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전어 같은 '독토글']
2주 전에 올린 글에 반응이 뜨거웠어요. 중고차 딜러들의 독서 토론 모임 ‘독토’에 관한 글이었는데요. 제가 합류한 후로 글쓰기도 추가되었으니 이름을 ‘독토글’로 바꿔야 할까요?
오늘은 두 번째 독토글이 열린 날이에요. ‘가을 전어 같은 시간’이었다고나 할까요. 전어는 가을에 지방이 꽉 차 고소함이 극에 달한다고 하잖아요. 단 1초의 낭비 없이 2시간 동안 글로 나누는 풍미가 카페 안에 꽉 찼어요.
독서 토론을 먼저 진행했어요. 각자 자유롭게 책을 선정하고 소개하다 보니 5인 5색 책 나눔이 되었어요. 지난주엔 네 명이었는데, 새 회원도 한 명 들어왔거든요.
30대 한 과장님은 <네이비씰 승리의 기술>, 40대 김 팀장은 <아내가 결혼했다>, 50대 김 대표님은 <돈의 심리학>, 조 이사님은 <혼모노>, 강 이사님은 <갑자기 영업을 시작한 당신에게>를 들고 왔어요.
서로 느낀 점을 진지하게 나누던 중 토론 주제가 ‘진짜와 가짜’로 모였어요. ‘진짜’라는 뜻의 일본어가 제목인 소설 <혼모노>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었는데요.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진짜 같은 가짜, 가짜 같은 진짜라는 주제 의식이 흥미로웠어요.
‘진짜와 가짜’는 ‘친구와 지인’이라는 주제로 이어졌는데요. 중고차 영업을 하다 보면 친구와 지인이 구분된다는 말에 다들 무릎을 '탁' 쳤어요. 친구는 실수하거나 잘못을 해도 덮어주고 계속 갈 수 있는 관계지만, 지인은 거기서 단절된다는 거예요. 다들 영업 현장에서 겪은 비슷한 경험을 나누며 공감했답니다.
이 주제는 자연스레 제가 가져온 <아내가 결혼했다>와 연결되었어요.
“사랑이 비극인 이유는 가질 수 없는 너를 가지려 하기 때문이고, 삶이 고난인 이유는 죽을 수밖에 없는 내가 죽지 않으려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저는 <아내가 결혼했다>를 읽고 느낀 점을 이렇게 나눴어요. 지난 모임 때 중고차 딜러의 경험을 차에 관한 정보와 함께 글로 녹여내면 재밌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는데요. 레퍼런스로 <아내가 결혼했다>가 언급되어 10년 만에 다시 읽게 되었죠.
이 소설의 서사는 축구와 섹스라는 두 개의 축을 중심으로 촘촘하게 맞물려 돌아가요. 총각 때와 달리 결혼 후 다시 읽으니 느낌이 새로웠어요. 마침 ‘친구와 지인’이라는 토론 주제처럼, 최근에 아내와 지인 같았던 관계에서 벗어나 ‘진짜 친구’로 동행하기로 했거든요. 이 책이 그 관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어요.
가을 전어는 기름진 살을 신선한 식감과 함께 즐기려면 회로 먹고, 고소함을 냄새와 맛으로 가장 강렬하게 즐기려면 구이로 먹어야 하잖아요. 독토를 통해 가을 전어 회 같은 책을 맛보았다면, 글쓰기로 가을 전어구이 같은 글을 즐길 수 있었어요.
글쓰기 모임을 할 때는 저만의 원칙이 있는데요. 닉네임을 정하고 모두 중학교 1학년 동갑내기라는 설정을 해요. (중2는 초롱이처럼 무서우니까요.) 글쓰기를 제대로 배우기 시작하는 나이로 돌아가, 모두 동등한 상태에서 편하게 서로를 격려하며 합평하길 바라거든요. 그래서 저는 합평을 ‘발전평’이라고 불러요.
김 대표님은 ‘맹반장’, 조 이사님은 ‘조나단’, 강 이사님은 ‘무진’, 김 팀장은 ‘오뉴’, 한 과장님은 ‘토스트’가 되었어요. 글쓰기가 만들어준 친구들이에요.
‘문학 소년’이라고 쓰고 ‘문학 아재’라고 부르는 조나단의 글은 팔딱팔딱 뛰는 활어 같았어요. 얼마 전 모기를 잡다가 글감이 떠올랐대요. 모기와 사람의 시선을 대비하여 한 편의 웹툰같이 긴박감 넘치는 묘사가 압권이었어요. 특히, 모기의 죽음과 그 비극을 기뻐하는 사람을 ‘운수 좋은 날’이라는 제목에 담아낸 센스가 돋보였죠. 이제 ‘문학 천재’라고 불러야 하나요?
흥미를 유발하는 필력이 돋보이는 맹반장은 지난 글에 이어 ‘자동차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2편을 준비해왔어요. 맹반장이 만난 수많은 고객 중 가장 인상적이었다는 차주가 등장했어요. 그랜저 HG 3.0을 탔던 결벽증 고객인데, 신발도 벗고 차에 탈 정도로 빈틈없이 관리했다는 말에 다들 경악했어요. 3편에서는 또 어떤 차와 고객이 등장할지 벌써 기대되네요.
오뉴는 SNS에 올렸던 글 ‘심장은 다시 뜨겁게 뛴다’로 발전평을 받았어요. “세단처럼 글이 부드럽다”, “라임을 맞춰 쓴 문장이 헷갈려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등 다양한 의견을 감사히 경청했어요. 무진과 토스트의 발전평은 시간 관계상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어요.
정서적 허기를 느낄 수 있는 중고차 시장. 저희는 오늘도 ‘독토글’을 통해 가을 전어 풀 세트로 든든히 마음을 채웠어요. 이 풍성함을 고객님과 나누기 위해 저희는 다시 현장으로 나아갑니다.
덧. 차에서 가을 전어 냄새가 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집 나간 며느리도 차 사러 올 텐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