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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ma Yong Mar 16. 2019

브런치 무비 패스와 처음 글을 시작했을 때의 다짐

반성문 : 글쓰기를 너무 만만하게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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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브런치 작가 신청란에 썼던 글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대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생각나서입니다. 미디어를 공부하던 저와 친구들은 수업 중이나 같이 어울릴 때 함께 본 영화나 방송에 대한 토론을 하곤 했습니다. 마치 개구리를 현미경 앞에 놓고 해부하듯이 스토리, 캐릭터, 촬영, 편집, 문화/시대적 상황 등을 따로 떼어 놓고 면밀히 관찰하는 시간이었습니다...(중략).. 단순한 감상평에서 벗어나 우리와 사회를 이해하는 심도 있는 창작자가 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습니다...(중략).. 영화나 드라마뿐만 아니라 만화, 디자인 등 다양한 시각 매체를 공부하는 이들에게 유용한 글,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컨셉을 쉬운 글로 풀어나가려고 합니다. 단순히 보는 재미에서 벗어나 우리가 쉽게 접하는 매체를 뜯어보고 비판하고 배워보면서 영화를 '읽는' 독자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았다. 글자 수를 초과해 신청란에 옮겨 붙인 뒤에도 계속 수정을 했다. 운이 좋게도 한 번에 합격 통지를 받았다.


매거진 이름도 거창했다. <창작자를 위한 영화 이야기> - 내가 미국 동부의 영화학과로 진학하고 현재 영상 제작자로 일하기까지는 인터넷의 도움이 컸다. 대학 강의보다 영미권 온라인 포럼에서 배운 지식이 현장에서 더 쓸모가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관련 컨텐츠가 해외에 비해 너무 적다는 것이 안타까웠고 어떻게 하면 내가 누렸던 기회를 나눌 수 있을까 고민했다. 글 쓰기를 시작한 것도 학창 시절 도움을 준 많은 해외 온라인 댓글러들과 블로거, 유튜버들의 길을 따르기 위해서였다. 국내에선 접하기 힘든 정보를 찾아 공유하고 현장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담아 글을 올린다는 계획이었다. 처음엔 자신만만했다. 학부에서 조교로 일하면서 모든 카메라 관련 강의는 내가 도맡아 했기에 무언가를 설명하는 일에 자신 있었고 (당시 많은 교수들이 필름을 주로 써 왔기에 그들에게 디지털카메라는 아직 미지의 영역이었다) 번역도 많이 해봐서 온라인에 퍼져있는 영어 컨텐츠를 한국의 독자들에게 알리는 일도 쉬워 보였다.



글 쓰는 일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


이 글은 반성문이다.



요즘 내가 제일 존경하는 사람들은 글 쓰는 사람들이다. 매일 꾸준히 쓰시면서 좋은 글을 내놓는 작가님들. 야심 차게 브런치를 시작했지만 몇 달에 한 번씩 글을 올리는 것도 겨우 해낼 만큼 힘들었다. 글을 잘 써봤거나 많이 써본 경험도 없었다. 고작 대학 레포트를 써본 경험에 기반해 꾸준히 글을 올리는 일이 어렵지 않을 거라 오판했다.


나는 너무 느렸다. 내가 만든 결과물을 남에게 보여줄 때 엄청 신경을 쓰는 사람이라 글을 다 써도 공개 못하고 몇 주에 걸쳐 계속 탈고를 해야 했다. <완벽한 타인>을 보고 쓴 글은 개봉 2주 전 감독 QnA 시사회에서 먼저 보고는 반년이 다 돼서야 마쳤다. 개봉 영화를 다룬 온라인 글은 시기 적절성이 중요한데 나는 글을 오랫동안 옆에 끼고 진도를 나가지 못했다.  2017년 9월부터 2019년 3월 현재까지 19개월간 올린 글이 14편 밖에 안된다.


글의 깊이에도 한계를 느꼈다. 내가 십 년 넘게 한 분야에서 감독 직함을 달고 일해 온 전문가도 아니고 아직 n년차 사회초년생인 데다가, 한 우물을 파는 대신 여러 가지 일을 두리번거리니 깊은 경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없다. 엄청나게 차별화된 컨텐츠를 가진 것이 아니라 나만이 쓸 수 있는 소재에 고민이 많았다.


긴 분량도 브런치에 맞지 않았나 싶다. 글쓰기 선생님도 SNS, 모바일 환경보다 잡지 칼럼에 더 어울리는 내용과 분량이라고 지적해주셨으니까. 사실 이 글도 여기까지 읽은 분들이 계실까 의문이 든다.


처음의 계획은 흐지부지 되었고 내 브런치는 아주 '가끔' 글을 올리는 공간이 되었다.  




2


브런치 무비 패스를 받다.




글은 정말 찔끔찔끔 올렸는데 운이 좋게 '브런치 무비 패스' 신청이 통과되었다. 무비 패스는 영화 관람 후 일주일 안에 관련 글을 올려야 한다. 정해 놓은 마감이 있어야 작업이 잘 된다는 작가들의 경험을 듣고 나도 나름의 완성 시간을 정하려고 했는데, 무비 패스를 통해 저절로 마감이 생겼으니 꾸준히 글을 쓸 수 있는 동기가 주어졌다. 글쓰기 모임도 나가고 강의도 들으면서 내 글의 문제점을 파악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글은 자주 올리지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작은 성과가 있었다. 영화학과 진학을 원하는 분들을 만나 자그마한 조언과 대학시절 경험을 공유해주었고 열심히 노력하신 분들인 만큼 모두 좋은 결과를 받았다. 브런치를 시작한 원래 목적을 오프라인에서 이룬 셈이다. 가장 많은 조회수를 얻은 <픽사의 스토리텔링 팁>은 모 대학교 게시판과 여러 글 쓰기 모임에 공유되었고, 지인들을 통해 '도움이 되었고 다음 글도 기다리고 있다'는 고마운 코멘트를 받았다. '작가의 서랍'안에 고이 모셔둔 열 편 넘는 글도 열심히 퇴고 중이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며, 고민하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자주 맡는 프로젝트도 그런 분들의 인터뷰 영상을 만드는 일이다. 나는 창작자들이 정말 잘 됐으면 한다. 우리나라의 기형적인 산업구조는 창작 직종에 마땅한 대우를 해주지 않고 적은 돈과 끝이 안 보이는 노동시간으로 옭아맨다. 열악한 환경 안에서도 창작을 지속해나가는 이들이 내가 공유하는 정보에서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찾으셨으면 좋겠다. 글과 내용의 수준이 낮아 별 도움이 안 된다면 자그마한 위로라도 얻고 가시기를 바란다. 당신과 같은 고민을 하고 이해해주는 젊은이가 많으니 혼자라고 느낄 필요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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