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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ema Yong Apr 03. 2019

<바이스> 코미디는 뉴스보다 진하다

영화와 저널리즘의 경계  [브런치무비패스 02]



딕 체니의 일대기와 백악관의 숨은 뒷얘기를 다룬 <바이스>. 영화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장르를 차용하지만 전체적인 톤은 코미디의 형식을 취한다. 현대사의 비극과 논란을 주제로 한 영화가 스릴러나 엄밀한 다큐멘터리가 아닌 코미디에 가까운 이유는 미국인들이 뉴스보다 쇼에 관심을 두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미국 코미디는 정치와 뗄 수 없는 관계이며 상당 부분 뉴스의 역할을 대신한다. 선거나 정계를 뒤흔드는 중대한 스캔들이 있을 때면 언론매체보다 토크 쇼 진행자의 발언이 더 중요한 언로로 활용되는 경우가 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 인기를 끌어온 <The Colbert Report> 나  <The Daily Show> 같은 정치 코미디 프로그램은 오바마를 비롯해 '높으신 분'들이 앞 다퉈 출연할 만큼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정치인들은 대중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탈바꿈하려는 의도로 여러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방송사마다 정치 시사 쇼를 두고 있으며, 일반 코미디 프로그램도 정치를 소재로 다룬다. 비교적 최근 사례로 트럼프의 괴랄함을 패러디한 <새터데이 나잇 라이브>가 큰 인기를 끌었고 해당 쇼는 선거철마다 정치 풍자로 높은 시청률을 찍는다. 코미디가 미국 정치의 한 축을, 정치가 코미디의 한 축을 서로 지탱하고 있는 형상이다 (이제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물아일체의 상태가 됐다고 봐야 하나).


코미디가 뉴스의 역할을 맡게 된 또 다른 원인은 뉴스의 코미디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대부분 언론사와 미디어는 대놓고 정치적 의도와 진영논리로 나뉘어 있다. 어떤 언론사가 어느 방향으로 얼마만큼 기울어 있는지 정리해놓은 차트를 찾을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언론으로서의 역할보다 자극적인 내용과 엔터테인먼트에 주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진행자가 대놓고 한쪽 편을 들거나 뉴스에 나온 출연진들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서로 싸우는 모습은 뉴스를 보고 있는 건지 예능을 보는 건지 헷갈릴 때가 많다. 폭스 뉴스는 공화당만을 위한 프로파간다로 악명 높으며, 반대 진영에선 CNN을 같은 이유로 비판한다. 인터넷 매체도 별반 다르지 않아 구글과 페이스북이 페이크 뉴스를 필터링하는 방안도 발표할 정도이다. 시청자는 그나마 중립적 태도로 알기 쉽게 시사를 떠먹여 주는 코미디에 더 끌렸을지도 모른다.  


감독인 아담 맥케이는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는 장르 안에서 딕 체니와 그의 악행을 분석한다. 영화 한 편을 온전히 그가 걸어오고 뒤집어 놓은 정치 인생을 파헤치는데 선사한 이유는 무엇일까.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딕 체니는 괴물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화 속 딕 체니의 모습이 어마 무시한 괴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뚱뚱하고 턱살이 늘어난 노인네는 사냥 중 사람을 쏜 뒤 푼수 이미지를 얻었지만, 그가 부시 정권의 실세이자 세계를 또 다른 전쟁으로 몰아넣은 정책의 총책임자라는 사실은 변함없다.  


영화의 제목인 VICE는 부통령 Vice-President를 뜻 하기도 하지만 악랄하고 부도덕한 행위나 범죄라는 뜻도 품고 있다. 영화의 주된 내용은 악행의 일대기라고 할 만큼 권력자 정치인 딕 체니의 모든 행적을 고발한다. 9/11 테러로 미국 본토가 공격받았다. 민간인 수천 명이 죽고 또 다른 테러가 이어질지도 모르는 국가 위기상황. 딕 체니는 냉정하게 상황을 주시한다. 그의 침착한 판단은 국민과 국가가 아닌 자신의 권력을 견고히 하고 더 큰 이득을 얻는 일에 쓰인다. 대통령의 권한을 집어삼킨 야심가, 대통령과 행정부 위에 군림하는 부통령의 모습이다. 


'대통령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인 부통령의 지위를 실질적인 권력의 소유자로 변모시키는 과정을 따라가면 식은땀이 흐른다. 샘 록웰이 연기한 조지 W. 부시는 꼭두각시에다 아버지 부시에게 인정받고 싶어 안달 난 애송이로 그려진다. 대선에서 자신의 러닝메이트가 되어 줄 딕 체니와 협상하면서 권력을 그대로 떠먹여 주는 모습은 '웃프'기 까지 하다. 딕 체니는 부통령이 되자 헌법을 재해석하며 행정부와 국회의 감시를 벗어난 실세가 되고 군과 외교, 에너지 정책까지 손에 넣는다. 테러와의 전쟁에서 비롯된 이라크 전쟁, 그 후 IS가 이끌고 있는 학살의 역사까지 영화는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세계사의 흐름을 그가 주도했다고 주장한다. 


