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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기획이 끝나고 나면

메익 센스하고 로직하며 바잉할 수 있는 기획을 위해

by 매실

이 모든 기획이 끝나고 나면


-박 AE



<1장 : 기획사의 세포들>


사람들이 모여 일하는 곳을 이렇게 부른다. 조직.

이 단어가 가진 생물학적 의미와 사회적 의미의 기묘한 일치를 떠올리면 서늘한 경탄이 밀려온다.
매일같이 드나드는 이 회사도, 수많은 사람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하나의 대형 생명체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여기는 업계 2위 광고대행사다. 하나의 프로젝트가 의뢰되면 그 담당자들로 이뤄진 ‘셀’이 탄생하고, 프로젝트가 종료되면 셀은 역할을 다하고 해체한다. 우리 셀에는 아트디렉터, 카피라이터, 디자이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그리고 AE까지 다양한 전문가 서른 명이 모여 있다. 그리고 이들이 모두 필요한 일이 맞나 의심스러운, 세상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듯한 무언가를 만든다.


이 바닥에서 오래 일하다 보면, 마케팅도 흔히 생각하는 광고 말고도 참 다양한 갈래가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번 광고주는 M 전자기기 회사 마케팅부서다. 디지털 매장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아무래도 기기지만,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벽면에도 대형 디스플레이가 있고, 그 위로 무언가가 계속 재생되고 있다. 우리 광고주는 그 화면에 들어갈 영상 시리즈를 의뢰했다.


그들의 요구에 따르면 영상은 짧으면서도 몰입감 있어야 하고, 어디서 본 듯하면서도 새로워야 하고,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모두의 일상인 양 보여줘야 한다. 그 모순된 요구를 조화롭게 구현하는 것이 이 일의 미덕이자 비극이다. 애초에 쉬웠다면 대행사를 고용할 이유도 없다.


기획서 속 스토리보드에는 뉴욕의 풍경, 다인종의 젊고 패셔너블한 모델들이 등장한다.

고급 이어폰을 낀 채 눈을 감고 음악을 듣는 20대 흑인 남자. 창밖엔 조용히 흐르는 불빛.

밝은 표정으로 블루베리 스무디를 들고 카메라를 바라보는 여자, 그 뒤로는 린넨 커튼 뒤로 살랑이는 햇살.

그리고 그 위에 뜨는 자막 - Live it your way.


글로벌 프리미엄을 보여주기 위한 이상향은 늘 비슷한 클리셰로 귀결된다.

이게 정말 ‘프리미엄 라이프스타일’일까. 누구나 공감하라고 만든 영상이지만, 정작 누구의 모습도 없다.

그럼에도 이 콘텐츠는 광고주에게 매장 실적을 좌지우지할 핵심이다. 말하자면, 고객이 매장에서 느끼는 ‘퍼스트 임프레션’이자, 오프라인 브랜드 체험의 ‘터치포인트’이자, 매장 체류 시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킬러 콘텐츠’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안에 들어갈 시나리오를 만들자고 아이디어 회의를 열고, 그 요소를 넣은 시안을 보기 위해 기획안을 쓰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내 말을 반영한 콘셉트를 만들고, 디자이너는 그 콘셉트를 반영한 시안을 그린다. 다시 누군가는 그 시안을 보며 “근데 고객이 보기나 할까요?”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그건 몰라도 예쁘게 나온 것 같습니다”라고 정리한다.


정작 고객은 벽면에 영상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신제품만 몇 번 만져보다 떠날 뿐이다. 하지만 임무를 위해 태어난 세포에게, 이 임무가 왜 필요하냐는 존재론적 질문은 사치다. 물론 지루한 고객 한 명이 벽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흘러나오는 영상에 빠져들고, 문득 자신의 일상을 대입하고 작게나마 구매욕을 느낄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얕은 가능성에 매달려 오늘도 분투한다.



abstral-official-b73FU4jwFLk-unsplash.jpg @unsplash






<2장 : 갑을의 무한루프>

오후 2시, A타워 14층.


출시 전 제품정보가 새어나가는 보안사고를 막기 위해, 블라인드 틈새 하나조차 외부에 보여서는 안 되는 공간.


모두가 도착하기 전부터 이미 무거운 공기가 감돌고 있다. 곧 광고주의 코멘트와 호통, 을들의 설명과 아첨이 뒤섞인 말들 속에서 입에서는 수증기가, 정수리에서는 열기가 피어오르고 이곳은 후덥지근한 찜통처럼 데워질 것이다.


