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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Aug 15. 2023

부지런하니 눈치만 보이더라

미덕에 대한 작은 의심

꿀 같은 방학에 묻어 있던 꿀은 다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방학이지만 저는 학교에서 몇몇 동료분들과 함께 전문학습공동체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분명한 목적을 갖고 모인 자리여서 목표의식이 분명합니다. 특히 이번 2학기부터 시작될 특수학교 고교학점제 선택교과 운영을 대비한 수준별 성취기준을 마련하느라 열을 내고 있지요.


사회생활에 있어 최고의 미덕은 뭐니 뭐니 해도 부지런함과 성실함 아니겠습니꽈. 방학 중 가족 휴가 일정과 아이들 학교, 학원, 병원 일정을 소화하며 동시에 과제를 하려니 집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만,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중간 점검일은 다가오고 폭염은 기승이어도, 시원한 거실 바닥에 쩍 하고 들러붙은 등짝을 떼어내야지요. 그러고 보면 제 특유의 강박과 불안이 때론 좋은 동력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쯤 되면 '귀찮음보다 책임감이 강하니 이만하면 나쁘지 않다.'며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것이지요.  


잠시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을 드리자면, 일반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2022 개정 교육과정 제도 도입에 발맞춰 특수학교 교육과정 운영의 효율성과 연계성을 위한(정확히 일반학교 특수학급 소속 아이들) 작업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2022 개정 교육과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고교학점제를 특수학교에 도입시키려니 여간 복잡한 게 아닙니다. 우선 특수학교 기본교육과정 내 선택교과를 학부모 선호도에 따라 몇 가지로 선정해야 하고요, 또 해당 교과를 학생 수행가능한 수준별 성취기준을 별도로 마련해야 합니다. 그렇다 보니 교과서와 지도서, 성취기준 예시를 거의 해체하다시피 재구성할 일이 생기는 거죠. 아이들의 수행 수준은 천차만별이니 말입니다. (조금이라도 의미 있는 활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꼭 필요한 작업입니다.)


복잡한 이야긴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이렇게 어려워서야...




과제 점검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간 다른 동료들의 작업물이 궁금하기도 하고, 제 작업물의 수준이 적절한지도 의문이 들어 동료들의 단톡방에 작업 중인 사진을 올렸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느냐고요.


그런데 톡방 분위기가 술렁입니다. 뭔가 잘 못 된 걸까요. 방향을 잘 못 잡았거나, 수준이 현실적이지 않거나, 그도 아니면...? 아무튼, 사진을 회수하기엔 너무 늦어버렸고 동료들의 답장이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음... 아무래도 제가 의도치 않게 잔잔하던 톡방에 돌을 던진 듯하네요. 잠시 뒤, 톡 방에 동료들의 원성이 쏟아졌습니다. '너무 한 것 아니냐.',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이냐.', '다시 하겠다.' 등등...


다음 날 모임 장소에 나가니 동료들의 시선이 따갑네요. 적당히를 몰랐던 저는 민망하고 미안한 마음에 괜히 앞에 놓인 수박주스만 홀짝입니다. 새벽까지 수정하셨단 분도 있고, 미처 마무리를 못하고 오신 분도 계시네요. 파장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다들 편히 오셨을 텐데, 가뜩이나 바쁜 동료들을 더 바쁘게 만든 것 같아 머쓱하기만 합니다.


사회생활의 미덕을 조금 수정해야겠습니다.

부지런함과 성실함이 아니라,

'눈치'와 '완급조절'로요.



"넌 매사에 너무 진심이야."


...


이 말은 칭찬일까요, 질책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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