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이 넘으신 친정아빠가 토요일 새벽부터 우리 집으로 건너오셔서 알려주신 ‘보고서 쓰는 법’이다. 아빠는 어떤 줄글도 참조하지 않은 채, 스스로 머릿속에서 술술 나오는 말씀들을 내가 막 받아 적은 것이다.
이런 보고서 쓰는 법을 내가 책도 여러 권 읽고, 20년 직장 생활 동안 잘 쓴 보고서도 여럿 봤었다. 그런데, 이렇게 목차를 내가 문건을 보지도 않고 말로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 참 아빠같이 이렇게 해내려면 내가 20년 해낸 직장 생활의 두 배는 더 해내야 할 것 같다.
나는 계단식으로 점프업 하는 스타일이다. 대학교 어학연수 시절부터 영어를 배울 때 그랬다. 어학연수 시절에는 9개월 지나도록 말 한마디를 못해서 끙끙대다가, 11개월이 되는 즈음에 갑자기 말문이 틔여, PPT를 만들어서 여럿 앞에서 발표를 했던 기억이 있다. 주변에서 함께 연수하던 언니 오빠들이 “와~ 말이 언제 그렇게 늘었어?” 하며 놀래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의 영어 실력이 너무 오랜 마음고생 끝에 올라간 것을 경험했던 터라, 한국에 돌아와서 프랑스어 전공에서 일부러 영어 전공으로 옮겼고,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영어 공부는 시작되어서 영어 신문을 읽고, 통번역 학원을 다니고, 영어 원서를 일부러 읽어댔다. 물론 40~50%도 이해가 채 안 됐던 것 같다. 하지만, 절대로 영어 못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기에 항상 영어를 곁에 두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직장인 20년 차이다. 지난 20여 년간 결혼하고 아이들 키운다고, 어쩌면 혼신을 다 해 한번이라도 내 업무에 진심이었던 적이 있었나? 반문해 본다. 별로 자신이 없다. 다들 요즘 시대에 직장을 관두고 자신의 영역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언제든 직장은 없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만 둘 때는 그만두더라도 나는 일을 정말 잘하고 싶다. 어쩌면 아빠처럼 직장 생활을 40년을 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나도 나중에 수없이 써 내려간 보고서들이 내 몸 안에 체화되어, 그 누군가 후배나 동생이 보고서를 어떻게 써야 하나요?라고 물어 왔을 때, 담담히 넉넉한 톤으로 조곤 조곤 말해주고 싶다. “보고서란 말이야, 윗 분들이 잘 알아들으시게…”
아빠의 입에서 ‘윗분’이란 단어가 나왔을 때, 나는 겸허해졌다. 아빠는 ‘윗분’의 자리에 계신지 지금 20년이 넘은 것 같은데, 아직도 아빠 당신 자신이 그 누군가를 모시고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니 말이다. 나는 아빠를 따라가려면 아직도 멀었다. 누군가를 모시겠다는 마음이 없으니 말이다. 내가 아직도 제일 잘났고, 내가 제일 잘 알고, 아는 것도 없는 주제에. 이 것을 깨우친 오늘을 감사히 또 오늘을 이렇게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