중요한 결정은 흔히 논리보다는 감정으로 이루어진다. 이 바닥의 프로는, 자연스럽게 갑의 감정선을 컨트롤하는 자다. 예를 들면, 고객의 취향과 미팅 타임라인을 고려한 다과 라인업 같은 것 말이다.


빈 회의실에서 분주한 최 AE는 15년 차 베테랑이다. 광고주가 열을 올릴 즈음 ‘노기’를 식힐 과일도시락을 세팅 중이다. 아메리카노뿐 아니라 논카페인 니즈를 고려한 차까지 음료는 도합 스무 잔. 과하다 싶어도 꼭 준비한 수량만큼 사람이 들어선다. 동물적 직감이라 하기엔 일종의 통계에 가깝다. ‘짬바’란 아마 이런 걸까.


이곳에서는 직급이 높을수록 방문하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미소 지으며 다과를 내고, 총알받이처럼 질타를 받아내고, 끝까지 배웅하며 다시금 고개를 숙이는 일을 맡는다. 어디까지가 업무이고, 어디서부터가 눈치인지 경계가 흐릿해지는 순간들 속에서 선배들이 지고 있는 접대라는 십자가의 무게를 생각하곤 한다.


박 AE가 회의실에 모셔온 ‘그들’이 회장님처럼 행차하고, 마주하는 인사말들을 헤치며 여유롭게 앉는다. 그들끼리 콤비로 주고받는 ‘아이스브레이킹 농담’으로 막은 펼쳐진다.


“아유, 오늘 윤 CD 님 양말 색이 화려하시네.” 하는 광고주 1의 말에,

광고주 2는 “허허, 시작은 화려해야죠. 회의 끝나면 털려서 초라할 텐데.”라고 맞받아친다.


모두의 어색한 웃음이 이어진다.
재밌자고 하는 농담인지, 꼽준 건지 판단하는 건 사치다. 중요한 건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는 민첩한 리액션이다. 방금 전까지도 축 쳐져 있던 분위기가 눈에 띄게 빠릿빠릿해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 척추를 곧추세운다.



austin-distel-rxpThOwuVgE-unsplash.jpg @unsplash



오늘은 그들이 ‘늦은 만큼 기대하겠다’고 벼르던 PT날이다.

이 시스템은 거대한 역할놀이와 같고, 광고주 역할을 맡은 이는 그게 누구든 흐름을 지배할 자유를 갖는다. 구체적으로는, 남의 발표 중에 휴대폰을 만질 자유, 하품할 자유, 전화를 받으러 나갈 자유, 말을 끊고 실소를 던질 자유 같은 것이다. 와중에 말없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갸웃 이거나, 무료하다는 듯 두피를 긁는 제스처만으로도 자신의 존재감을 전달할 수 있다.


"다음으로 넘겨보세요.

다음이요.
다음 또 있어요?
시간 몇 시야..."


피땀으로 만든 슬라이드가 그들의 호령과 함께 휙휙 넘어간다. 두 주간 갈아 넣은 단어들, 밤새 찾은 레퍼런스, 누더기처럼 기워 바꾼 레이아웃이 덧없이 스친다.


“이게 make sense 해요? 로직이 있어요? 레퍼가 있어요?”


예리하게 피드백 중인 광고주 1은 최 AE보다 다섯 살은 어리지만 훨씬 노련하다.

악명 높은 경쟁과 압박을 내공 삼아 완전한 ‘M그룹 인간’으로 진화한 독종이다. 지난 10여 년 간 위로부터 닦이고 닦여, 이제는 ‘윗사람’에 빙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말투는 물론, 안경을 콧등 위로 밀어 올리는 각도까지 완벽하게, 그들의 임원이 몸에 들어온 것처럼 발언하고 있다. 이제는 회식 자리에서 보이는 제스처조차 그녀 고유의 것인지, 누군가의 미러링인지 알 수 없다.


“내가 위에 가져갔을 때 바잉하는 논리를 달라고 했잖아요.”
“요즘 우리 팀장님이 이런 감성 되게 강조하세요…”


가만 들어보면, 그녀 또한 일의 결정권자가 아니다. 그들을 고용한 누군가의 입맛대로 일을 전달하는 운반자에 가깝다.


