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씨리Rhee Jul 02. 2024

나의 꿈은 행복한 요리사

#아빠 #아내 #딸 #가족

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와 나란히 섰다. 곧 부활절이라 성당 안은 하얀 꽃으로 만개를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딸의 손을 잡고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긴장해서 내가 발걸음이 빨라졌나 보다. 딸아이는 "아빠, 조금만 천천히 걸어." 나지막이 속삭인다. 사실은 성당 안이 아니라 바깥쪽으로 발걸음을 했으면 좋겠다. 저 앞에서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는 사위가 보인다. 성당 혼례 미사를 마치고 사진을 찍기 위해 성당 바깥으로 향했다. 오늘따라 날이 너무 맑고 눈이 부시다. 햇살이 따가운 건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딸은 그렇게 신혼여행을 떠났다.


딸이 김치를 가지러 집에 들렀다. 곧 산달이 가까워졌지만 아직도 몸이 가벼워 보인다. 아이를 가지니 딸은 더 예뻐졌다. 김치를 갖고 집에 돌아가는 길을 내가 바래다 주기로 했다. 아이를 가진 딸은 조수석에 앉았는데, 내가 운전이 그렇게 조심스러울 수가 없다. 과속 방지 턱을 넘을 수 조차 없도록 속도를 못 내겠다. 아내가 아이 가졌던 것은 까맣게 기억이 안 난다. 대체 그때 나의 아내는 어땠던가?


딸아이는 딸 손녀를 낳았다. 우리 딸아이 때를 보는 것 같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딸아이가 젖을 먹인다고 집에서 있는 동안 나는 이틀이 멀다 하고 딸아이 집을 방문했다. 곧 크리스마스여서 케이크도 준비해서 가져간다. 딸이 밥을 차려준다고 하는데, 나는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집을 서둘러 떠난다. 아이 젖 먹이는 것도 힘들 텐데, 무슨 내 밥을 차려준다고. 우리 딸은 저렇게 착했다.


얼마 안돼, 둘째를 낳았는데, 손녀딸이 하나 더 생겼다. 둘째 손녀가 100일이라 떡을 맞추어 아내와 함께 딸 집을 방문했다. 우리 딸과 큰 손녀 둘째 손녀를 카메라에 담았다. 세 딸내미들이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런 세 모녀를 먹여 살리느라 우리 사위는 동분서주해 보였다. 물론 맞벌이를 했지만, 호기심도 많고 에너지도 왕성한 사위는 사회적인 성공의 길을 달리느라 바빴다. 젊은 시절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새벽에는 학원을 저녁에는 야간 대학원을 다니느라, 쉬는 날에는 대상포진이 올라올 정도로 아프곤 했다.


젊은 시절 내가 돌아봐졌다. 딸은 아이들을 낳고 살림 살고 직장 다닌다고 맨날 살이 빠지는 것 같았고, 그런 딸아이와 손녀들을 먹여 살리는 가장의 무게를 느끼며 사회적인 성공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사위가 힘들어 보였다. 나 또한 그랬으니까, 술을 먹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고, 월화수목금금금 일하는 게 당연했던 시간들이었으니까. 그간 아내가 살림을 알뜰히 살아주고, 딸아이를 예쁘게 길러준 게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코로나라는 무서운 전염병이 돌기 시작했다. 나는 3차 접종까지 마쳤는데, 몸이 좀 기운이 이상하다. 다리가 걷는 게 불편하고, 뭔가 말이 표현이 어눌해졌다. 황급히 아내는 나를 태우고 자주 가는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 병원에서 코로나 판정을 받고 나는 음압실로 옮겨졌다. 며칠이 지났을까? 나는 중환자실에 있었다. 폐렴까지 와서 산소 호흡기를 달았다. 코로나 기간이라 모든 면회가 혀용되지 않았다. 약 2주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아침 점심 최선을 다해서 식사를 차려줬다. 스테이크, 연어, 낙지, 장어, 야채는 항상 빠뜨리지 않았다. 아침저녁 산책은 아내와 함께 했다. 그렇게 다리를 절뚝이며 1년을 지냈다.


아내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나는 정상으로 되돌아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어제는 비행기도 타고 일본으로 골프도 다녀왔다. 물론 아내와 함께였다. 아내는 나의 코에 튀어나온 코털과, 아래위 옷 색깔이 촌스럽다며 한 시간째 잔소리 중이다. 이런 잔소리마저 나는 이젠 노랫가락처럼 들릴 뿐이다. 젊은 시절 더 잘해주지 못한 게 미안할 따름이다. 엊그제는 두 손녀딸과 딸아이를 불러다가 샐러드에 샌드위치를 해주었다. 정말 맛있게 먹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곧 요리자격증 학원에 등록할 계획을 발표했다. 식구들을 위해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것은 정말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가족들과 함께 눈 마주치고 살포시 웃음 짓는 이 순간이 또 감사하다.



작가의 이전글 잠과 화가 난 엄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