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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tree Mar 31. 2023

[ 여행과 여행사이 ] 뉴욕의 토끼교

뉴욕,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한 복판을 지나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 건물에서 나와 나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더니 대뜸 과학을 좋아하냐고 했다. 평소에 과학은 늘 관심 속의 영역이라 귀가 쫑긋해졌다. 나의 미묘한 얼굴 변화를 읽었는지 검정 유니폼을 입은 한 여자가 건물로 나를 이끌었다.


나는 이곳이 과학 박물관인 줄 알았다. 건물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별자리 같은 것을 볼 수 있나?라고 생각했지만 건물 안은 별 다른 게 없었다. 그저 그 안에 희미한 불빛이 몇 개의 방에서 새어 나왔다. 그러고는 나를 그 방들 중 한 곳으로 안내했다.

들어가니 웬 커다란 하얀 스크린이 있다. 그리고 각종 행성, 과학 공식들이 벽면에 가득했다. 뜬금없이 갑자기 영상이 나온다. 인트로가 마블 저리 가라였다.

그리고 갑자기 문이 덜컹하고 닫혔다.

그렇다 이곳은 이단이 운영하는 종교 집단인 것이었다. 감히 과학으로 나를 이곳으로 유인하다니.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이내 무서워졌다. 일단 차분히 영상을 봤다. 아인슈타인, 처칠 등 유명한 모든 과학자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이 종교에 대한 기원과 이념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단이 확실해졌다. 영상을 보는 내내 도망칠 궁리를 했다. 하지만 문은 이미 닫혔고 도망가는 시늉을 했다간 영영 이곳에서 나가지 못할 그런 기분이 들었다. 일단 영상이 끝나고 직원이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5년 같이 흐르던 50분 정도가 흘러갔다. 그리고 문이 열리고 다른 직원이 책을 여러 권 낑낑대며 들고 왔다. 그러더니 느닷없이 책을 모두 사라고 한다. 책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이런 식으로 강매를 할 줄이야. 그러면서 영상이 맘에 드냐고 했다. 그리고 조심스레 인적사항을 적으라고 한다.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어쨌든 나는 이곳을 빠져나가야 했다. 눈앞에 있은 이 사람들을 설득할 묘안을 생각해 냈다.


‘너무 멋진 내용이었다. 감격했다. 그런데 나는 내가 모시는 분이 계시다. 토끼교라고 들어봤니? 토끼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어머니이시다. 토끼는 세상에 태어난 영장류 중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이다. 그래서 나는 오래전부터 토끼신을 모시고 있어. 우리는 다른 종교를 섬겨서는 안 되는 회칙이 있다. 만약 어기면 모두가 무시무시한 벌을 받게 되지. 그래서 난 이 종교에 가입할 수 없어. 너희에게도 큰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정말 미안해. 하지만 너도 토끼교에 관심이 있으면 들어올래? 우린 언제든지 누구에게나 열려있거든!‘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그리고 가방에 마침 아침에 디즈니스토어에서 산 커다란 토끼 인형이 있었다. 평소에 토끼를 좋아하고 토끼 캐릭터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하지만 신으로 모실 정도는 아니다.


옆에 있던 직원 세 명의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미친 사람이지만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될 것 같은 그런 조금은 겁이 난 얼굴이었다. 이 사람들도 이런 이야기는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겠지. 나도 이런 말을 처음 해봤으니. 그리고 서로 알 수 없는 눈짓을 하더니 순순히 나를 풀어주었다. 문을 열고 조심히 잘 가라고 한다. 이들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하나를 만들어준 것 같아 뿌듯했다. 물론 나에게도.


이 글을 읽는 누군가 이단에게 잡히면 이 방법을 써보시길 바란다.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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