“근데 본부장님은 또 그런 까라를 별로 안 좋아하셔서요.
아, 너무 상충되긴 한데... 무슨 느낌인지 아시잖아요? ㅎㅎ”


답을 정하는 사람은 없고 헤매는 사람만 있지만, 모두 알 듯 말 듯한 얼굴로 초당 3회씩 끄덕인다.

두 시간의 열띤 프레젠테이션과 침 튀기는 피드백. 워드 일곱 페이지에 빼곡한 회의록이 오늘의 치열함을 증명한다. 선임 AE들이 그분들을 배웅하는 동안 모두 자리를 턴다. 조용히 집에 가도 괜찮을 것 같다는, 무사히 끝난 날의 안도가 느껴진다. 남은 커피잔을 치우고, 굳어있던 고개를 좌우로 까딱이고, 늘어놓은 문서와 노트북을 우선 쑤셔 넣고 일어난다.


그리고 울리는 업무 메신저.


「혹시 오늘 스탠바이 가능하실까요? 갑자기 내일 오전에 본부장님 보고가 생겨서요.」
「죄송해요, 급해서 부탁드릴게요.」


거절할 수 없는 명령, 아니 부탁이 오고야 만다. 갑이 을이 되고, 을이 그들의 을에게 읍소하는 구조.


(카카오톡 단톡방)

[오후 6:29] 부탁하는 박 AE : 여러분.. 아직 안 가셨죠? 부탁합니다.. 우리 하루만 더 달려봅시다!

[오후 6:32] 울고 있는 김카피 : 우리는 유명한 육상팀임

[오후 6:32] 단호한 최 AE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후 6:33] 파이팅 하는 정아트 : 저의 달리기는 이것인데요 (칼퇴하고 뛰쳐나가는 이모티콘)


적어도 내부에서는 괴롭히지 말자는 을들끼리의 불문율이 있다. 우리끼리의 조소나 농담은 현기증 속에서 버틸 수 있게 하는 본능적인 생존 반응 같은 것이다.

잠깐의 깔깔거림 뒤 흐르는 침묵.


그리고 남은 건, 정리되지 않은 피드백과 내일 전까지 완성해야 할 보고서다. 그게 왜 오늘인지는 묻지 말자. 우리는 묻지 않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니까.





<3장 : 관성과 열정 사이>


본사 사무실, 밤 열 시를 훌쩍 넘긴 시간이지만 모두가 EOD 보고 문서를 고치며 앉아 있다.

EOD는 ‘해당일까지(End of Date)’라는 뜻으로, 시간은 보장 못 하지만 그날까지 해달라니까 자정 까지는 무리해서 해보겠다는 소극적 생색이 담겨 있다.


기획이란 말해지지 않은 욕망을 읽는 일이라고 했던가. 클라이언트의 기대, 불안, 욕심, 회피, 불만, 농담, 이 모든 것은 정돈 안 된 육성에 담겨 암호처럼 흩뿌려진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단서일지 휴지일지 모를 조각들을 모조리 주워 담고 해석하는 일을 한다. 끝까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계속 문서를 만들고, 도표를 그리고, 또 다른 요약을 시도한다. 알면서도 반복하는 ‘뻘짓’.


결과물은 세 시간 전과 그다지 달라진 게 없다. 페이지 순서가 바뀌고, ‘타이틀’과 ‘서브카피’ 사이 간격이 조정됐고, 사진의 ‘오와 열’이 정돈됐으며, 그 말이 그 말인 단어 몇 개가 바뀌었을 뿐이다. 가령 그 변경이라 함은, ‘모든 스토어 포맷의 통합적 고객 경험을 위한 전략적 어프로치’에서, ‘포맷’보다는 ‘유형’이 더 적절하지 않나, ‘어프로치’만 쓰면 없어 보이니 ‘및 코어 방향성’을 붙이자 따위의 것이다.


소모적인 논의가 늘어질수록, 평소 성질 더러운 동료의 표정이 조금씩 일그러진다. 그의 열정은 퇴근한 지 오래다. 중도포기자 발생 위기를 감지한 누군가, “히히, 우리 무슨 방망이 깎는 노인도 아니고.. 거의 다 됐다…” 하고 멋쩍게 웃는다.


한 때는 나도, “디테일은 네 인생에 써라, 회사 일에 쓰지 말고.”라는 조언을 한심하게 여기던 때가 있었다. 대충 시간이나 때우느라 성장도, 고군분투도, 교훈도 없는 인생이라니. 내 장점은 고생을 고생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며, 누가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애쓰는 날들이 더 나은 내일을 만들어준다고 믿었다.


