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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국인 Sep 01. 2023

슈아 속상해

230901 슈아가 태어난 지 693일

22개월을 넘어선 슈아는 이제 거의 대화가 가능할 정도로 말이 트였다. 물론 아직 발음이 완벽하지는 않아서 해석의 영역이 더 많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 과장해서 대담을 나누는 게 가능할 정도로 많이 늘었다. 


말이 늘은 것만큼 또 늘어난 게 있는데 바로 본인의 감정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목소리 톤이나 표정과 몸짓으로 본인의 감정을 표현했었는데, 요즘에는 정확한 단어로 본인의 감정을 설명한다. 


'슈아 이거 좋아'

'슈아 재밌어'

'고마워'

'슈아 무서워'

'00 보고 싶어'

'신난다!'


이렇게 상황에 따라서 알맞은 단어를 골라서 말하는 게 제법 신기한데, 그중에서도 요즘 제일 많이 하는 말은 '슈아 속상해'다.


주로 본인이 하고 싶은 걸 아빠나 엄마가 여러 이유로 못하게 하거나,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없다거나, 자기 얘기를 잘 알아듣지 못하면 본인 침대로 쪼르르 달려가서 엎드려서 슬픈 표정과 함께 속상하다고 말한다. 그 모습이 귀여우면서도 슬퍼하는 그 감정이 어찌나 절절하게 담겨있는지 정말로 죄인이 된듯한 기분이 든다.


그래서 웬만하면 속상한 걸 풀어주려고 하는데,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하려고 한다거나 지금 해결해 줄 수 없는 상황일 때는 아주 난감하다.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는데, 그러면 아빠에게 더 배신감을 느낀다는 눈빛과 말투로 속상하다고 하는 말을 듣는 이 아빠는 더 속상하다는 걸 알려나? 


본인의 감정과 의사를 점점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게 되면서 훈육도 더 어려워진다. 예전에는 표현을 못해서 그랬는지 얌전히 잘 듣고 있었는데, 이제는 뭐라고 하면 바로 '슈아 속상해'를 시전 하며 들으려 하지 않으니 이러다가 좀 더 지나면 말싸움하는 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말이 늘면서 재미난 일도 많다. 소꿉놀이를 하면서 '아빠 오렌지주스 먹고, 슈아는 소시지 먹어'라고 하는 등 구체적인 상황묘사를 한다거나 '아부지! 슈퍼샤이 틀어주세요!'라고 하면서 본인이 듣고 싶은 노래를 요구하기도 한다. 아부지라는 단어를 알려준 적도 없어서 처음 저 얘기를 들었을 땐 슈아에게 아부지라고 한 거 맞냐고 다시 물어볼 정도였다.


하루하루 늘어가는 슈아의 언어를 보면서 때로는 당혹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고, 살짝 부담스럽기도 하면서 이 순간을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하다. 앞으로도 이 작지만 귀중한 성장의 순간을 놓치지 않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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