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오늘 자정이면 자가 격리를 마친다. 아쉬울 정도로 시간이 빨리 흘러갔다. 함께 하는 시간에 비해 혼자 보내는 시간은 속도가 빠르다. 격리하는 기간 동안 기록을 한 것도 참 잘한 일 같다. 이 짧은 기간 동안 나름 단단해지는 과정을 거쳤다. 나중에 재밌게 읽힐 것 같다. 격리 기간을 돌이켜보니 역시나 허투루 버려진 시간은 하나도 없다. 시간을 마음껏 낭비하기 위해 열심히 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모순된 두 개의 개념을 하나의 문장으로 합쳐버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 것 같다. 응? 갑자기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가 보낸 모든 시간은 삶이라는 형태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내일은 가벼운 산책을 하면서 그간 활짝 편 꽃과 나무를 즐길 예정이다. 물아일체를 경험하고 싶다. 4월이라는 좋은 계절을 만끽하고 싶다. 그리고 화요일에는 엄마도 격리를 마치기 때문에 윤중로에 꽃 구경을 갈 예정이다. 벚꽃 축제도 다시 열리고, 곧 바깥에서는 마스크도 벗을 수 있다 생각하니 마음이 설렌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줄 곳 했던 것 같은데, 굳이 예전이라는 말을 쓸 필요 없이 그저 앞으로 펼쳐질 미래가 기대된다. 모두가 습관적으로 손을 잘 씻을 거고, 서로가 서로를 조심하면서 당연히 거리를 유지하는 습관을 갖고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지 않을까? 바이러스 덕분에 인류는 많이 배웠다. 이렇게 또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예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닌, 과거를 통해 배우고 고쳐서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기대를 갖는 것. 알랭 드 보통은 인류는 발전의 반대에 서 있다고 했지만, 팬데믹과 바이러스를 겪은 나로서는 그의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 사람의 DNA 안에는 더 나은 것을 향한 갈망이 움트고 있다.
다소 삭막했던 겨울의 풍경이 초록으로 바뀌는 섭리를 보며 사람은 더욱 그렇게 느낀다. 길고 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는 사실은 자연이다. 자연스럽다는 건 바로 이런 거다. 겨울의 시간을 찬찬히 보내며 봄을 꿈꾸고 봄을 기다리고, 봄을 만끽한다. 지극히 자연스럽다. 내가 숨 쉬는 공기의 온도가 다르다. 높아진 온도에 모든 촉각을 집중해 본다. 따뜻하고 행복한 감각이 온몸과 마음에 새겨진다. 봄이다. 이제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