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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아 Feb 21. 2023

가지 않은 길 | 홍콩 1

지난 글을 쓴 지도 벌써 어언 반년이 지났다. 나는 꾸준히 글 쓰는 것을 잘하지 못한다. 사실 글쓰기뿐이 아니다. 다양한 것에 관심사가 많아서 이것저것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지만 그것을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이 내게 정말 어렵다. 나는 글쓰기도, 책 읽기도, 우쿨렐레, 기타, 피아노 치기도, 배드민턴도, 달리기도, 탁구도, 스케치하기도, 코딩하기도 정말 좋아하지만 이 많은 취미들 중에 내 특기라고 할 수 있는 게 없다. 친구들과 대화할 때, 그들이 어떤 관심사를 가진 사람인지에 따라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단편소설, 유대인혐오(antisemitism)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 OpenAI의 ChatGPT, 넷플릭스 하이틴 신작, 80년대 유행했던 펑크 밴드, 인간의 실존 이유에 대한 얕은 대화를 즐긴다. 하지만 한 분야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할 때면 내 넓은 관심사의 얕은 지식이 곧 탄로 난다.


내가 대학에 와서 하는 공부에 대해 고민이 많은 이유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대학은 중고등학교와는 다르게 여러 분야에 대한 교양을 쌓기보다는 전공이라는 학문 한 가지를 파고들어 그것을 내 전문분야로 만들기 위한 곳이다. 처음 대학을 진학할 때 제약회사의 R&D 부서에서 신약을 개발해 사회에 공헌을 하고자 홍콩대학교 자연과학대학의 화학과로 지원을 했다. 한 학기를 다니며 화학과 생명 공부를 하던 중 담당 교수님의 오피스에 들려 상담을 하는데, 랩실에서 화학물질을 다루는 리서처들을 보며 나와는 랩실 생활이 맞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마침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라는 유명한 천체물리학 교양서적을 읽고 천체물리를 공부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책의 서문에 칼 세이건은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In the vastness of space and immensity of time, it is my joy to share a planet and epoch with Annie." 역자는 "광대한 우주, 그리고 무한한 시간, 이 속에서 같은 행성, 같은 시대를 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면서"라고 번역했다. 우주에 대해 공부한 학자로서 사랑하는 이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표현이었다. 천체물리학자의 사랑표현에 빠져 그다음 학기를 물리학, 수학, 그리고 컴퓨터 공학 수업을 수강했다. 그리고 곧 대학교 1학년이 배우는 물리학의 기초는 천체물리학자의 사랑표현이라는 낭만과는 굉장히 거리가 멀다는 것을 느꼈다.


낭만적이고 흥미진진한 삶을 살고자 하는 나의 바람과는 정 반대로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로 현재 공부하는 과를 선택했다. 천체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었던 1학년 2학기에 결국 물리학의 기초는 결국 학기 중반 즈음 흥미를 완전히 잃어버렸고, 오로지 학점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공부해 마무리했다. 그 학기에 그나마 성적이 잘 나왔던 컴퓨터공학과 수학 수업과 관련된 전공 리스트를 보던 중, 요새 핫한 AI와 머신러닝을 배운다는 데이터사이언스를 택하면 졸업 후에 대학원 진학 없이도 꽤나 돈을 잘 버는 직장에 취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이것도 사실이 아니었다. 나중에 알게 된 바로는 대부분의 데이터사이언스 관련 직업은 최소 석사학위를 필요로 한다. 내가 평생 하고자 하는 걸 아무것도 모르는 이십 대에 결정해야 한다는 게 너무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전공과는 별개로 내가 어떠한 라이프스타일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은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내가 졸업한 서울국제고 국제반의 친구들의 상당수는 부모님이 전액장학금 없이도 미국유학을 선뜻 보내줄 수 있는 여유로운 가정에서 왔다. 나 역시 부모님이 하나뿐인 딸을 위해 아낌없이 부족하지 않은 지원을 해주시지만, 당시의 어린 생각으로는 같은 반의 다른 친구들과 스스로의 가정형편을 비교하게 됐다. 정말 가고 싶었던 영국의 임페리얼 칼리지를 붙었지만 연에 1억이 넘는 돈을 지원해 주긴 어려울 것 같다는 부모님의 현실적인 말을 들었다. 임페리얼 칼리지를 포기하고 홍콩으로 온 나의 스무 살은 돈을 많이 버는 삶이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했었다. 다음 해 한 학기 게임회사에서의 인턴생활을 마치고 그 돈으로 혼자 스페인과 포르투갈로 여행을 떠났을 때 비로소 이 생각이 얼마나 철없었는지 깨달았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보낸 한 달 동안 대부분의 날들을 유스호스텔과 같은 도미토리 시설에서 보내며 정말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대화하며 알아갔다. 나와 마드리드에서 일주일 간 룸메이트였던 아르헨티나에서 온 사진작가 '나쵸' Ignacio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나쵸는 유명한 고급호텔들의 홍보용 사진과 영상을 제작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세계의 도시들을 여행하며 자신만의 사진을 찍는 아티스트다. 또, 마드리드에서 pub crawls를 하며 만났던 스위스에서 온 로빈은 고등학교 공예수업 교사이지만 매년 여름방학에는 암벽등반을 하러 겨울방학에는 스키를 타러 다니는 여행자이기도 했다. 이들을 만나 어쩌면 인생에서 돈을 버는 것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게 도와주는 수단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한 많은 친구들이 스무 살에 독립해 지신이 원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 스스로 종잣돈을 모으는 것을 보고, 성인이 되고도 부모님에게서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특권인지도 알게 되었다.


