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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tree Mar 31. 2023

[ 여행과 여행사이 ] 알쓰의 이비자 여행

이비자, 스페인

술을 좋아한다. 하지만 술을 잘 못 한다. 대학교 때 선배 오빠들을 이겨보겠다고 객기로 마셨다. 그땐 체력이 좋았기 때문에 취하질 않았다. 무서운 정신력도 한몫했을 터. 그땐 술을 잘한다고 착각했는데 아니었다.


나와 가장 친한 친구 Y는 술을 좋아한다. 그리고 잘 마신다. 그래서 종종 부러웠다. 중학교 때부터 내내 붙어 다닌 친구. 나에 대해 모르는 것 다 빼고 다 아는 그런 친구. 유일한 공통점은 음악 코드가 같은 것. 둘 다 뮤직 페스티벌을 좋아했고 흥이 많았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이비지가 가고 싶어졌다.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니 함께 가자고 했다. 둘 다 행동파여서 스페인을 찍고 이비자를 가는 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거의 8년 전의 일인데 친구와 함께 갔던 이 여행은 아직도 생생하다. 스페인에 도착하자마자 숙소에 연락을 했다. 하지만 숙소 주인이 굉장히 쌀쌀맞았다. 친구는 열이 받았다. 긴 시간 비행과 여름 날씨 그리고 울퉁불퉁한 유럽의 보도블록은 무거운 캐리어를 끌기에 아주 불편했다. 친구는 숙소 앞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새빨간 립스틱을 발랐다. 꿀리지 말자고 했던 것 같았다. 다시 생각해도 너무 멋있는 내 친구. 기 센 언니 스타일 친구 덕분에 내내 좋은 대접을 받으며 지냈다.


스페인에 있는 내내 친구는 늘 취해있었다. 끼니마다 각종 술을 마셨다. 내가 술을 못 마시니 친구는 마음 놓고 술을 마신다고 하였다. 늘 기분이 좋았던 친구. 나도 좋았다. 어느 날엔 함께 맥주 한 캔씩을 마시고 취중 자전거를 탔다. 함께 아름다운 해변을 달리던 장면은 아직도 생생하다.


이비자에 도착했다. 낮엔 해변에서 자고 밤이 되면 일어나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새벽이 되면 클럽을 여행했다. 이비자 섬 하나에는 수많은 클럽이 있다. 무려 모든 클럽을 위한 순환 셔틀버스도 있다. 이땐 게타(David Guetta) 형님이 DJ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계셨다. 그래서 이비자 모든 버스의 메인 모델로 활약하고 계셨다.


포르멘테라 섬의 해변을 매일 갔다.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맥주를 마시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노래를 들으며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해 질 녘 부스스 일어나 카페 델마(Cafe Del Mar)에 가서 라운지 음악을 들었다. 이비자에 오고 싶었던 이유도 이곳에 와서 라운지 음악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카페 델마에서 석양이 지는 모습을 한참 동안 보았다. 붉은 석양에 빨갛게 물든 친구의 얼굴은 여전히 잊을 수 없다.

새벽마다 클럽 도장 뿌시기를 하던 일. 내 인생에서 가장 체력이 좋았던 때가 아닐까? 새벽 4시가 되면 천장에서 거품이 쏟아지던 클럽. 음악, 술, 담배로 가득했던 그곳. 전 세계의 사람들이 모두 춤을 추고 노래를 하던 섬. 비현실이었지만 순간들을 매 순간 마주하던 곳. 모든 사람들이 취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게 너무 재밌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2023년이 되었다. 친구 Y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예쁜 딸이 있는 워킹맘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태국에 이민을 와서 살아가고 있다. 그땐 우리의 인생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참 재밌는 인생이다.


섬에서 떠날 때까지 친구는 여전히 취해있었고 나는 여전히 말짱했다. 그리고 우리는 섬을 빠져나오는 비행기에서 약속했다. 10년 뒤에 이곳에 다시 오자고. 이제 2년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나는 이비자에서 취하지 않았던 유일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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