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둘람의 집에서 데크 공사를 하며 배운 것
아둘람의 집* 마당 데크를 손보는 날이었다. 세월의 풍파에 삭은 데크가 위태로워, 안전을 위해 모두 철거하기로 했다. 처음엔 아둘람 식구인 40대 장정 세 명이 호기롭게 팔을 걷어붙였지만, 이내 60대로 보이는 전문가 한 명의 지혜를 당해낼 수 없었다.
노련한 전문가는 썩은 나무 지지대가 받치고 있는 3m 높이에서 못으로 고정된 판자를 빠루로 분리해내고, 그 판자를 다시 발판 삼아 이동하며 신속하게 데크를 제거해나갔다.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우리는 무력했고, 태연하게 작업하는 노장은 씩씩했다.
데크를 걷어내니 판넬 지붕이 드러났다. 낙엽과 먼지로 덮여있어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볼트를 노장은 단번에 찾아내 드라이버로 풀었고, 여러 개를 이어붙인 판넬을 차례차례 분리했다. 스티로폼이 붙어있는 얇은 판넬이라 혼자서도 거뜬해 보였다.
그런데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판넬 하나를 우리 셋이 달라붙어 안간힘을 쓴 끝에 겨우 옮길 수 있었다. 깃털 같은 스티로폼이 물을 머금자 돌덩이처럼 변한다는 사실에,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바로 그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우주 먼지처럼 가벼운 내 존재에도 그리스도의 보혈이 스며들면, 온 우주를 머금은 듯 묵직한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닐까?’
판넬까지 모두 걷어내자 3m 아래 숨어 있던 시퍼런 물탱크가 드러났다. 주변 전원주택 여섯 곳에 물을 공급한다는 물탱크가 왜 아둘람의 집에 설치되어 있는지 의아했다. 우리 중 한 명이 아둘람의 집 주모인 박보경 교수님에게 물었다.
“교수님, 이 데크 공사 비용을 여섯 집에서 분담하기로 하신 거죠?”
물 먹은 스티로폼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돌아온 교수님의 답변은 우리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마을 회의 때 공사 비용 분담을 제안했지만,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웃이 있어서 그냥 교수님 혼자 부담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지금까지 수도비도 교수님이 이웃보다 두 배 이상 내왔다고 했다.
우리는 순간 혈기가 올라 불만 섞인 얼굴로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어진 교수님의 설명에, 잠시 불평했던 마음이 금세 부끄러움으로 변해갔다.
“덕이 되지 않잖아요. 우리가 교회인데 돈 때문에 덕이 되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교수님은 ‘돈’ 보다 중요한 것이 ‘덕’임을 삶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하나님이 한 번도 물질을 안 채워주신 적이 없었기에, 돈이 없어도 덕을 먼저 세운다는 말씀에 우리는 숙연해졌다.
그렇다. 때로는 돈이 되게 하려면 덕이 되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덕이 되게 하려면 돈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 갈림길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가? 이 질문에 교회는, 그리고 작은 교회로서의 나는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데크 철거 작업을 모두 마치고 교수님이 차려준 풍성한 식탁에서 교제가 이어졌다. 교수님은 돈이 필요한 지체에게 돈만 주는 게 아니라 희망을 주려고 애쓰고 있었다. 돈은 쌓이면 썩기 때문에 빨리빨리 흘려보내야 살아있는 희망을 나눌 수 있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는 먼 미래를 위해 물질을 쌓아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끊어낼 때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진리를 목도할 수 있다는 말씀에 마음이 일렁거렸다.
깃털처럼 가벼운 존재는 세상의 ‘득’이라는 바람에 쉽게 흔들린다. 하지만 물 먹은 스티로폼처럼 그리스도의 보혈로 묵직해진 존재는, 세상의 바람에 쉽게 휩쓸리지 않고 ‘덕’을 세우며 제자리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묵직함으로, 나 역시 득이 아닌 덕을 좇으며 희망을 주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까? 주님이 하실 일이 기대된다.
*아둘람의 집이란?
[복음과 상황] ‘우정과 동행의 선교’가 교회 개혁의 씨앗 ― ‘아둘람의 집’ 운영하는 박보경 교수 (https://www.gosco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6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