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프로덕트를 디자인하며 배운 점을 기술하며, 회사 내부의 사업, 기획, 프로덕트 기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언급하더라도 출시된 기능 위주)
졸업도 전에 갑자기 취직했습니다(인턴이지만)
회사 입사 과정에 대해 한 줄 요약하자면, 포트폴리오와 면접을 거쳐 UI 보조 및 콘텐츠 디자인 인턴으로 해당 회사에 12월 말에 입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는 나의 지난한 방황, 지인의 도움, 다양한 상황 등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콘텐츠 디자이너로 뽑혔으나 내 포트폴리오가 UX/UI 프로젝트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막상 내게 주어진 일은 B2B 프로덕트를 디자인하는 일이었다. 면접 때 UX/UI 디자인에 대한 간절함을 강력히 어필해서인지, 회사에서는 감사하게도 6개월 동안 콘텐츠보다는 프로덕트에 집중할 수 있게 일을 분배해주었다. 갓 학부를 졸업한 병아리 디자이너로서 프로덕트 한 개를 맡는다는 것은 너무나 귀중한 기회였다.
내가 맡았던 프로덕트에 대해서
그렇다면 내가 맡은 B2B 서비스는 무엇인가.(따-단) 이 B2B 프로덕트에 대해 쉽게 설명하기 위해 배달의 민족을 예시로 들겠다. 고객이 ‘배민 어플’로 주문을 넣으면 해당 매장에 ‘배민 셀프서비스’로 고객 주문이 들어온다. 사장님은 들어온 주문을 보고, 수락 여부를 결정하고, 음식을 만든다.
10년 전 중국집에 짜장면 주문하던 것을 생각해보자. 매장에 전화를 걸었더니 통화 중이거나, 신호음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은 쓸쓸한 경험, 있을 것이다. 매장을 운영하는 사람은 어땠을까? 사장님 입장에선 주방에서 음식 만들고 있다가 전화받으러 카운터로 뛰어온 적이 많을 것이다. ‘전화 주문’이라는 중간단계 없이 고객이 주문한 메뉴가 바로 사장님한테 알림이 간다면 두 이해관계자의 불편함이 해소될 수 있다. 추가로 정보가 음성으로 전달될 때 생기는 문제(메뉴가 잘못 전달된다거나)도 해결할 수 있겠지?
이런 사이클이 돌아가기 위한 전제는 ‘배달의 민족’ 앱뿐만 아니라 사장님도 ‘배민 셀프서비스’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배민은 거리가 멀면 손님이 매장에 잘 방문하지 않는다는 점, 가게 홍보도 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사장님까지 이 서비스 생태계로 끌어들였다. 추가로 매출을 트래킹 할 수 있는 배 민장부, 저렴하게 인증된 식자재를 구매할 수 있는 배민상회 등 서비스를 제공하며 사장님의 불편함을 더욱 줄이고 있다.
너무 당연한 말을 하고 있어서 좀 부끄럽긴 하지만, 내가 맡았던 프로덕트에 대해 쉽게 설명하기 위해 배달의 민족을 끌어들여 봤다. 요약하자면 사수님은 B2C인 메인 서비스, 나는 ‘사장님 쪽’의 서비스를 맡았다는 거지~
회사가 배민처럼 빅 픽쳐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고객의 니즈뿐만 아니라 스크린골프 예약 시 사장님 입장에서의 문제점도 해결해야 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아는 것이 우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문제를 아는 것부터 문제가 있었다.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는 그나마 쉽지만, 사장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직접 매장을 운영해보지 않는 이상 인터뷰/서베이를 통해 여쭤보거나, 사장님께 빙의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리서치한다고 매장을 운영해볼 수는 없는 일이고, 아직 빙의 내공이 부족했기에 나에게 남은 방법은 인터뷰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놈의 코로나 덕분에 12월-1월에는 실내체육시설 운영 금지가 내려져 스크린골프 매장 영업이 중단된 상태였다. 매장 방문은 아예 불가능한 상황. 또한 일개 불쌍한 학생임을 어필하여 인터뷰를 부탁하던 학부 시절과 다르게 (이렇게 부탁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남의 업장에 가서 인터뷰를 부탁하는 것도 힘들었다.
어떻게 되었던 프로덕트 기획을 위해서는 사용자가 원하는 바를 알아야 하므로 나는 반드시 리서치를 진행해야 했다.
