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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용 Jul 04. 2022

Interviewer's Note No.4

the Persons : Brand Director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만큼 어려운 일도 드물다는 생각을 합니다. 심지어 친한 지인에게조차 '나'를 소개하는 과정은 무안할뿐더러 무엇을 말해야 할지 고민의 연속이죠. 대개 자신의 직업, 하는 일, 소속된 직장을 소개합니다. '안녕하세요. A회사 B부서에 있는 아무개입니다.'라고요. 그 소개가 정말 '나'를 소개하는 문장일까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업은 수익 활동을 영위케 하는 수단인 만큼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다만 ‘나’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지는 않죠.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날씨일 때 활기를 띠는지, 좋아하는 패션 스타일이 무엇인지, 누구와 교류할 때 편안함을 느끼는지 등 개인에게 직업보다 중요한 것들은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가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할 방법을 찾지 못해 그들의 직업 뒤에 숨는다. 그리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그 직업의 정체성과 일치시킨다.'라고 했던 표현이 현대인의 맹점을 잘 설명하고 있죠.


각 직업군의 최고 전문가를 탐구하는 더퍼슨스 편집장의 입장에서 이러한 관행에 토를 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이번 《더퍼슨스 No.4: 브랜드 디렉터》를 기획하고 여러 브랜드 디렉터를 인터뷰하는 내내 앞선 고민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나'를 정확히 소개하는 문장이 무엇인지, 내 '정체성'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말이죠.


브랜드 디렉터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브랜드의 정체성을 창조하고 발전시키는 작업을 합니다. 한 인간이 인격과 자아를 갖추며 자신다운 개체로 성장해 가듯, 자신만의 고유한 특성을 갖춘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정체성을 쌓아 올리는 일이죠. 그리고 그들은 관리하는 브랜드뿐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철학적으로 고민합니다. 브랜드 슬로건 하나만으로 브랜드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기에, 디렉터 자신의 정체성 역시 단순한 직군이나 직함으로 표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죠. 이번 시리즈의 부제가 ‘Identity Explorer’인 이유입니다.


물론 본문에서 대부분의 인터뷰이는 편의상 여느 자기소개와 같이 소속된 회사와 직함으로 자신을 소개합니다. 직업 탐구에 초점을 맞춘 더퍼슨스 시리즈 형식의 한계 때문이죠. 그럼에도 그들이 브랜드를 대하는 태도와 브랜드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자세에서 앞선 논점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외부에 존재하는 세상을 탐구하고, 내면에 자리 잡은 자아를 탐구하며, 외부 세상과 내면의 자아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을 탐구하는 총 세 가지 영역의 인문학이 그 안에 녹아 있죠.


브랜드는 스스로 다른 브랜드와 구별된 고유의 차별성을 갖춰야 하는 동시에 시장이라고 부르는 소비자들의 관념을 파악해야 합니다. 여러 소비자 또는 경쟁 브랜드 등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역설적인 과정을 경험하죠. 우리의 인생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히려 외부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해 자아가 침식당하는 경우가 더 많아질 정도입니다. 서두에 언급했던 장 폴 사르트르의 표현처럼요.


서문부터 너무 무겁고 관념적인 이야기를 나눈 듯하네요. 이제 다양한 산업군, 다양한 브랜드의 각양각색 인터뷰이를 만나 볼 텐데, 이해 못 하는 내용이 있을까 걱정은 내려놓길 바랍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흠뻑 빠져들 만큼 흥미롭고, 손에 잡힐 듯 구체적이며, 업무에 적용할 수 있을 만큼 실체적입니다. 본래 고수의 통찰이 직관적이고 명쾌한 법이죠.


다른 더퍼슨스 시리즈를 접한 독자분이라면 이미 알고 있겠지만, 목차 순서에 대한 강박 없이 눈길 가는 인터뷰부터 읽어 보기를 추천합니다. 브랜드와 브랜드 디렉터마다 각기 다른 서사를 지니고 있기에 우열이 아닌 고유의 개성만 존재할 뿐이죠. 다만 브랜드 업계의 전문적인 용어 및 맥락에 대해 생소한 분들을 위해 도서 전반부에는 개념 정의에 초점을 맞춰 인터뷰를 배치했습니다. 이어지는 중반부에서는 다양한 형태 및 산업 분야의 브랜드 디렉터를 만나 볼 수 있고, 후반부에서는 앞으로의 브랜드 디렉터 직군이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지 발전 방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무엇보다 이번 《더퍼슨스 No.4: 브랜드 디렉터》를 통해 마케팅, 브랜딩 지식을 얻는 것뿐 아니라 여러분의 정체성에 대해 고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인터뷰이들의 브랜딩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연스레 ‘나'라는 브랜드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증을 갖게 될 거예요.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용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인류의 품격이니까요.


편집장 이시용



<더퍼슨스 No.4: 브랜드 디렉터>


https://www.the-persons.com/book/?idx=157



- 위 글은 <더퍼슨스 No.4: 브랜드 디렉터>에 실리는 Interviewer's Note 전문입니다.

- 위 글의 모든 저작권은 더퍼슨스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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