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일용직 #감사함
인스타 릴스를 내리다가 우연히 드라마 짤 한편을 보았다. 흔히 접할 수 있는 회식 풍경에 부장님이 마이크를 잡고 뒤에서는 모든 팀원들이 백댄서를 서는 화면이었다. 그런데 그 앞에서 김혜수가 탬버린을 흔드는데, 군무같이 칼 각을 잡고 180도 360도 회전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다. 코로나 이후로는 노래방은 가지는 않았지만, 그전까지 직장인의 회식 문화에 빠질 수 없는 노래방 씬이 내 마음을 저격하였다. '직장의 신'을 찾아보니, 오 쿠팡플레이에 있다. 16회를 내가 언제 보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휴일인 토요일 오후 동안 5편을 내리 보아 정주행을 마쳤다.
2013년도에 방영했던 드라마였던 만큼, 남주인공 오지호의 옷 차림새는 촌스럽기 그지없고, 드라마 주인공들의 행동 또한 과장스럽고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왠지 모르게 정감 가는 그런 드라마가 자꾸만 눈길이 가서 끝까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3개월 계약직인 김혜수의 9시 출근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과 그리고 칼 같은 6시 퇴근 시간을 지키는 모습. 그리고 그 근무 시간엔 단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고 업무에 집중하고, 청소시간에는 청소 복장으로 갈아입고 화장실 청소 및 분리수거까지 철저하게 하는 모습. 직장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일이건 몸을 사리지 않고 뛰어들어하는 모습들이 드라마이지만 내겐 큰 귀감이 되었다. (물론 시간 외 수당도 철저히 청구하는 그녀의 프로페셔널한 모습은 흥미를 더해준다.)
김혜수는 원래 규모가 큰 은행의 정직원이었다. 신입내기 시절 자신의 모든 실수를 온몸으로 막아주고, 울고 있으면 챙겨 온 도시락을 내어주며 엄마처럼 살펴 주던 선배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비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이었던 그 선배를 정규직 전환 노동 운동을 하다가 화재 현장에서 잃게 된 아픈 경험을 하고 난 김혜수는 그 이후로 비정규직을 자처하며, 정규직을 하지 않는다. 그런 비정규직을 무시하며, 정규직 자리를 목숨보다 소중히 아끼는 사람이 오지호인데, 나중에 김혜수가 화재로 잃었던 그 비정규직 선배가 오지호 친엄마였음이 밝혀지면서 드라마는 정점에 달한다. 두 사람의 러브라인은 열려있는 채로 드라마는 끝이 난다.
나에게도 과거 비정규직들과 친분이 쌓일만하면 그들이 그만두는 시기가 돌아오고, 그중 계약이 연장되길 원해서 그들에게 비전을 주고 싶었던 경험이 있었다. 그런데 비정규직/파견직에게는 비전이나 계약 연장을 바라는 게 쉽지 않았고, 그 경험은 아직도 내게 많은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나중에 비정규직 경험을 쌓았던 친구들은 조금 더 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 기술을 쌓거나 공부를 하는 방향으로 발전의 기회를 가져갔던 케이스들을 보면서 긍정적인 면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직장 생활에 적응을 잘하고, 일을 잘하는 친구들에겐 정규직 전환의 기회가 조금은 더 열려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깊이 했었다.
업무시간에 업무를 대하는 태도는 김혜수와 같이 최선을 다 해서, 종 치면 바로 사무실을 나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 해보리라. 16회 정주행을 마치며 소감문 아닌 소감문을 끄적여본다. 가끔 사무실이 너무 지겨울 때면, 창밖으로 날아가는 상상을 해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나직이 '나는 일용직이다.'를 되뇌인다. 그러면 일상이 감사해지고, 현재 지겨운 사무실이 아늑해지는 매직아이 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모든 일은 마음 먹기 달렸다고 하지 않는가? 모든 사무직들이여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