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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Jun 04. 2023

엄마는 어떻게 등으로 말해?

20년 2월에 발행한 글을 퇴고하여 재발행하는 글입니다.



"엄마, 들꽃이 되고 싶어?"


엄마에게 물었다. 내가 그렇게 물을 때마다 엄마는 왜 그런 걸 묻느냐고 했다. 하지만 내 딴에는 괜히 그러는 게 아니었다. 언젠가 한 번은 엄마가


"다음 생에는 들꽃으로 태어나고 싶어"


라고 했다.


15글자의 그 말은 바지 끝단에 묻는 갯벌의 진흙처럼 내 마음에 달라붙었다. 그 말이 주는 여운을 해석하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살면서 들어본 15글자의 말 중에 가장 슬픈 말이라는 것이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라는 어느 소설의 첫 문장처럼 당시에 우리 집은 우리 집 고유의 불행을 겪고 있었다. 나의 이십 대 시절이었는데, 제조업 공장의 박스 포장 로봇처럼 우리 집은 불행한 가정의 '저마다의 이유'라는 것을 뚝딱뚝딱 만들고 있었다.


엄마는 지쳐 보였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30년을 살았지만 그날은 자기 마음 챙기기도 어려워 보였다.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 그리고 원치 않게 맡아버린 가장의 역할에 지쳐 보였다. 왜 엄마가 되어서, 왜 아내가 되어서 이렇게 힘든지 지금의 상황에 회의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집 근처 식당에서 같이 칼국수를 먹고 헤어지는 엄마의 분위기가 낯설었다. 언덕을 올라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사람은 등으로도 슬퍼할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들꽃이 되고 싶다던 엄마의 말은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았다. 너무 힘들다는 말보다, 너무 슬프다는 말보다 더 진득하게 마음에 들러붙었다. 그 말에 나는 애가 닳기 시작했다. 연락이 두절된 썸녀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처럼, 주인을 기다리는 혼자 남은 개처럼, 엄마의 마음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가끔씩 엄마에게 물었다.


"아직도 들꽃이 되고 싶어?"


그럴 때마다 엄마는 이상한 걸 묻는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엄마는 어느새 엄마로 돌아와 있었고 나는 그런 그녀의 시큰둥함이 반가웠다.


대학에 입학하고 엄마 회사에 놀러 간 적이 있다. 귀를 뚫고 다닐 때였는데 단정한 이미지를 위해 귀걸이는 잠시 빼놓고 갔다. 그걸 알아본 엄마는 뿌듯해했고 엄마랑 친하다는 동료분과 셋이 보쌈이 나오는 추어탕을 먹었다. 엄마의 동료는 아들이 희귀병에 걸려 힘들어하는 분이었지만 이모처럼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반겨주셨다. 벚꽃 핀 어느 봄날이었다.


점심을 먹고 커피를 사서 근처를 산책했다. 주택가 골목이었고 날이 좋아 걷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엄마가 갑자기 총총 뛰었다. 어느 집 담장에 가더니 쪼그려 앉아 거기 피어난 들꽃을 유심히 쳐다봤다. 엄마는 너무 예쁘다며 미소 지었고, 목소리는 한껏 상기되어 있었다. 학교 다닐 때 아침마다 나를 깨우던 엄마의 목소리, 알람보다 더 크게 울리던 그 목소리가 아니었다. 소녀 같은 하이톤이었고 그 모습이 새삼 행복해 보였다. 그 순간의 엄마는 소녀 같았다. 봄에 핀 들꽃 하나만으로도 행복해하는 감수성 여린 소녀였다. 담장으로 뛰어가던 엄마의 뒷모습에서 나는 그녀의 어린 날을 보았다.


나는 겨우 3년 만에 회사 생활을 지겨워하는데 엄마는 38년을 회사에 다녔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빨래를 하고 주말에는 청소기를 돌렸다. 나는 혼자 사는 자취방에 머리카락이 너무 많다고 불만인데 엄마는 가족 네 명의 머리카락을 혼자서 치웠다. 백화점 매장에서 3개 이상 입어보면 거기서 꼭 사야 한다고 하는 우리 엄마, 다른 데를 가자고 하면 그 매장 앞은 미안해서 못 지나가는 우리 엄마, 아들 시간 보내는데 방해될까 봐 두 번 하고 싶은 전화를 한 번만 하는 엄마, 막상 통화를 하면 마음을 빚지기 싫다며 빨리 끊어버리는 착한 엄마. 내가 당신에게 진 빚은 왜 생각을 안 하는지.


영화 <기생충>을 보다가 엄마 생각이 났다. 부자로 태어나 구김살 없고 심플하게 사는 영화 속의 조여정처럼 우리 엄마도 부자로 태어나 살았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봄날이면 가든파티를 하고 살림은 가사 도우미에게 맡기는 삶, 고급 레스토랑의 푸딩처럼 그렇게 윤기 나는 삶을 살았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봄에 핀 들꽃 하나로도 행복해하는 소녀의 모습 그대로 평생을 행복하고 심플하게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던 것이다.


명절 때면 가족들에게 한 껏 사랑을 나눠주는 엄마를 보며 저 사랑을 받고 자란 나는 행운아라고 느낀다. '저마다의 불행'을 견뎌낸 것도 그 사랑 덕분이고 그런 이유로 어느새 몸도 마음도 대체적으로 건강한(이라고 생각하고 싶은) 30대가 될 수 있었다. 어쩌면 내가 마음속 깊이 바라는 건 엄마가 조여정 같은 부자로 태어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미안하지만 다음 생에도 나의 엄마가 되어달라고, 힘들고 지쳐도 그때도 나의 엄마가 되어 달라고, 그때는 좀 더 착한 아들로 태어나겠다고, 그러니 한번 더 나의 엄마가 되어달라고, 부디 그래 달라고, 그런 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엄마, 엄마는 어떻게, 등으로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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