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나의 바다
유현준 교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집이 강남에 위치한다는 건 오로지 편의성 측면에만 좋다. 문밖을 조금만 나서면 시끄러운 차, 사람, 연기, 여기 나만 ‘사는’ 사람인 게 느껴지는 분위기가 가득하다. 그런 사실을 즐기고 수면바지를 입고 동네를 활보한 적도 있는데, 유흥을 위해 등장한 이들과 나의 거리는 꽤 큰 시차가 발생하더랬다.
강남 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역삼동과 삼성동이 참 싫은데, 똑같이 못생긴 높은 건물들이 내 시선을 가로막고 골목을 하염없이 누벼도 하늘이 보이지 않아서다. 가끔 고향인 부산이 (가족이 아니라 공간으로서) 그리워할 때가 있는데, 바다의 드넓은 끝없음이 그리웠던 것 같다. 밤이면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사라지고 그 가운데 일렁이는 파도의 모양이 그리웠을지도. 그리고, 달이 떴을 때 어떤 모양인지 빠르게 찾고 싶었을지도.
건물의 직선이 폭력적으로 조각낸 하늘을 하늘이라고 믿기에는 이미 경험한 공간이 마음속에 자리 잡혀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래서, 더 아래를 바라보는 것일까? 하늘을 올려다보기보다 열심히 휴대폰으로 하늘 사진을 저장하고 있는 모습이 갑자기 생경하게 느껴졌다.
바다 위에서 서핑을 몇 번 해봤다. 그저 유행을 따라서, 재미있을 것 같아서 했던 그 스포츠는 상상보다도 더 어려운 활동이었다. 단 한 번 파도를 잡아서 오르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다. 초보들에게 사실 파도 위보다는 바닷속에서 하염없이 파도를 바라보고 있거나, 그를 잡기 위해 또는 다시 바다로 들어가기 위한 패들링을 하는 시간이 더 많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서핑을 위해 아낌없이 패들링을 한다. 이때의 바다는 우리에게 ‘공간’이 맞을까? 서핑의 도구, 서퍼들의 시간, 그저 흘러갈 수 있는 추억과 경험..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다시 내가 좋아하는 바다란 장소를 상상해 본다. 나는 또 좋아한다. 왜? 그 끝의 모양이 없어서, 매번 다가오는 모습이 변해서, 무언가를 비추어주는 투명함 때문에, 쏴아아 살아있는 소리가 들려서, 물이란 찰랑거림의 촉감과 짠 후각과 미각, 나만의 감각을 지배해 주어서. 공간은, 결국 모든 감각의 총체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또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