그 어렸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너도 결국 그런 한심한 과장이 됐구나’라고 생각할까.

그럼 나는 대답할 것이다. “그 한심해 보이는 과장들도, 다 겪어보고 그렇게 된 거야.”

No Gain, No Pain. 얻을 게 없으면 고통도 없다지. 이 말을 슬로건 삼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kevin-liu-s_aF7KXVPWk-unsplash.jpg @unsplash



자정이 가까운 것도 잊고, 모두가 파도 앞에 무너질 모래성을 짓는다.

이내 또 다음 보고라는 파도가 온다.

화이트칼라 노동의 추상성에 넌더리가 난다.


멋진 기획자가 되어 세상의 권태를 덜어내고 싶었다. 사람들의 욕망을 착취하지 않고, 이해하고 싶었다. 말랑하게 꿈꾸던 때조차 기획 일은 형체 없는 추상이었다. 대책 없는 꿈은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나 보다.


이 업에 들어온 뒤로 나는, 전자 쓰레기로 폐기될 것들에 열심히도 공들였었다. 보고를 위해 만든 숫자들, 제안서 밖에서는 아무에게도 의미 없는 문장들, 합의와 논의와 회의와 절충들에 쏟아부은 시간은 어디로 흩어졌을까.



인생 한탄을 투영한 분노가 차오른다.

꾹꾹 눌러왔지만 이젠 참을 수 없다.

자판 소리뿐인 적막을 깨고 일어섰다.

두 주먹을 꽉 쥐고, 침을 한 번 삼킨다.


"이러고 있어 봐야 결과나 사람이나 더 멍청해질 뿐입니다!”


일동 어안이 벙벙.


“이 하등 쓸데없는 짓거리에 왜 인생을 허비하며 앉아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집에나 가시죠!"


회의실의 체게바라처럼 나는 웅변하고, 모두가 흑마법 같은 과몰입에서 서서히 깨어난다.

여기까지만 하자고, 드디어 집에 갈 채비를 한다.


‘아, 이거 졸라 쓸데없잖아.’를 깨달은 사람들 사이로, 이제 적당히 하고 제시간에 퇴근하자는 노동 혁명이 일어난다. 그 기조가 회사 전체로 바이러스처럼 퍼진다. 7시 이후면 정수기 돌아가는 소리 외엔 아무도 없는, 정적만 흐르는 사무실 풍경이 펼쳐진다.


조용하고 평화롭다.





하지만 이건 상상으로나마 그려본 이데아의 평화다. 나는 여전히 철야 중인 회의실에 앉아 있다.

노트북 가까이 고개를 처박은 채, 눈알이 시뻘게지도록 몰입한 이들을 보라.

이것도 평화의 한 형태다.


현실의 평화는 본질을 잊은, 습관적인 과몰입 위에 이루어져 있다. 이 몰입이 헛되다는 말 한마디는 회사 조직과 구조와 건물, 그리고 '성실한 아무개'라는 각자의 정체성까지도 쩌억 금이 가게 할 균열이 된다.

나는 이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도, 모두를 모세처럼 이끌 수도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늘 그렇듯 다시 내 자리에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잠시 눈을 감는다. 사무실 창밖 저 골목에 무표정하게 서서, 담배 연기로 시름을 날려 보내는 고독한 도시인이 된 상상을 한다. 환기한 지 오래되어 텁텁한 공기를 깊게 들이마시고, 후우..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증기를 조용히 내뱉는다.


그리고 답답한 적막을 깨뜨릴 말을 다시 떠올려본다.


타석 위에 오른 투수처럼 신중해진다. 분노에 눈멀어 세게 던졌다간 내일 출근이 퍽 껄끄러울 것이다. 대출만큼 남은 출근일을 헤아리며 쥐었던 힘을 살짝 뺀다. 그렇다고 너무 힘없이 던져서 툭 떨어져서도 안 된다. 포수의 눈빛을 살피고, 보장된 명중타를 던진다.





“혹시.. 야식 시켜 드실 분..?”






-박 AE (25.4.20)



*<퇴고로 완성하는 글쓰기 캠프>에서 한달 동안 4회 이상의 퇴고를 거쳐 완성된 글입니다.

https://contents.premium.naver.com/bitterpassion/barewriting/contents/250130114621667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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