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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ink aloud Sep 06. 2023

40주 동안 애써 기록하지 않았다

내게 임신 기간의 기록이 없는 이유 

우리에게 찾아온 첫 번째 아이를 임신 12주 차에 보냈다.

30년 내 인생의 첫 번째 임신에 겪은 일이었다. 아이를 끝까지 품지 못한 게 온전히 내 책임으로 느껴졌다.

그때 내가 그 음식을 먹지 않았더라면, 그때 내가 스트레스를 덜 받았더라면, 그때 내가 뛰지 않았더라면… 

수도 없이 후회를 속으로 되내며, 일상 생활 속에서 불현듯 눈물이 났다. 

여러 지인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받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유산 경험을 공유하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때 알았다. 40주 정상 임신 기간을 완주하는 것이, 건강하게 내 아이를 세상과 마주하게 하는 것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아이를 품었던 시간은 고작 12주였지만, 태명도 지어주고 일기도 쓰고, 많은 교감을 나눴다.

배속에서 심장이 멈춘 아이를 꺼내는 수술을 받고, 2주간 회사를 쉬었다. 몸은 빠르게 회복되었고, 최소 2달 동안은 잘 쉬는 게 좋겠다는 주치의의 권고에 따라 잘 먹고, 잘 쉬고, 틈틈이 걷기 운동도 했다. 그렇게 보낸 지 3달이 되었을 때, 우리는 다시 임신을 시도했고 정말 다행히도 바로 아기가 찾아와 주었다. 


재 임신에 대한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두려움이 몰려왔다. 내가 이번에는 이 아이를 끝까지 잘 품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끊임 없이 반복되었다. 

안정기라고 부르는 16주가 될 때까지 겁이 나서 태명을 짓지도 못했고, 회사에도 알릴 수 없었다. 가까운 지인에게도 뒤늦게 임신을 알렸다. 유산을 한번 겪어보니, 기쁜 소식을 알렸던 사람에게 다시 슬픈 소식을 전하는 게 고통스러웠다. 무엇보다도 혹시나 나의 임신을 알았던 사람에게 유산 소식을 알리지 못해, 후에 나에게 상처를 주게 될 말을 하는 순간이 있을까 두려웠다.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품은 40주 동안 나는 극도로 조심했다. 많이 걷는 걸 삼갔고, 몸에 좋지 않다는 건 전혀 먹지 않았고,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즐겨 마셨던 아이스 초코도 2번 정도 밖에 안 먹었던 거 같다. 그리고 아이를 만나는 그 순간까지, 아이를 건강하게 만나는 게 내 바램처럼 이뤄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염두했다. 그러다 보니 첫째를 임신하는 기간 동안 기록을 남길 수 없었다. 처음 우리에게 와줬던 그 아이처럼 유산 후, 기록의 흔적을 보게 되는 게 두려웠다. 그렇게 걱정하는 시간들을 보내다가 두 번째 품은 아기, 즉 우리의 첫째를 39주 5일에 건강하게 만났다. 


첫째를 낳아 키운 지 22개월이 되었을 때, 둘째를 임신했다. 첫째와 둘째는 임신기간부터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째에게는 미안한 일인지 잘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임신한 사실을 잊은 것처럼 지낸 시간들이 훨씬 많았다. 첫째 육아에 신경 쓰느라 몸에 좋은 것 챙겨 먹기, 스트레스를 덜 받기, 체력적으로 무리하지 않기 등 모든 것을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승진 시기까지 겹쳐 회사에는 임신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20주가 넘어서까지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출장이며 업무를 모두 소화했다. 

배 속에 있던 둘째가 이런 무심한 엄마에게 많이 서운했던 걸까. 21주 차가 되어 정기검진을 갔던 날, ‘밑 빠지는 느낌이 들어요’라는 내 말 한마디에 시작하게 된 경부길이 검사에서 2.1cm 위험 수준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단다. 출근은 물론이고 무조건적인 안정을 취하지 않으면 조산의 위험이 있다는 의사의 진단에 산만한 돌덩어리가 내 머리 위로 쿵 떨어진 것 같았다. 다시 한번 품고 있는 아이를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코로나로 재택을 일주일에 2~3번 하던 시기였기에, 상사에게 몸이 좋지 않아 몇 주간 풀 재택을 해야겠다고 말씀드렸고, 이유를 묻지 않고 허락해주셨다. 그러나 몇 주만 안정을 취하면 좋아질 줄 알았던 자궁 경부 길이는 고무줄처럼 쉽사리 늘어나지 않았다. 재택기간이 2주에서 한 달, 한 달에서 두 달이 다 되어가며 어쩔 수 없이 상사에게 임신 사실을 알렸고, 조산의 위험성을 인지한 상사와 팀원들은 출산까지의 재택을 이해해 주었다. 원격으로 일하느라 함께 고생한 팀원들에게 정말 고마웠다. 21주 차에 알게 된 조산 위험 신호는 35주 안정권으로 들어와서야 해지되었고, 그제서야 14주만(3달 반)에 외출 및 출근을 하게 되었다. 14주간 밥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외에는 거의 누워지내며 매일 매일 걱정했고, 수많은 조산 후기를 찾아보았고, 경부길이를 기록한 많은 선배 엄마들의 이야기를 살펴봤다. 나의 정신 건강에는 하나 도움이 되지 않는 후기들이었지만, 경부길이가 길어질 수도 있다는 희망을 얻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나의 경부 길이는 출산까지 한결같은 2 cm대를 유지했다. 그리고 39주에 건강하게 둘째를 만났다. 그것도 무려 3.5kg이 넘는 아들을 만났다. 


내겐 첫째, 둘째 모두 임신 기간 동안 작성한 일지(?)가 남아있지 않다.

되려 유산한 첫 번째 아이의 임신 기록만 몇 개 남아있다.  

첫째는 끝까지 임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자의적으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둘째는 첫째 육아, 회사 업무 및 나의 상태를 신경 쓰느라 타의적으로 작성할 여유가 없었다. 

돌아보면 두렵기만 했던 기다림의 시간들까지도 기록으로 남겼으면 좋았을 뻔했다. 부정적인 감정들까지도 언젠가 돌아보면 나를 이해하게 되는 하나의 도구가 되지 않았을까. 아쉽다. 내가 임신했을 때 느꼈던 감정과 생각들이 희미해져 버려서. 


둘째를 낳고 다짐했다. 일기의 형식이던, 메모이던, 사진이던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들을 기록하자고. 

그렇지 않으면 모두 휘발되는 기억 속에 사라져 버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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