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벌이 부부의 연차 소진 계획
연초가 되면 새롭게 연차가 리필된다.
결혼 후, 아이가 생기기 전까지는 이 연차를 어느 연휴에 붙여 가능한 길게 여행을 갈 수 있을지 남편과 머리를 싸매서 고민하고 몇 달 전부터 여행을 계획했다.
아이가 생기고 회사에 복직한 지금, 하루하루의 연차는 소중하다. 근무 년수에 비례해 연차가 늘어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우리 회사의 경우 기본 연차 + 여름휴가 (5일) + 그 외 명절 휴일 + 경조사 휴일이 있다.
아이를 기관/학교에 보내고 회사에 다니는 맞벌이의 경우, 연차 계획 중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이 기관/학교의 여름 방학과 겨울 방학이다. 짧게는 1주, 길게는 3주까지 (초등학생은 그 이상) 쉬기에 부부가 번갈아 가며 휴가를 쓰거나 추가 보육을 요청하거나, 조부모의 도움을 받을 있다. 그 외에도 아이들은 부지불식간에 아플 수 있고, 기관/학교의 부모 초청 행사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에 연차를 정말 필요한 순간에 쓸 수 있기를 매번 소망한다. 나의 경우만 해도 9, 10월 중에 두 아이가 차례로 아프면서 예상치 못한 연차가 소진되었다. 다행히 올해는 6월 복직으로 11월 중순인 지금, 아직 11일의 연차가 남았지만.
아무리 연차가 소중하다고 해도, 아픈 아이를 간호하는 긴급한 날이나 아이를 온전히 가정에서 보육해야만 하는 시기에만 연차를 쓰기에는 억울하다.
그래서 10월과 11월에 각각 하루씩, 나 자신에게 연차를 선물했다.
10월에는 남편과 결혼 7주년을 맞이해 동시에 연차를 쓰고 하루 종일 데이트를 했다. 가족 여행을 제외하고는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휴가이다. 아침에 두 아이를 등원시키고, 차를 타고 한가롭게 시내로 나가 식사도 하고 차도 한잔 마셨다. 빛의 속도로 흘러간 6시간 남짓의 데이트였지만 그래도 이게 얼마만일까. 이토록 여유롭게 식사를 하며 어른 대화를 했던 적이 언제였을까. 1년에 최소 하루라도 이런 날을 갖자고 약속했다. 아니면 가끔은 내가 남편 회사 근처에서 거점 근무를 신청해서 남편과 평일 점심 데이트라도 해야겠다.
지난주에 사용했던 11월 연차에는 오랜만에 기차를 타고 홀로 대전에 갔다. 대학원 때 같은 과에 속해 공부도 하고 같은 기숙사에 거주하며 약 2년간 매일 보고, 수다 떨고, 연구도 했던 친구/언니들을 만나러. 주말에 볼 수도 있었겠지만 두 아이의 엄마인 나를 배려해 준 덕분에 모두 연차를 내고 만날 수 있었다. (주말에 두 아이를 모두 맡기고 외출하기에는 남편에게도 미안하고, 또 부모님께도 도움을 요청해야만 하기에..) 맛있는 밥도 먹고, 5시간 동안 쉬지 않고 온갖 주제를 오가며 이야기를 하고 돌아왔다. 친구의 말처럼 정말 알찬 휴가였다. 그리고 행복했다. 함께하는 시간 자체도 좋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연차를 오롯이 '나'만을 위해 썼다는 사실이 위로가 되었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나' 자신이 우선이 아닐 때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런 현실이 가끔은 버겁다. 5시간의 만남을 뒤로하고 KTX를 타고 돌아오는 길, 평소보다 몇 배 이상 말한 덕에 피곤했지만 마음만큼은 풍성해져 에너지를 가득 안고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2023년이 이제 한 달 하고 보름이 남았다. 내게 남은 연차는 11일. 12월 말 둘째의 겨울방학에 하루 정도 휴가를 쓰고 함께 있을 예정이다. 12월에는 나를 위해 또 하루,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해 늘 애써주는 엄마 아빠를 위해 남은 연차를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