<바이스>는 딕 체니 혼자만의 '성장 이야기'가 아니다. 괴물의 탄생은 시대적 요건과 그를 끌어주고 지지해주는 주변인에 달려있다. 도널드 럼스펠드, 부시 일가, 정치 야심가인 아내 린 체니와 딸이자 정치인인 리즈 체니. 9/11 테러,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그가 국방부 장관 시절에 치른 걸프전. 전쟁이라는 참담한 비극마저 딕 체니의 권력을 지탱하는 도구로 쓰인다. 코미디로 풀지 않았다면 구토가 나올 법한 내용이다. 







어떻게 영화 한 편에 이 많은 내용을 넣었을까


<바이스>는 단순히 딕 체니의 일대기가 아닌 미 현대사의 큰 사건들을 담았다. 


딕 체니와 부시 정권 정치인들의 과거

미국 언론의 진영 나누기의 시발점

헌법을 이용한 권력 강화

코크(Koch) 일가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

딕 체니가 권력의 중심부에 자신의 끄나풀을 집어넣는 과정

9/11로 촉발된 테러와의 전쟁이 이라크 전쟁으로 번진 과정

CIA 고문 사건

미국이 ISIS 초기 진압을 못한 이유

권력으로 인한 가족의 붕괴

...


영화를 보고 기억나는 내용만 적었지만 역사 교과서 같은 분량이 영화 한 편에 담겨 있다. 항상 말하지만 여러 소재와 이야기를 욱여넣은 영화는 실패한다. 감독의 욕심으로 이것저것 마구 넣다 보면 관객도 감독도 소화 못 하는 결과물이 나온다.  하지만 <바이스>는 훨씬 많은 소재를 다루고도 영화의 재미와 이해하기 쉬운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



아담 맥케이는 천재다


미국의 수많은 B급 코미디 중에서도 굉장히 '쩌는' 영화를 만들던 감독. 코미디 배우 윌 패럴과 손잡고 만든 <스텝 브라더스>, <탈라데가 나잇>, <앵커맨> 등의 영화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B급 명작이다. 그가 영화를 언론의 창구로 활용하기 시작한 시점은 영화 <디 아더 가이즈>부터다. 교활한 경제사범들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두 형사의 버디영화는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폰지 사기' 수법을 설명하는 인포그래픽을 보여준다. 이때부터 권력자가 행하는 '대국민사기극'에 분노했던 것일까. 그는 유머에 심각한 내용을 담아 전달하는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기 시작한다. <앵커맨 2>에서는 언론이 아닌 엔터테인먼트로 전락한 미국의 뉴스를 비판하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룬 <빅쇼트>라는 명작을 내놓더니 어느새 <바이스>를 통해 완전히 작가주의 감독 Auteur로 자리 잡았다.


놀라운 것은 단순히 작품의 의도만이 아니다. 주제를 따로 놓고 영화를 봐도 만듦새와 퀄리티가 높다. 40년이 넘는 시간의 간극을 컷과 컷 사이의 간격으로 조절한다. 스필버그가 카메라 연출에서 '신의 경지'에 올랐다면 맥케이는 편집과 레퍼런스 활용의 거장이다. 인물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 표현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인용하고, 권력 다툼은 보드게임으로, 자료 화면은 인터넷 짤로 대체하는 등 영화를 꽉 채우는 파격적인 시도는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생동감과 세련됨을 준다. 시각적인 인용과 직설적인 나레이션은 많은 이야기를 담은 영화가 중심을 잃지 않고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방법이다.




결국 세상은 코미디


 <바이스>에 잠깐 나오는 내용 중 공화당을 위한 '폭스 뉴스'와 보수 싱크탱크의 설립을 다루는 장면이 있다. 이 중에서도 악명 높은 '헤리티지 재단'은 미 극우주의 정책을 대변하는 기관이다. 국내 '일부' 언론은 이를 그저 미국의 싱크탱크로 포장하고 정치적 의도를 감춘 채 그들의 "연구결과"를 인용한 기사를 쓴다. 최근 나경원 의원의 연설에서 비롯된 외신기자 논란의 속내를 깊이 들여다보면 국내 언론을 불신하고 외신과 해외기사의 신용도를 더 높이 치는 현실이 보인다. 그러나 현지 사정을 감안하면 서양 언론이라고 나을 것이 없다. 


<바이스>는 쿠키영상까지 비판 의식을 아끼지 않는다. 포커스 그룹의 참여자는 이 영화 자체가 진보 놈들의 수작이라고 비꼬며 옆에 앉은 다른 참여자와 한바탕 싸움이 일어난다. 이들의 싸움을 지켜보던 다른 참가자는 빨리 <분노의 질주> 속편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바이스>의 제작자들은 영화가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졌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이 짧은 씬은 영화를 본 미국인들에게 많은 기대를 걸지 않는다는 감상처럼도 보인다. 국민의 무관심이 매 선거 때마다 새로운 괴물을 만들고 있다는 자아성찰도 엿볼 수 있다. 영화는 복잡한 용어와 현란한 쇼로 진실을 가리는 언론과 굳이 그러지 않아도 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국민 모두를 조롱한다. 권력 위에 군림하는 괴물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진다. 그런 괴물을 살 찌우는 것은 사람들의 망각과 무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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