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로 소식을 알게 되었어요. 2022년 서울에서 부산으로 옮겨 새롭게 출발한 안목 출판사의 사진갤러리 겸 책방이 문을 닫았어요. 전시회 때 꼭 방문하겠다고 문자로 약속을 드렸었는데, 결국 만남도 없이 헤어졌어요. 그동안 너무 무심했어요. 첫사랑도 이런 식이었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요. 전 늘 그랬어요. 바쁘다는 핑계로 찾아뵙지 못한 고향 친척 어르신의 부고를 접한 듯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지. 못. 미.
사진을 공부하기 전부터 책장엔 '사진 강의노트'라는 책이 있었어요. '박태희' 작가님과 필립퍼키스 사진작가를 알게 해 준 책이죠. 처음엔 박태희 작가님을 번역가로 알았어요. '사진강의노트' 책의 저자 필립퍼키스 사진작가(교수)의 제자라는 것은 한참 후에 [안목출판사]에서 책이 출판된 이후에 알게 되었죠. '사진강의 노트'는 [눈빛]이란 출판사에서 짙은 갈색 표지로 먼저 출판되었고, 이후 [안목출판사]에서 이어서 출판되었는데요. 하늘색 커버였다가, 지금은 흰색에 가까운 진짜 노트 같은 디자인 표지를 가지고 있어요.
[안목출판사]의 책은 아날로그 책의 힘을 느끼게 해 줘요. 종이책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게 하죠. 책의 컬러, 여백, 질감, 냄새까지 나만의 감각기관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는 전자책에서는 얻을 수 없는 무언가가 있어요. 사진책은 종이책으로 접해야 하는 것 같아요. 이 흰색표지의 '사진강의노트'는 1쇄 본과 2쇄 본 종이가 달라요. 얼마 전에 2쇄가 드디어 나왔어요. 1쇄 본의 마지막 두 권을 제가 사버렸죠. 온라인에서 구매한 후 [절판]이란 표시가 뜨는데 기분이 묘했어요. 그래서 1쇄 본 한 권은 비닐도 뜯지 않은 채로 보관하고 있어요. 원래는 선물하려고 두 권을 주문했었는데, 한 사람한테만 선물하고 비닐을 뜯지 않은 다른 한 권은 영구보관하기로 맘먹었죠. 2쇄 본도 현재 5권을 가지고 있어요. 안목출판사 대표님이 보내주셨어요. 글 말미에 그 이유를 밝혀둘게요.
사진강의 노트는 얇은 책이에요. 그냥 읽으면 1시간이면 충분히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텍스트가 많지 않아요. 그런데 아직도 읽고 있어요. 읽지 않고 곁에 두고 있어도 너무 좋은 책이에요. 그냥 노트라서 들고 다녀도 너무 자연스러워요. 가볍기도 하고요. 외롭지 않게 해요.
'사진강의 노트'라는 책으로 박태희 작가님(대표님)을 알게 되었고, 필립퍼키스 사진작가도 알게 되었어요. 난 그냥 필립 할아버지라고 불러요. 물론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어요. 혼자 그렇게 부른다는 말이에요. 얼마 전 두 눈을 모두 실명하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또 가슴이 철컹하고 내려앉았어요. 직접 사진을 배운 적은 없지만 내 생각에 힘을 실어준 할아버지예요. 저랑 헤어스타일도 비슷해요. 나에겐 몇몇 철학자와 동급이죠. 나도 나름 사진으로 유학을 다녀온 유학파죠. '사진강의노트'라는 책을 알게 되면서 박태희 작가님의 그 학교로 유학을 갔어야 하는데, 그래서 필립 할아버지한테 수업을 들었어야 하는데라고 후회한 적이 있어요. 한때는 언젠가 필립 할아버지를 만나서 사진이야기를 마구마구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이젠 더 가까워지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운 마음이 앞서요. 헤어질 그날이 두려워서 그냥 멀리서만 바라보고 있어요. 안목출판사도, 박태희 작가님도 그래서 그만큼의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한 번도 안목출판사의 갤러리와 전시회에 가질 않았거든요.
그래서 미안해요. 작가님~
책방이 문을 닫을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사진을 하고 있고, 매일매일을 사진을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다가가지 못했어요. 인스타로 책방과 갤러리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며칠을 멍하게 있었어요. 작가님께 '미안해요'라는 짤막한 문자 한 통을 보낸 것이 전부였어요.
며칠이 지나고, '내가 뭘 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내가 이어서 하면 되지 않을까?' '사진전문 책방을 내가 하면 되지 않을까?' 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으니, 공간은 충분하고, '한쪽 공간을 책방으로 꾸미면 되지 않을까?' 란 생각이 들었죠. 뭐 어차피 판매할 생각으로 하는 건 애초에 아니었고,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사진책을 소개하는 기쁨이라도 있을 테니..., 설레기 시작했어요. 사실, 사진관엔 이미 고객들 대기하는 동안 구경하도록 사진책, 사진집이 제법 있긴 했죠. 달라지는 건 정식으로 사업자등록증에 서점을 등록하고, 출판사로부터 서점자격으로 책을 사입한다는 개념만 달라질 뿐이었죠.
이렇게 상호명 없는 사진책방을 시작했습니다.
마침 '사진강의노트' 2쇄 본이 출판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안목출판사]에 정식 서점자격으로 책을 주문했어요. 뿌듯했어요. 문자를 보냈어요. "서점자격으로 '사진강의노트' 5권 주문하겠습니다."라고 박태희 작가님께 문자 한 통을 보냈어요. 이제야 내가 뭔가 할 일을 한 기분이었어요. 작가님은 개업축하 선물이라고 5권과 작가님의 다른 두 권의 책을 견본과 함께 보내주셨어요. 하지만 정식으로 구매하고 싶었죠. '사진강의노트'라는 책은 작가님의 마음을 온전히 받고 싶어서 무상지원을 수락했지만, 다른 책들은 강제로 입금해 드리고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다음 주엔 [안목출판사]로부터 다른 사진집도 입고될 예정입니다. 비어있는 피운포토 온라인 스토어도 책으로 채워봐야겠어요. 저만의 큐레이션을 해볼까요? 이젠 '사진강의노트' 는 저에게 주문하시면 됩니다.^^ 작가님(대표님)의 소개로 다른 출판사도 알게 되어 사진책은 계속 조금씩 늘어날 것 같아요. 팔리진 않겠지만요 ㅎ 사진책방을 운영하면 재미있는 일도 많이 생긴다고 작가님이 말씀해 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