호주에서의 여유로운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나의 홍콩에서의 일상은 앞에서 한 고민들을 모두 처음부터 다시 하는 기분이다. 이런 고민들과 동시에, 여유로운 한 학기 이후에 다시 열정적으로 살아갈 힘이 나는 것도 같다. 이번 학기는 드디어 처음으로 전공기초 수업을 모두 들었기 때문에 내가 듣고 싶은 전공선택 수업들 위주로 공부하고 있다. Algorithms, Information Systems, Image Processing and Computer Vision, 그리고 Natural Language Processing 수업을 듣는다. 일이 학년에 들었던 기초수업과는 다르게 심화전공 수업들은 내가 공부하는 것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되는지가 눈으로 보여서, 어렵지만 훨씬 재미있다. 전공수업의 교수님들은 첫 주에 수업 소개를 하시면서 자신이 그 분야에서 하는 연구를 수개해 주셨다. 교수님들의 그 모습이 열정적이고 행복해 보였다. 데이터사이언스를 조금 더 깊이 공부해 보고 교수님들의 랩실에 들어가 연구에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정말 감명 깊게 여러 번 읽은 Paul Kalanithi의 <When Breath Becomes Air>이라는 자서전이 있다. 작가 폴은 대학에서 영문학과 생물학을 공부하고, 영문학 석사를 땄지만, 30대라는 어떻게 보면 늦은 나이에 의전원에 진학해 뉴로서전이 되었다. 그의 대학 전공과는 전혀 관련 없는 뉴로서전이 되었으니 그가 영문학에 투자한 거의 십 년이나 되는 시간이 의미가 없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폴은 뉴로서전으로서 많은 암환자들의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봤고, 자신도 30대라는 젊은 나이에 암을 발견해 죽음을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을 폴은 자신의 자서전에 녹여냈고, 그의 글은 그가 처했던 상황과는 반대로 죽음보다는 사랑으로 가득하다. 그의 영문학 전공은 뉴로서전으로서의 커리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을 수 있으나, 결국은 그의 자서전을 통해 죽어가는, 그리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하며 살아갈 용기를 주었다. 또한 그의 자서전은 그가 죽고 나서 태어나게 된 딸에게 아버지가 쓴 소중한 편지가 되었다. 그의 책을 읽은 나는 지금 하는 선택이 어떤 선택이든 잘못되지 않았다고 용기를 얻는 것 같다. 결국 지금 하는 모든 것들이 나중에 어떠한 길로든 이어질 거라는 믿음을 갖고 살아가도 되지 않을까.


고등학교 영문학 시간에 읽었던 Robert Frost의 시 <The Road Not Taken>을 성인이 되고 다시 읽었을 때 Paul Kalinithi와 Robert Frost가 비슷한 메시지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생 때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땐, 화자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었고, 때문에 독자에게도 도전적인 선택을 하라는 메시지로 받아들였었다. 5년이 지나고 다시 읽은 그 시의 메시지는 다른 사람이 얼마나 많이 밟은 길인지와 상관없이 어느 길을 택하더라도 길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고, 결국 그 길들이 자기 자신을 대변해 준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 도전적인 선택을 하라고 권유하는 시가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든 인생에서는 여러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고, 그 선택들이 모여서 한 사람이 성장하게 된다는, 그러한 위로와 확신을 주는 시라고 생각된다.


스물두 살의 나는 어느덧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도 4 년째 되었지만 아직도 내가 어떠한 커리어를 가지고 어떠한 라이프스타일을 살고 싶은 지 잘 모르겠다. 그리고 고작 22년 하고 2개월을 산 내가 앞으로의 70년가량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는 게 당연한 것도 같다. 그래도 내가 인생의 어떤 스테이지에서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해 주는 부모님과 친구들이 있어서 조금은 안도감이 든다. 내년 이맘때의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지, 5년 뒤 이맘때의 나는 무엇을 하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이런저런 걱정에 밤잠을 설치다 노트북을 펼쳐 브런치에 넋두리를 늘어놓다 보니 새벽 네시 반이다. 내일은, 아니 오늘은 학교 상담실에 가서 평소에 잠에 잘 들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상담을 받기로 했다. 내일부터는 조금 밤잠을 덜 설치고 조금 더 기운차게 살아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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