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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움 Aug 11. 2023

어느 날 캥거루가 되었다.

저는 텔레비전을 보지 않습니다. 나름 이미지 관리 중이라서요. 아이들에게 '텔레비전을 보지 않는 엄마' 콘셉트를 잡은 지가 오래되어서 말입니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기 있는 드라마나 예능을 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겐 스마트폰과 유튜브, 각종 OTT들이 있지 않습니까?

  

어느 날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이 저를 어떤 채널로 인도하였지요. 요즘 텔레비전에선 부부관찰 프로그램들이 대세인가 봅니다. 그 정도가 조금씩 노골적으로 바뀌고 있어 문제인 것 같습니다만, 저도 결혼 10년 차 인지라 공감이 많이 되더라고요. 마침 모 프로그램에서 남편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더군요.


'내 배우자를 동물에 비유한다면 어떤 동물일까요?'


질문이 흥미롭습니다.


평소 성격테스트를 하거나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은 하는 것도, 받는 것도 싫어합니다만, 어쩐지 호기심이 발동되는 질문이었어요. 그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저는 슬쩍 운을 떼었습니다. 앞 뒤 다 잘라먹고요.


"남편, 있잖아~ 나를 동물에 비유하면 뭔 것 같아?"

"... 목적이 뭐야?"

"아니~~ 목적 같은 거 없고, 그냥 떠오르는 거 없어?"

"... 없는데."


이런 재미없는 사람을 보았나.  

상상력 없고 무뚝뚝한 이 경상도 남자는 쉬이 답을 뱉어내질 못합니다. 가만히 엄마아빠의 대화를 듣고 있던 현이가 나서네요.


"엄마! 나 알았어!"

"응?"

"엄마 무슨 동물인지 알았다고."

"(기대) 뭔데?"

"캥거루!"

"캥거루? 왜?"

"아이를 잘 돌보잖아."


그러자 남편이 자기 허벅지를 탁 치는 게 아니겠어요.


"맞네! 캥거루!"

"당신은 왜?"


돌아오는 답이 가관입니다.


"사람들이 온순할 거라고 착각하기 쉬운데 실상은 전투력 최강인 동물이잖아!"


...?!


캥거루가 이단옆차기를 잘 던데 그건 어떻게 하는 거지요?

 

 




다음 날 동료들과의 티타임에  주제가 다시 나왔습니다. 남편이 저보고 캥거루라고 그랬다고요.  이야기를 듣던 50대 선배님이 깔깔 웃으십니다.


"사람 제대로 봤네!"


 ...


... 필명을 캥거루라고 할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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