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포 가는 길은 정 씨, 영달, 백화라는 세 인물이 만나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가는 길] 이란 제목의 책을 세권 읽었습니다. [삼포 가는 길], [천마총 가는 길], [해남 가는 길]. 공통점은 모두 남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남쪽이라는 곳의 상징적 의미가 이상향, 꿈, 희망 같은 것이기 때문일까요? 제가 읽은 [~가는 길]은 세권뿐이었지만, 영․호남을 모두 여행할 수 있었습니다.
네이버 지도에서 삼포의 위치를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곳은 5.2km에 이르는 영산강 하구 둑으로 이어져 있었고, 갈마(갈망?) 산 근처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남쪽 끝이라고 말했던 정 씨의 말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오히려 남쪽 끝이라면 해남일 테니까요―, 갈마산 근처에 위치한 삼포의 토질이 비옥하리라는 데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아마도 고기는 영산호가 아니면 영암호에서 낚았을 것이 분명합니다.
'~가는 길'이라고 제목을 정한 것을 보면 '삼포'라는 종착지보다는 그 여정(가는 길)에 작가는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 씨와 영달이 애써 그녀를 잡아다 주고 몇 푼의 노자라도 챙기지 않았던 것은, 이곳에서는 의리로 묘사되고 있지만, 정 씨와 영달은 이미 이 여정의 결말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영달의 기차역에서의 말처럼 백화라는 여자가 스스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들의 공통점이라고 하면 감옥(정 씨), 빚(영달), 지긋한 창부생활(백화)의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했고, 그러한 현실을 견뎌온 힘은 그들만의 이상향, 꿈, 희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공간적 개념인 어떤 장소일 수도 있고, 성취하려는 목표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현실을 데리고 다니잖아요. 우리가 다다르려는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 이미 그곳은 우리의 현실이 되고 마니까요. 항상, 이상적 가치는 현실의 저편에 있고, 그 이상향 쪽에서 바라본 이곳은 또한 최고의 가치로 보일 수도 있겠죠. 즉, 그 국밥 집은 그녀의 추억이 담긴 또 하나의 이상향인 듯합니다.
이 작품 속의 기차는 단순히 그 시대의 주된 장거리 교통수단일 수도 있겠지만, 꿈을 실어 나르기엔 아주 적절한 소재로 생각됩니다. 그들 앞에 놓인 현실 속의 레일은 둘로 갈라져 있지만, 아득히 보이는 레일의 정점 그곳은 바로 그들의 이상향이 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가도 이곳(현실)에서는 보이던 그 정점(이상향)은 끝 닿는 곳 없이 항상 평행(현실)을 이루기만 합니다.
작중 인물 중의 정 씨는 과거 속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영달은 정 씨와 결국 동행하게 됩니다. 같은 고향을 찾아간다는 점과 어머니를 상징하는 것 같은 여성(백화)을 만나는 장면은 생각하게 만듭니다. 그저 길을 가다 만났다면 우연일 테지만, 어머니의 자궁 속 양수 같은 분뇨를, 가장 깊숙이 숨겨져 있는 본래의 고향인 그곳을 드러내 보임으로써 예사롭지 않은 만남은 이루어집니다. 이 만남 자체가 인간의 회기 본능 같습니다. 심지어 발을 다친 백화를 영달은 업어가며 부축합니다. 이것은 남자로서의 호의 내지는 동반자로서의 의리라기보다는, 그녀를 버리고 간다면 그들이 찾아갈 고향마저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결국, 영달은 백화를 홀로 떠나보내게 됩니다. 고향과도 같은 그녀를 떠나보낸다는 것은 결국 그곳(이상향)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녀와 함께 함으로써 현실이 되어버리기보다는 떠나보냄으로써 영원히 이상향으로 남아주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백화(白花)입니다. “흰 꽃”이라는 뜻의 그녀의 이름 속에는 “순수”(이상향)의 향기가 물씬 풍깁니다. 하지만 이 또한 가명일 뿐이며, 그녀가 떠날 때 “점례”라는 본명을 밝힘으로써, 도달하고자 하는 완전한 이상향의 종착지에 대한 기대는 무너져 버립니다. 하필이면 그녀는 외눈 쌍꺼풀을 가지고 있습니다. 완성되지 못한 쌍꺼풀이 주는 의미도 역시 완성될 수 없는 이상향적 가치라 생각됩니다.
나는 작중 인물들처럼 과거 속에 이상향을 두지는 않습니다. 현실을 지탱해 주는 힘인 꿈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방향과 나의 이상향을 과거에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곳은 계속 멀어져만 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