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글을 보지 않고 사진만 읽어도 좋을 만큼 사진으로 꽉 차있습니다. 사진가의 사진이 아니어서 더 좋습니다. 대부분 패노니카가 촬영한 사진입니다. 패노니카가 누구인지 멍크가 누구인지는 사진 밑에 달린 작은 캡션만으로 얼굴을 매칭하면서 사진을 읽어나갔습니다. 나도 이런 사진을 찍고 싶다는 맘이 든 건 사진의 기술적인 요소 때문이 아니라는 건 책 속의 사진을 보면 단박에 알게 되실 겁니다. 낸골딘의 사진에서,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사진에서, 그리고 애니 레보비츠의 사진에서도 이런 느낌을 받았었죠. 사진학교에서 배운 사진기술이 쓸모없어지는 순간들입니다. 내가 그곳에 있을 수 있어야 허락되는 사진이고, 나를 버리지 않고서는 얻을 수 없는 사진입니다. 고상한 척하는 사진과는 결이 다르고, 작가의 생각을 강요하는 콘셉트 사진처럼 폭력적이지도 역겹지도 않습니다. 사진으로 완성하려는 애쓴 흔적이 없기에 사진 속 이야기에 쉽게 스며듭니다.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 속의 장면과 유사합니다.
이 사진을 보는데, 예능프로그램에서 털옷을 입고 나온 가수 이상민 씨가 떠올랐어요. 다 이런 분들의 영향이겠죠?
눈에 들어온 사진 중 하나죠. 땀일까요? 눈물일까요? 땀이 흘러서 눈을 감았을까요? 눈물로 연주하는 걸까요? 눈물이 앞을 가려 내가 바라보는 대상을 보지 못하는 그 순간에 셔터를 누르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거짓으로 눈물을 연기할 수도 있지만, 거짓 눈물일지라도 눈물 나는 그 순간의 감정은 진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눈물에 대한 생각이 많아요. 흰색 수건을 올려놓은 걸 보면 땀을 많이 흘리는 연주자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사진을 보는 이의 마음상태에 따라 눈물이 될 수도, 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누가 이런 장면을 사진가에게 허락할까요? 다큐멘터리 사진가에게 필요한 덕목 중의 하나가 '라포 형성'이라고들 합니다. 2시간짜리 강의를 해도 '아이스브레이킹'을 어떻게 하느냐, '첫마디'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따라서 그날의 강의 분위기가 결정되듯, 자신의 민낯을 가감 없이 솔직히 사진작가에게 드러내 보인다는 것은 작가와의 관계가 어느 정도여야 가능한 걸까요? 진짜 이야기는 좋은 구도와 적정 노출이 만들어주는 것은 분명 아닌 것 같네요.
이렇게 사진을 끝까지 다 살펴본 후, 재즈거장 300명의 세 가지 소원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책표지 주인공인 텔로니어스 멍크가 300명 중 첫 번째로 소원을 말해요. 글은 오히려 사진보다 더 빨리 읽고 있어요. 내 맘에 드는 소원 3가지를 찾으면서 빠르게 읽어나갔죠.
1. 음악적으로 성공하는 것
2.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3. 당신처럼 못 말리는 친구를 얻는 것
읽어나가는 속도를 늦추게 만든 글이에요. "나머지는 내일 이야기할게요"에서 꽂혔어요. 현재를 사는 뮤지션이란 생각이 들었죠.
사진전문 출판사에서 재즈음악 관련 책이 출간되어서 더 관심 있게 살펴보았고, 책에는 <패노니카>가 촬영한 당대 거장들의 밀착사진이 사진집을 이루고 있었어요. 안목출판사의 높은 안목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평범해 보이는 이 사진들은 절대 아무에게나 허락되지 않는 장면들이죠. 살아있는 상업사진의 거장인 여류사진작가 애니레보비츠의 롤링스톤즈 뮤지션 사진들이 떠올랐어요.
영국 귀족 신분인 패노니카는 재즈 음악인들의 든든한 후원 자였다고 해요. 텔로니어스 멍크의 <패노니카> 연주곡을 북토크 때 감상할 수 있었어요. 귀족들에겐 인정받지 못한 음악이었다고 들었어요. 백인 귀족여성 후원자 패노니카에게 바치는 <패노니카> 곡의 불협화음이 내겐 아름답게 들렸어요. 멍크는 백인 여성 후원자와 흑인 재즈 음악인 사이의 관계를 불협화음으로 표현하면서도 조화로운 재즈음악으로 완성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불협화음이 당시 귀족들에겐 흑인과 백인의 관계만큼이나 어색하게 들렸는지도 모르겠어요.
황덕호 선생님의 차분한 설명과 살짝 알코올 도수가 있었던 맥주 한잔과 함께 감상한 재즈음악은 그 자체로 치유받는 느낌이었습니다. 황덕호 선생님은 KBS 클래식 FM '재즈수첩'을 25년째 진행하고 계셨는데 전 처음 알았어요 ㅠ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고 계신데요. <황덕호의 Jazz Loft> 구독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