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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리Rhee Mar 12. 2024

나를 표현하는 방법


니체는 이야기했다. “나를 표현한다는 것은 나의 힘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 세 가지는 바로 1) 베푼다 2) 비난한다 3) 부순다 이다. 궁극적으로 이 이야기를 해석해 보면, 나를 표현한다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것들이 바깥으로 나와서 표출된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상대에게 사랑과 자애로움을 베푸는 것도 자신의 힘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진정 이 문장에서 가슴 깊이 감동을 느끼는 독자가 많으리라 생각된다. 보통 “힘”이라 함은, 사랑이나 자애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껴진다. 


나는 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 어릴 적 집에서는 엄마가 가장 힘이 셌다. 아빠도 꼼짝 못 했고, 남동생도 항상 병약한 병아리처럼 벌벌 떨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엄마를 제일 존경하면서 두려워했다. 왜냐면 나에게도 엄마는 무서운 존재였으니까. 엄마처럼 힘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렇지만 어린 시절 생각에 ‘내가 가정을 꾸린다면’ 무서운 사람이 되긴 싫었다. 나는 엄마를 두려워했기 때문에, 나는 내 가정 공동체에서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존재는 되기 싫었다. 두려움의 존재보다는 서로 사랑할 수 있고, 서로 기댈 수 있는 안락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소설 속의 커다란 나무가 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들을 낳아 기르면서 최대한 인자하고 사랑 많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했다. 나는 아이들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 화를 내지 않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아이들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고, 아이들이 놀고 싶은 만큼 놀게 놔두었다.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고 싶다고 하면, 언제든지 데려오게 했고, 나는 성심 성의껏 간식을 준비하여 그들에게 대접했다. 아이들이 학원을 끊고 싶다고 하면 끊게 했고, 학원을 보내 달라고 하면 언제든 다시 보내줬다. 그들의 의견을 존중했고, 그들을 인격으로 대했다. 


여기 까지만 보면, 나는 큰 나무가 되기로 한만큼 성공한 것처럼 보이긴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이들이 내가 한 말에 토를 달거나, 혹은 내가 한 충고를 듣기 싫어하거나, 혹은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 서운하다고 말을 할 때면 나는 엄청난 배신감에 휩 쌓이곤 했다. 항상 드라마에 클라이맥스 음악과 함께, 뽀글 머리 엄마들이 방바닥을 치며 하는 말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내가 너를 어떻게 길렀는데!!!”를 읊조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사랑과 자애로움으로 아이들을 대한다고 하면서, 나는 엄청난 대가와 보상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내 말 잘 듣는 아이들, 내 뜻대로 움직여 주는 아이들을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과 자애로움은 인간적으로 가짐을 낳기에, 이는 나무가 될 수 없다. “아낌없이 주는” 앞에는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가 생략되어있지 않던가. 자연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선사한다 하여 우리에게 무슨 보상을 바라고 하겠는가. 게다가 우리는 자연에게 그 어떤 것도 보상 차원에서 해줄 수 없는 존재이다. 그저 우리는 받기만 할 뿐. 


니체가 한 말은 분명 앞에 (대가를 바라지 않고) 상대에게 사랑과 자애로움을 베푸는 것도 자신의 힘을 표현하는 방법이다.라고 써야지 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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