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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용 May 06. 2021

젊은 혁신가와 다양한 플레이어, 그리고 지역 재생


용산은 꿈틀거리는 선명함을 흐릿함으로 포장하고 있었다. 다섯 명의 인터뷰이를 통해 용산 전자상가 일대가 과거부터 축적한 역동적인 잠재력을 아직도 품고 있음을 엿보고 확인했으며 안심하고 기대할 수 있었다. 이번 시리즈 인트로 글에서 언급한, 이곳에 대해 일반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있던 기존의 인식론적 상징체계가 어떻게 변화해갈까. 이에 대한 윤곽을 잡기 위해 인터뷰이의 면면과 이 지역에 대한 인터뷰이들의 의견을 종합해보자.


용산 전자상가에만 있는 것들

용산 디지털 대장간을 사용해 프로토타입 디자인을 했던 패션 아티스트 김가은 대표, 용산 Y-Valley와 협업해 글로벌 해커톤을 기획하고 운영했던 이현세 기획자, 용산 글로벌 스타트업 창업 센터에 입주해 외국인의 신분으로 한국에서 사업을 이어가고 있는 벤자민 모리스와 그레이스 오카포, 범 국가적 차원에서 도시 개발을 다루고 있는 유엔 해비타트의 이재성 팀장까지. 각자의 전문 분야에서 용산 전자상가를 바라본 관점은 몇 가지 장단점으로 나눠 정리해볼 수 있다.



장점으로는 높은 접근성, 고유의 독특한 지역 이미지, 오랜 세월 지속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본산이라는 점이 있다. 첫 번째, 높은 접근성은 '도시'가 지리적 위치에 종속되어 있는 한 큰 장점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서울특별시 지도를 두고 가운데에 점을 찍으면 용산구를 비껴갈 수 없다. 용산역이라는 실용적이며 상징적인 교통 플랫폼도 근접해있지 않은가. 오프라인 행사를 한 번이라도 기획해 본 이들은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행사 장소를 안내할 때 누구나 아는 공간을 푯대로 삼으면 얼마나 큰 귀찮음을 덜 수 있는지. 국내의 지방에서 용산으로 오는 참여자들은 물론이거니와 해외에서 찾아오는 외국인 참여자들에게도 해당된다. 인천공항에서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서울 용산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용산 전자상가 일대의 지역이 갖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와 고유의 이미지도 장점 중 하나다. 이 또한 해외에서 외국인이 바라보는 관점이 포함되어 있고 오히려 너무 눈에 익어 당연시 여겼던 한국인들의 관점에 비해 색다른 통찰을 주기도 한다. 전자기기의 메탈 소재가 주는 미래적인 느낌과 사이버펑크 이미지는 용산이 국내에 국한되지 않고 해외와의 관계성을 갖고 뻗어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오랜 세월 우리나라 전자기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하며 그간 쌓아온 기술력과 노하우가 축적되어 있다는 사실은 이 지역의 산업적 경쟁력을 회복시키는 데에 견고한 디딤돌이 된다. 비록 현재는 과거의 영화가 흐릿해졌더라도 그 흐릿함 안에 선명한 알맹이가 다시금 여물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꺼진 발판을 디딤돌로 삼기

반면 인터뷰이들은 단점도 함께 지적했다. 외부자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와 침체된 일부 지역의 분위기가 그것이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용산 전자상가 일대를 지날 때 바로 느낄 수 있는 분위기이기도 하다. 물론 터줏대감들을 맹목적으로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 역시 그들의 역사를 살아왔고 다사다난한 격동의 시대가 용산 전자상가 일대를 거쳐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의 침체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새로운 인식론적 상징으로 변화하기 위한 탈바꿈이 필요하다.


그 해결책의 시발점은 앞서 언급한 단점들에서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정답은 문제에 이미 제시되어 있다. 외부에 대한 배타적인 태도를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기꺼이 새로운 이들을 받아들이며, 가라앉은 도시의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도록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기 위한 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활기를 되찾는 것이다. 결국 두 해결책이 엮여있는 셈이다. 새로운 사람들이 드나들며 활동할 수 있도록 빗장을 열어 맞이하는 것. 


이재성 팀장과의 인터뷰에서 언급되었듯 이러한 환대와 지원에는 창작 공간 마련, 도시 환경 개선 등의 물리적 인프라뿐 아니라 새로움을 흥미로워하며 도전을 독려하고 실패를 용납하는 정성적인 분위기 형성도 큰 몫을 차지한다. 더욱이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해내려는 이들의 특성상 지역 개발의 주체나 기성 집단이 과도하게 그들을 가르쳐 들려하면 안 된다. 이는 한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의 역할과 비슷하다. 훌륭한 경영자는 똑똑한 인재를 채용하고서 그들을 조종하고 제어하지 않는다. 똑똑한 이들이 마음껏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고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줄 뿐이다. 자신만의 것을 창조해내기 위해 안달 난 청년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공간과 기회를 제공한다면 오지 말라고 해도 많은 청년들이 모여들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결국 용산 전자상가는 그동안 IT 유통 플랫폼으로 수행했던 역할의 범위를 넓혀 직접 트렌드를 주도하는 생산 기지로서의 역할을 함께 감당해낼 수 있는 지역으로 성장할 것이다.



여무는 선명한 알맹이

이제 용산 전자상가 일대의 인식론적 상징체계를 뒤바꿀 시기다. 침체되고 구태의연했던 상징에서 실험이 진행되는 연구소, 창작자를 위한 놀이터, 도전과 도약을 위한 운동장이라는 상징으로. 그리고 이미 이곳에는 침체의 흐릿함 이면에 꿈틀거리며 다시 싹을 틔우려는 선명한 움직임이 들끓고 있다. 이들의 선명함을 포착하기 위해 용산 지역 인터뷰 프로젝트는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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