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이 죽었다

by 소금

월요일 아침, 네이버 실시간검색어에 모르지만 낯익은 이름이 떴다. 그녀는 나와 같은 모교를 나온 동창생이었다. 이미 학교를 떠난 지 10년이 훌쩍 지났지만, 같은 학년이었던 그녀의 이름을 이내 알아볼 수 있었다.


학창 시절 어렴풋이 남아있던 내 기억 속 그녀는, 언제 어디서나 늘 당당하고 밝고 빛이 났었다. 머지않아 연예인으로 데뷔한다며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으며, 학교 행사나 공연에서는 늘 센터에서 화려하게 공작새처럼 본인의 아름다움과 끼를 맘껏 뽐냈다.


그런 그녀가 10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드디어 본인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그것도 실시간 검색어 1위로.

이름을 눌러보니 사망이라는 두 글자가 프로필에 박혀있었다. 기사에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는 안타까운 탄식보다는 한번 더 클릭을 유도하는 자극이 얼버무려진 저질 내용이 가득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동창들에게 카톡이 왔다. '기사 봤어? ' 우리의 단톡방에는 그녀의 죽음에 대한 추측과 더불어, 고인과 동시에 잠시나마 유명인이 된 그녀에 마지막에대한 찝찝함 섞인 씁쓸함이 흘러넘쳤다. 우리 중 그 누구도 그녀와 딱히 친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동정이나 슬픔보다는 놀라움이 더 큰 게 사실이었다.


그녀는 그시절 같은 년도에 우연히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던 동창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그녀의 인생이 '죽음'이라는 소식 앞에서 조금 궁금해지는 이유는 어쩌면 같은 90년생인 한 여자로서 그녀가 보낸 20대의 삶이 어땠을지 궁금해서 인지도 모른다.


내가 입시의 실패와 함께 재수학원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때, 그녀는 정말로 걸그룹 데뷔를 했다. 일부 친구들은 언제 뜰지 모르는 그녀에게 인스타그램 맞팔 신청과 함께 댓글을 남기며 눈도장 찍기에 바빴고, 일부 친구들은 걸그룹은 이미 넘쳐난다고 조심스레 실패를 점치며 수근덕거렸다. 적어도 그 당시 동창생들 사이에서 그녀의 데뷔는, 나 같은 '같은 학교 나온 사람' 조차도 관심을 기울일만한 크나큰 사건임에 분명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녀의 소식은 아주 조용히 감감해졌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을까. 대학 졸업 후 회사에 들어가 아등바등 사회생활을 하던 스물여섯 즈음, 그녀가 배우로 전향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퇴근 후 간만에 만난 동창과의 술자리에서 소주 한잔을 마시다 말이다. 먹태 하나에 소주 한잔, 그녀의 근황에 소주 두 잔을 마시며 들었던 이야기. 그 이야기가 내가 아는 그녀의 마지막이다. 눈앞의 현생에 지독하게 찌들어있던 나에게, 이제는 얼굴조차 가물가물한 무명 연예인 동창생에게 쏟을 만한 관심이나 에너지는 사치이자 낭비였다.


그녀의 뉴스를 보고 난 뒤, 그녀의 인스타그램을 찾아 들어갔다. 계정 속 그녀는 애석하게도 어여쁜 모습 그대로 아직 살아있었고, 이름 모를 고약하고 천박한 누군가들의 악플과 조롱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 댓글을 보며 나는 맥주를 한잔 마셨고, 이내 이불속으로 들어가 필연적으로 다가올 내일을 위해 눈을 질끈 감았다.

잠이 오지 않는 1분간 나는 그녀의 죽음을 위한 아주 짧고도 어쩌면 조금 성의 없는 묵념을 했다.

이것은 서로 친하지 않았지만 한 때 같은 학교를 나왔던, 스타가 되지 못한 한 배우이자 동창생인 그녀의 죽음을 향한 내 마지막 예의이자 최선의 위로였다.


그리고 오늘도 여전히 내 삶은 어제와 마찬가지로 보잘것 없이 또 굴러가고 있다. 나는 오늘 하루도 출근해서 당연한 월급을 위해 매일을 그저 그렇게 보내고 있다. 이런 내가 '무명배우 한 명이 있었고 , 그런 그녀가 죽은 것을 기억하는 사람 1'로 남아 주는 일 외에 더 해줄 수 있는 애도가 과연 있을까? 이것은 그저 현생에 최선을 다해 살고있지 않아 가슴 한켠이 찔리는 한 동창생의 옹졸한 변명일까? 그래도 확실한 것 한 가지는 이제 난 농담으로조차 죽음을 가벼이 논하지 못하는 사람이 돼버렸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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