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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추세경 Aug 12. 2023

문학적인 인간의 소설 쓰기

출퇴근을 반복하는 직장인들은 모두 위대하다고 믿는다. 낮에는 회사를 다니고 아침저녁으로는 글을 쓴다. 울림 없는 구호가 아니라 진심으로 느끼고 표현하고 싶은 것에 대해 쓰려고 한다. 불안하고 외로운 마음, 쓸쓸하고 고독한 존재에 관심이 많다. 가장 이기적인 글쓰기가 가장 창의적이라고 믿는다. 자유롭고 싶어 글을 쓰지만 그런 글이 독자들에게도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에세이집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저 홀로 피어난 꽃처럼 나답게 그렇게』를 썼다. 요즘은 소설 쓰기를 넘보고 있다.
-『인생은 사랑 아니면 사람』작가 소개 -

8월 말 출간 예정인 『인생은 사랑 아니면 사람』의 작가 소개다. 마지막 문장에서 보듯, 소설을 써보고 싶다. 어떤 장르일지, 단편일지 장편일지, 아직 모르지만, 소설을 쓰려고 한다. 나의 세 번째 책은 소설책이 될 것이다.


소설을 쓰면 어떨까,라는 생각은 예전부터 있었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부터 그랬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이랄까. 당장은 에세이를 쓰고 있지만 언젠가는 소설을 쓰지 않을까 싶었다. 글 작가가 되기로 했는데 에세이만 쓰는 건 요리를 배우는데 한식만 배우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세상에는 파스타도 있고, 어향동고도 있고, 소고기 타다키도 있었다. 똠양꿍도 있고 피시 앤 칩스도 있었다. 그 음식들이 맛있냐 아니냐를 떠나서, 그걸 만들 수 있냐 아니냐를 떠나서, 한식만 배우고 한식만 만들기는 조금 그랬다. 그러면 안 된다기보다는 어떤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지금은 초보니까 일단 한식을 배우지만 시간이 지나 언젠가는 양식도 배우고 중식도 배우고 일식도 배우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소설이 나에게는 그랬다. 일단 글쓰기를 시작했으니 에세이를 쓰지만 계속 글을 쓰다 보면 소설을 쓸 거라는 예감이었다. 소설은 나에게 미지의 세계였고 가능성의 영역이었다.


처음에는 그런 마음을 외면했다. 가능하면 지금처럼 에세이만 쓰고 싶었다. 소설이 싫어서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었다. 글작가가 되었지만 소설가는 다른 영역 같았다. 더 많은 지식과 더 많은 경험, 더 많은 독서량이 필요한 일 같았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 컸고 그런 마음에 소설 쓰기에 대한 끌림을 외면했다. 나는 뭐든 시작하면 평생을 꾸준히 할 수 있다. 그게 내 장점이다. 하지만 새로운 걸 시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걸 하겠다는 동기부여가 되는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실제로 실천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 어쩌면 꾸준함과 새로움에 대한 거부는 동전의 양면일 수 있다. 하던 것만 하다 보니 새로운 걸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것이다. 어쩌면 새로운 걸 하기 싫어하니 하던 것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소설 쓰기는 글쓰기의 영역 안에서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하고 싶냐 아니냐를 떠나서 일단은 미뤄두고 싶은 고민이었다.


자꾸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커진다. 가장 큰 이유는 에세이로 쓰고 싶은 소재가 점점 없어지기 때문이다. 처음에야 할 말이 많았다. 외롭고 치열했던 이십 대 청춘을 이야기하고, 자존감이 낮아서 힘들었다는 속사정도 밝혔다. 인생에 대한 철학도 말했고 가정사의 어두운 부분도 글로 썼다. 그렇게 마음에 담아 둔 이야기들이 이미 글의 소재가 되었다. 펜션에서 바비큐를 구울 때 고기는 많이 남았는데 숯은 자꾸 떨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불이 더 활활 타야 하는데 숯은 이미 힘을 잃고 하얀 재로 변해버렸다.


