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간이 너에게 자양분이 되길
코로나 베이비로 태어난 첫째는 내향적이고 변화를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세심한 아이로 자랐다.
청결에 예민한 부모 탓에 심각한 코로나 시기 근 2년간은 밖에 잘 나가지 않았다. 대신 집에서 책도 많이 읽어주고, 주도적으로 놀고 선택할 수 있게끔 키웠다. 그래서 그런지 만 5세가 되어가는 지금도 바깥 활동보다는 집에서 책을 보거나 블록놀이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성향의 첫째가 5살 여름에 처음으로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했고, 상담 결과 너무 이르다고 해서 만 4세 생일이 지나고 학원을 갔다. 평소에도 노래 부르기나 장난감 피아노 건반 누르며 놀기를 즐겨했기에 힘들다고 한번 하지 않고 즐겁게 다니고 있다. 두 번째로 배워보고 싶다고 한건 태권도. 6살이 되더니 3월부터 태권도에 다니겠다고 했다. 무엇이든 조금 시도하고 그만두는 습관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아서 무슨 학원이든 최소 두 달 이상은 다녀보고 결정하는 거라고 약속을 하고 다니기 시작했다. 피아노와는 달리 태권도는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몸도 힘들고, 시끄러운 소리도 들어야 되고, 여러 가지로 첫째가 그동안 고수했던 성향과는 다른 장르의 활동이었다. 그래도 한 달 정도 시간이 지나자 친한 또래 친구들도 생기고 잘 적응해서 다녔다.
7월 초,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 이사를 했다. 기존에 거주하던 지역에서 15분 거리의 가까운 거리였지만 그렇다고 학원을 멀리 다닐 수는 없어서 근처에 이곳저곳을 알아보고 체험 수업을 가보기로 했다. 다행히 아파트 단지에 첫째가 가게 될 유치원 아이들이 많이 다니는, 새로 오픈한 태권도 학원이 있었고 첫째와 체험 수업을 갔다. 첫째의 반응이 좋아서 등록을 하고 도복까지 마련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그만두었다. 한 달 내내 첫째는 울면서 태권도 학원을 다녔다. 얼마나 가기 싫었는지 밤에 잠자리에 들면서부터 울기 시작했다.
"엄마,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어. 내일이 되면 또 태권도에 가야 하잖아."
사실 체험 수업 때부터 나 자신도 그 학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첫째가 혼자 가기 싫어해서 두세 번 따라 들어가 50분을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때마다 관장님의 교수법이 나와는 맞지 않았다. 첫째도 그런 점이 맘에 들지 않았던 걸까. 그래도 뭐든 쉽게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몇 주를 보냈고, 결국 태권도 학원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 아이가 매일 울고 수업에 참여하지 않아서,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에도 방해가 된다고.
그렇다. 이건 마치 연인에게 차인 느낌이었다. 헤어지더라도 내가 차고 싶었는데.
아이가 부적응해서 더 이상 이 학원에서 받아주기 힘들다는 소리를 듣는데, 속상했고 처음 느껴보는 좌절감이었다. 그렇게 태권도를 그만두고, 첫째가 원하던 피아노 학원을 등록했다. 그리고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가기 싫다는 내색 한번 없이 즐겁게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고 있다.
어릴 적부터 변화가 어려운 첫째가, 올해는 유치원도 옮겼고 학원도 옮겼다. 독서를 좋아하지만 책도 새책보다는 보던 책을 훨씬 좋아하는 아이인데, 처음 가보는 유치원과 학원에 적응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른인 나도 새로운 직장에 간다고 생각하면 수많은 생각이 들 텐데.
다행히 새로 옮긴 유치원은 첫째의 성향과 맞아 잘 다니고 있고, 피아노도 즐겁게 다니고 있다. 6세가 되어 이것저것 시키고 싶은 엄마 욕심은 있었지만, 시간도 허락되지 않고 아이랑 가장 가까운 내가 가르쳐 주는 게 나을 것 같아 매일 저녁시간 30분 정도를 할애하여 아이에게 필요한 것들을 가르쳐주고 있다.
여전히 세심하고 확고한 취향이 있어 무엇을 하더라도 설득하는데 오래 걸리긴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본인이 좋아하는 걸 아는 아이로 키울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기도 하다.
첫째야, 고생했어.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기관을 옮긴다는 건 어마어마한 변화였을텐데, 잘 적응해서 다행이야. 인생을 살다 보면 크고 작은 변화를 매일 마주하게 될 거야.
그 모든 시간들이 네가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길 기도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