여줄 문장들을 기다린다. 출렁이는 파도를 타고 작은 보트 위에 누워 나는 오늘도 책세상으로 향한다.
(유한태 팀장 | 교보문고 이커머스영업팀)
*이 글은 교보문고 MD가 만드는종이잡지 『어떤』의 시작을 알리는 '1호를 펴내며' 글의 원문입니다.
*가방에 넣고 다니며 종이의 질감을 느끼고, 냄새를 맡아보세요.
*출퇴근 길 가볍게 읽으실 수 있도록 작은 판형에 100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제작했습니다.
*『어떤』은 인터넷교보문고에서 책을 구매하실 때 사은품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 (별도 판매는 하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