물론 살아가는 이상 글의 소재가 떨어질 일은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일상을 살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드라마를 보고, 사람 관계를 하고, 음악을 듣고, 가족들과 어울리고, 그러다 보면 언제나 할 말은 있고 무엇이든 쓸 이야기는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일상의 모든 이야기들이 서사의 소재가 될 수는 없다. 아니 정확히는, 그렇게 만든 서사가 모두 '재미'있기는 어렵다. 그런 작은 이야기들도 하나씩 엮어 재미있고 또 읽고 싶은 그런 이야기로 만드는 게 작가의 능력이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 세상에는 뉴스에 나올 법한 극악한 사건도 많고 어디 말하기 어려운 황망한 사고도 많다. 마음 저릿하게 따뜻한 이야기도 많고 일생에 한번 있을 놀라운 우연도 많다. 그런 게 삶의 모습인데 내 일상은 평범하고 반복적이다. 내 삶에도 몇 번쯤은 그런 극적인 일들이 있었지만(앞으로도 있을 테지만) 그건 '가끔' 있는 일들이지 하루하루의 일상은 잔잔하다. 작가로서의 욕심도 크기 때문에 더 이상 나만의 이야기로 글을 쓰는 건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게 내 실력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면, 그다지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이유가 무엇이든 앞으로는 상상력의 힘을 빌리고 싶다.  현실의 소재와 상상력의 힘으로 만드는 창작의 글, 소설을 써보고 싶다.


여전히 두렵다. 내가 소설이라니, 싶은 마음도 있다. 별로 상식도 없고 주변에 관심도 없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소설 작법을 배운 적도 없고, 가장 심각하게는, 소설을 읽어본 적도 별로 없다. 20대 초반부터 시작한 책 읽기는 주로 자기 개발서와 교양서 위주의 독서였다. 하지만 읽고도 기억이 안나는 책이 많았고 그런 책을 읽을 때는 글자를 읽는지, 상형 문자 그림 공부를 하는지 모를 만큼 머리에 들어오지 않은 적도 많다. 단지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에서 '뭐라고 하고 있다'는 위안을 얻은 것일 뿐이다. 그런 내가 소설을 쓸 수 있을까. 걱정된다. 쓸 수야 있겠지. 하지만 그게 좋은 소설이 될 수 있을까. 그게 두렵다.


하나 믿는 건 내가 문학적인 인간이라는 것이다. 그런 자신감은 있다. 문학적인 인간이 뭐냐고?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문학이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글이나 언어로 표현하는 예술'이다. 나는 인간에 관심이 많고 사상이나 감정에 관심이 많다. 아름다운 문장을 좋아하고 언어를 이렇게 저렇게 바꾸는 행위를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누군가의 한마디를 오래도록 기억하고 그 말에 담긴 울림을 곱씹어 보곤 했다. 그게 상처 주는 말이든 따뜻한 한마디든 언어의 울림에 예민했다. 사람들의 감정에 관심이 많아 다수가 있을 때는 각자가 어떤 기분인지, 누군가의 말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예의주시했다. 아름다운 시 한 구절 한 구절에서 감동을 받는다. 그런 문장을 읽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자꾸자꾸 보고 싶다. 그러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타고나기를 그런 쪽으로 촉이 발달해 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마음에 드는 명대사나 명장면을 반복해서 본다. 본걸 왜 또 보냐, 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게 그냥 재밌다. 작가는 어떻게 저런 대사를 썼을까, 배우는 어떻게 저런 눈빛으로 연기할까,를 생각하기도 하고, 별생각 없이 재미있게 볼 때도 많다. 사람이 자연 앞에서 마음이 편해지는 데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그것과 비슷하다. 아름다운 문장이나 좋은 글, 재미있는 영화나 잘 짜인 드라마를 보면 그냥 기분이 좋다. 그런 내 성향들을 살펴봤을 때, 스스로를 '문학적인 인간'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말에 담긴 울림이 나를 잘 대변한다.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돼도, 직관적으로, 감각적으로, 그렇다고 느낀다.


그래서 한번 해보려고 한다. 문학적인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소설도 한번 써보려고 한다. 잘할 수 있을지 아닐지는 해봐야 알 수 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글쓰기 자체를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지식이 부족해도, 상식이 부족해도, 배운 적이 없어도, 상상력이 빈약해도, 한번 해보고 싶다. 내가 가진 엉덩이의 힘과 나의 문학적임을 믿고 한번 써보고 싶다. 또 하나의 세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설레고, 기대된다.


맺을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견디며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자

-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중에서


두 번째 책을 출간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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