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유독 마음이라는 단어에 사로잡혀 이도 저도 못하고 있다. 마음의 사전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사람이 다른 사람이나 사물에 대하여 감정이나 의지, 생각 따위를 느끼거나 일으키는 작용이나 태도. 사전에 나오는 정의가 꽤나 복잡한 문장으로 이뤄져 있다. 마음이란 감정과 의지, 생각 혹은 그와 비슷한 모든 것과 연관이 되어있고, 단순히 감정이라고 할 수도, 혹은 이성이라 할 수도 없이 인간이 가진 모든 감각이 적용되는 개념이다. 작용이기도 하고, 태도이기도 하고, 느끼기도 하고, 자의가 될 수도, 타의가 될 수도 있는, 그러니까 그냥 마음. 마음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복잡 미묘한 모든 것을 퉁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라는 말, 오히려 이 속담이 마음이라는 것을 더 정확하게 정의하고 있다고 본다. 열 길 물속이라는 게 이미지로 잘 그려지지 않는다면,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 각자 다른 모습으로 흐르고 있는 열 개의 강, 강의 수심, 혹은 맑기, 그에 따라 살아가는 생물의 종류... 그러니까 강을 무려 열 개나 속속들이 안다 해도! 한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거,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마어마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사람의 속이고, 그 안에는 마음이라는 것이 뭉근하게 존재하고 있다.
이것저것 다 해서 마음이라는 단어로 퉁칠 수 있어 그런지, 일상에서 마음이라는 단어는 매우 쉽게 쓰인다. 마음 가는 대로 하자. 마음먹기에 달렸어. 마음이 상했어. 마음이 안 가. 마음을 받아줘. 마음대로 할래. 모든 것을 마음으로 시작해서 마음으로 끝낼 수 있다. 아주 가볍게도 쓰고, 가끔은 굉장한 무게를 얹혀 쓰기도 한다. 다양한 성질을 갖고 있는 단어이다 보니 보면 볼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말맛도 있고, 매력도 있다. 하지만 자주 쓰이는 것에 비해 실제로는 개념을 콕 집어 말하기 어렵고, 또한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기에, 타인의 마음은 둘째 치고 내 마음 하나도 알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짜장면이 먹고 싶은지 짬뽕이 먹고 싶은지도 몰라서 에라 짬짜면을 먹어버린 것처럼 나는 내 마음을 늘 모르고, 지금 내가 뭘 쓰고 싶은지도 잘 모른다. 점점 이 글은 산으로 가고 있다. 만약 이것이 내 마음이라면, 내 마음은 정처 없이 산으로 가고 있다 봐도 되는 걸까.
마음을 정의 내리기 어려운 이유는 마음이라는 게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아 그렇다. 내 마음이라면서 건넨 선물이 마음일 수는 없는 거잖아. 마음을 '표현'한 물건일 수는 있어도, 그 선물 자체가 마음이 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현미경을 들여 다 대고 한참을 봐도 보이지가 않고, 심리학이라는 휘황찬란한 개념을 갖다 대어봐도, 도통 실체와 결과가 없으니 그저 어려운 것이다. 어쩌면 알고자 하는 노력 자체를 접는 게 낫겠다. 아무리 노력해도 모를 테니까. 그렇지만 알고 싶다. 마음을 알고 싶다. 내 마음도, 그의 마음도, 신의 마음도, 너무 알고 싶어서 사전을 뒤지고, 책을 뒤지고, 성경을 뒤지고, 인스타그램을 뒤진다. 하지만 뒤져봤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파도 파도 그저 알고 싶은 마음, '알고 싶은 마음' 그거 하나 나온다. 아니, 그러니까. 알고 싶어도 모른다니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습니까.
그래, 그러면 마음을 알고자 하는 노력은 포기하는 게 좋겠다. 마음은 감정이기도 하고 이성이기도 하며 의지이기도 하고, 태도이기도 하니까. 이 모든 걸 다 알기에는 내 뇌의 용량이 작다. 일단은 가장 작은 단위인 감정부터 살펴보는 게 좋겠다. 감정. 지금 내 감정이 어떤지. 일단 그것부터 들여다보는 걸로 마음에 대한 탐구를 시작하자. 아마도 이 여정은 멀고 길고 험하고 지루하고, 늘어지며 피곤하고 지칠 수도 있기에 아주 천천히 시작하는 게 좋을듯하다. 긴 여정을 준비하려면 일단 체력부터 길러야 한다. 알람 없이 산다는 핑계로 하루 종일 바깥공기도 쐬지 않았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앞으로는 조금씩 걷도록 하겠다. 마음을 향한 나의 여정을 이렇게 시작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