그러면 어떻게 리서치를 진행했나
리서치를 통해 알고 싶었던 것은 3가지였다:
1. 업계 현황에 대해서(시장 상황, 고객, 경쟁사 등)
2. 비슷한 기능이 있는 다른 서비스 (제공하고 있는 기능)
3. 사장님의 pain points & needs
1주일이라는 리서치 기간 내 할 수 있는 리서치는 데스크 리서치밖에 없었다. 말만 영문으로 쓰여서 있어 보이는 거지 그냥 구글링이라는 뜻이다. 일단 재기 발랄한 MZ 세대답게 검색엔진을 두드려가며 업계 현황을 다룬 기사나 논문을 읽고 정리하였다. 스크린골프의 ‘스’자도 몰랐던 골린이였지만 이 과정을 통해 시장 상황과 주요 고객층, 향후 발전 가능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1번은 처리했고, 다음 단계로 가자.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비슷한 프로덕트를 구석구석 리서치를 해서 우리 프로덕트가 가지게 될 차별점을 정의하려고 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복병이 있었으니…. B2B 프로덕트를 찾는 것도, 사용해보는 것도 어려웠다!
그동안 나는 B2C 서비스만 기획했었다. B2C 서비스의 리서치는 상대적으로 쉬운 면이 있었다. 플레이스토어에서 경쟁사를 찾는 것도, 회원 가입해서 직접 서비스를 사용해보는 것에도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구글링조차 한계가 있는 B2B 프로덕트는 열불 나는 특징 두 가지가 있었다. 1번, 오프라인 매장을 겨냥한 B2B 서비스인 경우, 회원가입 시 내가 실제 자리 잡고 있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함. 2번, 주로 유료로 제공되는 프로그램이라는 점. 또 식당 예약, 헤어숍 예약, 매출 관리 등의 B2B 프로그램은 그나마 많은 편이었지만, 스크린골프 매장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은 찾기 어려웠다.
‘안 되면 되게 해라’라는 정신으로 지금까지 버텨왔던 나. 방법을 찾아야 했다. B2B 프로덕트를 소개하는 홍보페이지를 뒤지고, 유튜브에서 프로그램 사용 방법을 다룬 동영상들을 검색하여 최대한 보이는 인터페이스를 캡처했다. 캡처본을 토대로 타 서비스 기능을 정리하였다. 그렇게 비슷하거나 참고할만한 프로덕트를 6개 정도 추려 Review Matrix를 제작하였더니 경쟁 프로덕트에서 가져갈 수 있는 장점 + 경쟁 프로덕트가 제공하지 않는 기능을 알 수 있었다.
리뷰 매트릭스
헉헉거리며 겨우 산 두 개를 넘었더니 새하얀 설산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고객과의 인터뷰! 사장님이 매장을 운영할 때의 어려움을 인터뷰 없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등반 자체를 고민하고 있던 차, 사수님이 회사에 스크린골프 아르바이트를 했던 직원이 있다고 귀띔해주었다. 가뭄에 단비다 싶어 달려가 직원분께 몇 가지 궁금증에 관해 물어보았다. 질문에 막힘없이 답해주신 직원분께서는 소규모 매장이 아니면 실제 매장 주인분보다는 알바생이 매장 관리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이 이야기를 듣고, 인터뷰 없이 스크린골프 매장을 운영할 때의 어려움을 알 방법이 떠올랐다. (잔꾀 부리는 데는 도가 텄다!)
한 번 아르바이트 잘못 지원했다가 dog 고생한 경험이 있던 나는 아르바이트 후기를 찾아보는 습관이 있었다. 대충 후기를 보면 업무 강도나 어려운 점, 일의 특징을 알 수 있다. 궁예 뺨치는 관심법을 다시 활용해보기로 했다. 우선 알바 사이트와 포털에서 검색을 통해 스크린골프 매장 알바 후기 열댓 개를 찾을 수 있었다. 다음, 후기 글에서 매장 관리를 언급한 부분을 추려 Affinity Diagram으로 정리하였다.
어피니티 다이어그램
직접 대면 인터뷰를 진행하지는 않았지만 이처럼 알바 후기를 정리하여 매장 업무, 운영 시 어려운 점 등 매장이 어떤 식으로 관리되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그 후 어피니티 다이어그램에서 뽑아낸 인사이트로 문제점을 정의한 뒤 어떻게 하면 회사에서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지 러프하게 생각해보았다.
이리저리 잔꾀를 부리며 리서치를 끝내고, 내용을 키노트에 정리하여 회사 분들께 프로덕트가 나아갈 방향성에 관해 설명하였다. 더불어 내가 리서치를 하며 들었던 의문점에 대해서 회사 분들에게 여쭤보았다. 그렇게 회의를 통해 막연했던 프로덕트가 점점 구체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야매 리서치 방식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정공법의 리서치가 힘들 때 해결한 방법을 소개하고 싶었다. 이렇게 리서치가 어려울 때 해결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같이 공유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