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와 N번째, 감흥의 차이
어제는 둘째의 생일이었다. 돌잔치에 필요한 모든것과 공간을 대여해 주는 업체를 찾아 직계 가족만 초대해 점심식사와 돌 잔치를 함꼐했다. 둘째를 낳기전 누군가 그랬다. 둘째의 첫생일 아니, 둘째의 모든 생일날 아마도 첫째는 더 예민하게 굴거라고. 그래서 둘째 생일 전날에는 첫째만 따로 불러 첫째를 위한 이벤트를 먼저 해주라고. (육아 어렵다 어려워...) 생일 전날 첫째를 위한 조각케이크를 준비하고 '형아 고마워' 노래를 만들어 불러주고 꼭 안아주며 '한해동안 멋진 형아가 있어서 동생이 잘 자랐어. 고마워!'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속으로 '그래 이제 되었어. 내일 첫째도 잘 협조할거야'라고 생각했다.
둘째의 생일날. 푹 자고 일어난 첫째가 아침부터 예민하게 행동한다. 첫째와 감정 싸움을 하느라 모두가 지친 오전을 보내고 돌잔치 장소로 향한다. 둘째의 컨디션을 위해 차안에서 낮잠을 잘 잘수 있도록 15분 거리를 뺑뺑 둘러 가는데 첫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다행히 잠에 예민하지 않은 둘째는 잘 잔다.
돌잔치의 힘든 상황을 우리 부부는 미리 예견한걸까. 전문가는 아니지만 대여해주시는 업체 대표님이 간단히 한시간동안 스냅 사진을 찍어주시기로 해서 스냅 사진에 돈을 쓰지 않았다. 모두가 모이고, 식사 전 사진을 찍기 시작하는데 막 12개월이 된 둘째는 의젓하게 근사한 독사진을 남겼다. 이 시기 월령의 아이들은 먹을 것이 가장 큰 보상이다. 별 다른 두뇌싸움 없이 떡벙 하나로도 협상이 가능하니 그 얼마나 감사한 시기인가. 문제는 첫째와 같이 찍기 시작한 순간부터. 절대 협조하지 않는다. 첫째가 정면을 보고 찍은 사진이 과연 1장이라도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는다. 사진을 위해 단 5초도 협조하지 않고, 장식들을 만져가며 돌상을 휘젓는 너의 모습이란. 내 아들이지만 낯설다. 이렇게 말을 안들은 날이 지난 42개월동안 있었던가. 대표님이 이런 저런 컷을 더 찍어주고 싶어 포즈를 주문하셨는데 '이제 그만하자'라는 말을 20번이나 더 삼킨 뒤 밖으로 뱉어냈다. 사진을 다 찍고 난뒤 식사시간이 되어 난 첫쨀르 담당, 남편은 둘째를 담당하기로 한다. 이런 저런 음식들을 권유하고 담아오려고 대화를 시도했지만 영 듣지를 않는다.. 부글부글. 키에 닫지도 않는 음료수 정수기에 계속 손을 대고 음료를 탁자에 흘리는 행동을 반복하여 어쩔수 없이 그 정수기를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보통 나의 육아는 이런 스타일이었다. 아이가 감당하지 못하는 물건들, 그리고 내가 계속 '조심해야지'잔소리를 해야하는 물건들은 주로 아이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치워버린다. 첫째가 그 행동을 보더니 정말 서러웠나 보다. 이번에는 바닥에 누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운다.... 내가 이 아이를 너무 구석으로 몰아세웠나? 어른들이 주변에 있다는 핑계로 5살 다운, 형아 다운 의젓한 행동을 해주기를 기대하고 강요했던 걸까? 이 아이도 아직 어린 아이인데 둘째가 주목받는 서러운 하루를 의연하게 축하해주고 조연으로 있어주길 바랬던게 무리였을까? 여러가지 생각들이 스치지만 나에게도 그런 아이를 받아줄 인내심이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히 삼촌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첫째의 마음을 보듬어주고 그 모든 짜증을 받아주셨다. 맛있게 점심을 먹은 후 삼촌이 사온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첫째의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다 정리하고 돌아와 밤잠에 드는 저녁시간까지 첫째는 우리 모두를 힘들게 했다. 보살인 우리 남편도 몇번이나 화를 참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아이가 이렇게 감정적으로 힘들게 할때마다 부글부글 화가 끓다가도 그게 나의 모습은 아니었는지, 편하다는 이유로 나의 부모님에게 있는 감정들을 표출했던 모습들이 상기되어 죄송한 마음이 든다. 육아는 이렇게 매번 양가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첫째, 둘째가 모두 잠든 뒤 고요함 가운데 오늘 하루를 복기해본다.
핸드폰 사진첩에 담긴 첫째의 첫번째 생일날의 사진을 보았다. 첫째의 첫 생일날의 감정이 생생하다. 내가 배 아파 낳고, 양질의 잠과 자유로운 시간들을 포기한 채 1년간 아이를 키웠고 그 아이가 벌써 첫 생일을 맞이했구나. 마냥 기쁘고 감격스러웠다. 둘째의 생일날인 오늘 내가 이런 감정을 느꼈던가. 설레임과 감격, 감사와 같은 긍정적인 감정 보다 피곤함과 짜증을 더 많이 느꼈던 하루가 아니였을까. 순간 둘째에게 미안한 감정이 밀려온다. 너의 첫니과 첫 뒤집기와 첫 발걸음 그리고 너의 첫 생일을 내가 너무 당연하게 여겨온것 같아 미안했다. 앞으로 너의 모든 첫순간이 둘째라는 이유로 당연하게 다가올까 마음이 무거워졌다. 1년 동안 첫째를 키우는것과 둘째를 키우는게 얼마나 다른지 수도없이 느꼈는데, 그 다름이 무뎌진 우리의 감정이었음 직면하는 시간이었다. 첫번째냐 아니냐에 따라 감흥의 차이는 당연히 있을 수 밖에 없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특별한 경험이고, 우리의 두뇌는 시키지 않아도 경험에 익숙해져 가기 때문에. 하지만 두번째라고, 세번째라고 당연하다고 느끼기 보다는 한 아이 한 아이 마다 고유성과 특별함이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그렇게 첫째와 둘째를 키우겠다고 마음 먹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