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한 마음을 글로 쓸수밖에
9월 14일 한국 시간 16시 30분, 광저우에서 싱가포르 가는 비행기
스쿠버 강사 자격증을 땄던 L은 우리가 닿지 못하는 바다에 대해 언급했다. "여행을 가면 다이빙은 무조건 해야 해. 넓고 깊은 미지의 세상은 달라." 바다 속을 다루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에서도 그런 문구를 들었다. 발견되지 않은 생물, 생태계에 대해. 인류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 인간에게 아직 탐구의 대상으로 남아 있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넓고 깊은 다른 세상은 꽤나 다양하다. 캡틴 마블은 우주 세계를 선택했고, 닥터 스트레인지는 멀티 유니버스 바깥으로 나아갔으며, 앤트맨처럼 더 작은 원자 속으로 들어가는 방법도 있었다. 유일하게 지금 나와 세상이 연결되는 건 창 밖으로 펼쳐진 구름과 바다, 하늘과 바람. 카카오톡 실시간 메시지, 흘러가는 스포티파이 플레이리스트, 새로고침하는 인스타그램 스토리보다 더 낯선 피드. 최선을 다해 바라보니 꿈틀거리는 강물이 보이기 시작하고, 구름의 모양이 흔들렸으며 내 혼란스러운 이 비행기 여정은 자연스럽게 축소되었다.
자주 우는 내가 억울한 기분으로 눈물이 찔끔 난 건 오랜만이었다. 꽤나 나이가 들었나 보다. 몇 문제 틀려서 속상한 마음으로 책상에 엎드렸던 열넷의 아이는 또 다른 우주로 밀려난다. 허전한 귀가 아쉬워 유튜브에서 2시간 크러쉬 플레이리스트를 오프라인 저장했고, 오랜만에 들은 'By Your Side'로 조금 위로를 받았다. 노래가 끝나자마자 다시 재생한다. 일부러 입으로 되뇌인다. "이런 일 충분히 일어날 수 있고, 후회하는 것보다 받아들여야 하며, 다 경험이고 다 도움 된다, 다 나를 위한 일이다. 건강하게 뭐 하나 잃어버리지 않고 이제 시작할 여행 잘 즐기면 된다." 얼마나 더 가치 있고 빛나고 아름답고 재미있으려고 조금 돌아가며 세계 여행을 시키나. 더 탐구해야 하는 건 오히려 내게는 바다보다는 더 잘 모르겠는 내 마음, 내 미래, 아니 내 현재.
회사, 운동, 많은 운동 이벤트, 디제잉, 그리고 인한 유흥과 파티, 친구들, 그들과의 우정, 트레바리, 또 그에 따른 활동. 여기에 대학원, 공부, 진로에 대한 고민까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농담이 아닌 진지한 철학적 접근으로 정말,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
나의 이 여정에 함께해야 하는 나는 누구인가. 찾는 것이 아니라 생각으로 쌓아가야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지금처럼 여러 단어와 문장으로 촘촘히 묶어 다가가야 하는 것일지도. 숙명적으로 17년도부터 정리하고 있는 사진첩을 통해 몇 년 전의 나를 만나는 것일지도. 그 속에 내 눈빛, 나의 시선, 닿고 있는 것들이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는 목소리를 듣는 것일지도.
오롯이 혼자 떠난 게 언제가 마지막이더라. 작년은 혼자일 뻔한 나를 두 번이나 다른 친구들이 손 내밀어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 주면서 기회를 놓쳤다. 계속 둘이었던 시기를 거슬러 18년도 초겨울 3박 4일 뚜벅이 제주, 17년도 2월 2주 동안 갔던 포르투갈. 거기까지 올라가는 거구나.
체지방은 많이 빠지고 피부는 많이 탔으며, 몸에 타투가 세 개가 생기고, 걱정 없던 눈가에 주름은 깊어졌고, 글을 쓰던 손가락은 더 망설여졌고, 잔고는 아주 조금 나아졌다. 가족과의 연락은 이전보다 줄어들었고, 주변 사람과 비교하는 목소리는 더 안으로 파고들었다. 나이와 관계없이 취미와 가치관이 맞는 친구들이 늘었고, 듣는 음악 장르가 넓어졌다. 여전히 크러쉬를 좋아한다. 밤에 돌아다니는 것이 덜 무서워졌고, 잠자는 것보다 더 꿈같은 시간을 새벽에 보내게 되었다. 집을 꾸미고 싶은 마음은 사라졌고, 불을 켜고 기절하는 날이 많아졌다. 지금 나는 이전보다 더 어른인 걸까. 어른으로 가는 중인 걸까. 순간적인 화는 조금 더 줄었고, 여전히 마음속 감정과 생각을 쉽게 꺼내는 사람이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을 비교해 보는 손쉬운 비행. 더 어려운 건 두 번의 비행기를 타고 40시간 넘는 여정이 아니라, 그 시간이 주어졌을 때 무언갈 흘려보내지 못하는 나만의 과제들.
.. . 내 사계절의 꿈은 다 너였는데
밤하늘 가을속에 머물러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고
남겨진 너의 향기들 그속에 살아
있잖아 넌 모르겠지만
너무 보고싶어
넌 어떻게 지내
어떻게 지내
나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