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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진 Apr 12. 2022

갑자기 욕하고 싶을 때 난 글을 써

제목 그대로, 갑자기 욕하고 싶을 때 난 글을 쓴다. 그림을 통해 만나는 수진과 글을 통해 만난 수진 사이에 간극이 느껴진다는 말은 너무 자주 들어서 이제 놀랍지도 않은데, 그도 그럴 것이 좋을 때는 그림이 술술 나오고, 나쁠 때는 글이 술술 나오니, 당연히 글과 그림이 온탕과 냉탕일 수밖에 없다. 감정 기복이라는 말은 영어로 bipolar인데, 예전에도 한번 이 단어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다시 한번 이 단어를 간결히 소개하자면, 앞의 bi는 '두 개의'라는 의미이고, polar는 지리학적으로 극단의 지역, 남극과 북극을 뜻하는 말이다. 두 가지의 극단 상태가 공존하는 것이 바로 bipolar(바이폴라)다. 의학적인 용어로 bipolar disorder는 조울증 또는 양극성 장애를 말하는데, 나의 글과 그림은 마치 기쁨과 우울로, 바이폴라로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실제로 조울증을 겪고 있거나 그 외 다른 정신 질환을 가진 사람들에게 감히 비할 수는 없지만, 나는 타고나게 극단적인 성격이다. 따지자면, 아빠의 영향이 가장 클 것인데, 아빠도 순간의 기분이 갑작스럽게 바뀌는 편이다. 오늘은 회사에 갈 수 있어서 정말 행복해라고 했다가 10분 뒤에, 회사 좀 안 가면 소원이 없겠다며 퇴사하고 싶다고 하는 아빠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딸인 나 또한 매번 기분이 변하고 그 기분이 태도에 영향을 줄 때가 있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라는 책 제목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그 책을 읽으면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게 살 수 있을까? 일단 읽어보고 나중에 후기를 남기도록 하겠다. 어쨌든 나는 순식간에 기분이 좋았다가, 나빠지기도 하고, 나빴다가 좋아지기도 한다. 어떤 자극에 의해 순식간에 변하는데, 자극은 굉장히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맞닥뜨려진다.



취미 생활이자 트렌드 조사 차원에서 핀터레스트를 매일 둘러보는데, No money, no drawing이라는 작품을 보게 되었다. 강렬했다. 그림 노동자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하다. 그렇지. 정당한 대가가 있어야 응당 그림이 나온다. 장항준 감독님이 한 유명한 말도 있지 않나. 창작자의 영감은 투자자의 주머니에서부터 나온다. 결국 돈 얘기하고 싶은 거야? 응, 그렇다. 그림을 업으로 하는 나에게 있어서 그림은 노동이다. 노동을 했으니 그에 알맞은 대가를 받는 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과 같은 자연의 이치다.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노동을 했으니 돈을 내놔라 이거다. 하지만 No money, no drawing이라고 외칠 수밖에 없는 그림 노동자들은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 한 경험이 너무 많다(여기에서의 그림은 문화 예술 전반을 뜻하는 의미로 썼다. 모든 예술 노동에 대한 영역을 포함한다).



2018년도에 들은 말이 아직도 생각나는데, 대강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작가님은 블로그에 자본주의에 대한 시니컬한 글을 쓰시면서 실제로는 되게 돈을 밝히시네요." 드로잉 강의를 요청하며 강사료는 없고, 대신 공간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멤버십으로 제공하겠다는 기획자가 있었다. 문화 예술공간이라며 상냥하고 고상한 척을 하지만,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악랄한 냄새가 나는, 곳. 강의를 하면 강의 노동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게 인지상정이지, 그걸 공간 사용으로 대체한다는 생각 자체가 말이 안 된다. 무려 왕복 2시간 거리라고요. 이런 태도야말로 노동자의 노동을 무시하는 행위다. 공간이라는 자본을 갖고 그림 노동자에게 갑질을 하는 마인드 자체가 바로 내가 비판하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다. 그 사건이 있은 후로 난 그 공간이 있는 방향으로는 오줌도 안 싼다. 그녀가 말했던 자본주의에 대한 시니컬한 나의 태도는 노동에 대한 경시를 주의하자는데 그 중심이 있다. 이 바보들아, 부자가 나쁘다고 하는 게 내 말의 요지가 아니다. 돈은 안 돼도 즐거운 일을 하며 배짱이처럼 살자는 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다. 나의 노동을 정당하게 쳐달라. 수수진이라는 그림 노동자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거다. 나의 노동을 통해 정당히 돈을 벌고, 번 돈으로 의식주를 해결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을 조금이나마 해결하고 싶다. 하지만 시발 돈도 제대로 안 주고, 부동산은 오르고, 주가는 떨어지고, 푸틴은 정신을 못 차리고, 두 정당은 아직도 치고받고 싸우느라 국민은 늘 뒷전이고. 기본적인 나의 욕구가 자꾸만 진보적인 게 되고, 노동당의 주장이 되고, 나아가 억지부리는 게 되고... 지금 누가 누구보고 억지라는 거야. 나는 당연한 나의 권리를 이야기하는 거라고.



미안하지만, 세상에는 정말이지 공짜가 없다. 이것만큼은 내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데, 정말 공짜는 없다.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 당장은 내가 대가를 치르는 게 아닌 것처럼 보여도 결국 내가 싼 똥은 내가 치워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다. 그러니까 그림을 가져갔으면, 강의를 요청할 거면, 돈을 내시오. No money, no draw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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