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방송 편성표 찾아보는 게 대체 얼마만이야 (feat.지니tv)
#14 <유어 아너>
재방송 편성표 찾아보는 게 대체 얼마만이야 (feat.지니tv)
나는 드라마 입소문을 엄마로부터 가장 먼저 듣는다. 우리 엄마는 재밌는 드라마는 귀신같이 알아내는 재주를 갖고 있는 실력자이기 때문이다. 엄마가 언니와 나를 가지며 직장인에서 주부가 되고, 언니와 내가 대학을 졸업하자 다시 주부에서 직장인이 되어서도, 그녀의 드라마 찾기 실력은 더 디테일해지면 해졌지 쇠퇴하지 않더랬다. 엄마는 여느 때와는 달리 엄마의 퇴근시간보다 늦게 귀가한 나를 붙잡고 씩 웃으며 엄청난 드라마 하나를 발견했다고 외쳤다. 그 드라마는 바로 <유어 아너>였다.
아니나 다를까. 엄마의 인정을 받은 드라마 <유어 아너>의 위력은 대단했다. 2화까지 선보이자마자 '손현주X김명민 배우의 연기 차력쇼'라는 평을 받으며 재밌다는 소문이 하늘을 찔렀고, 사람들은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OTT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몇년 간 사람들의 소비 방식을 붙잡았던 주류 OTT에서는 이 드라마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무슨 뒷통수 맞는 전개인가. 그동안 시청자들은 범람하는 OTT 시장 속에서 TV 채널과 멀어지며 OTT를 가입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렇게 소비 방식을 통일시킨 게 언젠데, 넷플+왓챠+웨이브+티빙에 쏟아붓고 있는 돈이 얼만데, 이번에는 그 어디서도 이 드라마를 볼 수 없댄다.
하지만 사실 이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곳이 있긴 하다. 바로 KT 계열인 지니 TV. 지니 TV의 가입자들은 이 드라마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가입을 원하지 않는다면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ENA에서 틀어주는 재방송을 보는 것이다. ENA, ENA 드라마, ENA 스토리 채널에서는 <유어 아너>의 재방송을 하루에 5회씩 해주는 공격적인 편성을 해두었다. 사실 적극성만 있다면, OTT가 존재하지 않았던 그때 그 시절처럼 (이젠 신문 편성표가 아니겠지만) 편성표를 검색해 재방송으로 드라마를 볼 수 있다. 실제로 나는 엄마의 강력 추천에 힘입어, 재방송하는 시간을 살펴보고 TV에서 예약을 해둔 후 해당 시간에 1,2화를 몰아봤다. 중간중간 광고가 많긴 했지만, (예전에는 드라마 중간에 광고도 없었는데 말이다!!) 챙겨볼 가치가 있는 드라마였다. 사람들은 이를 '광기의 재방송 편성'이라고 말하면서도 재방송을 챙겨보기에 이르렀다.
이 드라마가 대체 얼마나 재밌길래 다들 이 유난이냐고 묻는다면. 정말 재밌다. 복수극을 그리 선호하는 편이 아님에도 그 몰입감과 연기력에 눈을 뗄 수가 없어 홀린듯이 2화를 소비했다.
로그라인만 읽어도 장난이 아니다.
"아들의 살인을 은폐하는 판사 vs 아들의 살인범을 쫓는 무자비한 권력자.
자식을 위해 괴물이 되기로 한 두 아버지의 부성 본능 대치극."
드라마 <유어 아너>는 상대를 뺑소니로 죽게 한 아들, 뺑소니 사고로 죽게 된 아들을 둔 두 아버지의 이야기다. 청렴하고 공정한 판결로 존경을 받던 판사의 아들이 조폭 기반의 재벌 그룹의 아들을 뺑소니로 죽게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손현주 배우가 분한 판사 송판호는 자수를 하러 가던 길에 아들이 목숨을 잃게 만든 상대가 우원 그룹 김강헌(김명민 배우가 연기한다)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발길을 돌린다. 법으로 죗값을 무는 것에 그치지 않을 거란 걸 직감했기 때문이다. 존경받던 판사가 살인을 은폐하고, 조폭 재벌이 아들을 허망하게 잃다니. 이 아이러니에서 오는 긴장감과 몰입감이 장난이 아니다. 거기에 엄청난 실력을 가진 연기자분들이 연기 차력쇼를 벌이니, 한 순간도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참, 그리고 이 드라마에서 사람들의 눈을 벌써부터 사로잡고 있는 얼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김강헌의 장남이자, 뺑소니로 목숨을 잃게 된 상현의 이복 형인 김상혁이다. 김상혁을 연기하는 허남준 배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김강헌의 난폭함과 잔혹함을 닮았다는 인물 소개처럼 그는 그의 첫 장면에서 강렬한 존재감을 시청자들에게 심는 데 성공했다. 동생 상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온 상혁의 분노어린 눈빛이 담긴 장면들은 '확신의 날티상', '확신의 양아치상'으로 SNS 피드에 많이 오르내렸을 정도로 사람들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이 드라마는 이스라엘에서 국민 드라마 격으로 인기가 많았던 드라마 <Kvodo>의 리메이크작이다. 해당 드라마는 미국,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9개국에서 리메이크될 정도로 그 퀄리티를 인정받은 작품인 셈이다. 다행히도 이미 리메이크된 다른 드라마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일어날지 너무 궁금하고 기대된다. 좋은 드라마를 만난 설렘과 기대감이 상당하다.
지금까지 보통 드라마가 인기가 좋으면 결국에는 OTT에 실려왔다. 그러나 스튜디오지니의 관계자는 <유어 아너>가 지니 TV 오리지널 콘텐츠의 경쟁력 강화 및 플랫폼 가입자 혜택 증대에 목적을 둔 작품이라 밝히며 타 OTT 서비스 계획은 아직 없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사례들처럼 중반부쯤 OTT에 서비스될지, 아니면 독보적인 전략을 채택할지 확실하지 않다. 선택은 시청자들의 몫이다.
https://tenasia.hankyung.com/article/2024081668394
여기서 개인적으로 교훈을 얻은 것이 있다면. 역시 소비 환경이 급변하든, 플랫폼이 쏟아지든, 가장 중요한 건 드라마 자체의 재미와 질이라는 것이다. 콘텐츠가 매력적이라면 그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무섭고도 옳은 진리를 체험했다. 나에게는 불안감이 생기면서도 희망이 되는 아슬아슬한 사건이다. 과연 나의 드라마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