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휴가 기간 동안 미뤄 왔던 필사를 했다. 나는 두 종류의 필사를 하는데 하나는 손으로 책 한 권을 통째로 필사하는 것이고 둘째는 노트북으로 읽었던 책의 좋았던 구절을 필사하는 것이다. 소설을 쓸 때는 필사를 미뤘지만 10월까지는 소설 작업을 멈춘 상태라 그간의 숙제를 하고 있다. 필사는 나에게 취미고 글을 쓰기 위한 공부이자 책을 읽는 독서법 중에 하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는 일이고 머리와 손만 아프지 않으면 하루 종일도 하고 싶은 일이다.
이번 휴가에는 고세훈 교수의 <조지오웰, 지식인에 관한 한 보고서>라는 책을 필사했다. 친구가 사줘서 읽었던 책인데 조지오웰은 <동물농장>과 <1984>로 익히 알던 작가다. 책은 조지오웰의 정치사상과 살아온 생애 그리고 글쓰기에 대한 그의 신념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지 오웰은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들고 싶어 했고 가난을 삶의 한 형태로 받아들였으며 애매하고 모호한 언어표현을 비판했다. 책의 서술은 치밀했다. 이 책에 대해 논하는 내 문장들에 오류는 없는지 걱정이 될 정도라고 할까, 그걸 그렇게 쓰면 어떡해, 싶은 마음이 들정도다. 내가 학자는 아니니 어쩔 수 없다 치고, 그래도 재밌었다.
오웰은 평생 글쓰기에 몰두했다. 지금 내 꿈이 평생 글을 쓰는 것이니 오웰은 나에게 먼저 꿈을 이룬 선배 작가인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그는 정치적 글쓰기를 했고 나는 (아직까지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 정치에 관심이 없는 건 내 개인의 성향에 더해 정치적으로 안정된 시기라는 환경의 영향도 있다. (정치인들은 매일 싸우지만 역사에 비춰보면 안정된 시기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오웰의 전기를 읽으니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곧 사회에 대한 무책임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너무 나의 내면이나 행복이나 꿈에만 몰두하는 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작가로서 중요한 건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쓰는 것이다. 진실된 글쓰기는 정직한 글쓰기고 정직한 글쓰기는 작가 내면에 있는 고유한 이야기다. 작가로서의 사회적 책임이 꼭 정치에 대한 의견 표현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쓰는 글로 누군가의 마음이 위안을 얻을 수 있다면(물론 내 글쓰기의 첫 번째 목적은 나를 위한 것이지만) 그 또한 내 글쓰기의 사회적 효용이 될 수 있다.(작가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하나의 편견일 수 있다. 그래도 '나는 그럴 필요 없다'라고 무시하고 싶지는 않다) 그게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된다.
아무튼 잘 읽은 책이다. 소설가든 평론가든 에세이 작가든 예술과 글쓰기에 대한 조지오웰의 신념을 한 번쯤 살펴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