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 죽은 아들의 옷을 입고 자는 여자 / 김철권 지음
사진 관련 도서를 전문으로 출판하는 안목출판사에서 조금 색다른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총 4권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궁금했습니다. 왜? 사진집이 아니지?, 사진작가가 아닌 정신과 의사?, 왜? 안목출판사에서 정신과 의사가 전하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을까? 궁금했습니다. 나는 사진의 치유적 효과에 관심이 커지면서 대학원에서 예술치료를 공부하고 있습니다.(지금은 잠시 휴학 중이지만..) 그래서 사진출판사에서 펴낸 정신과 의사 이야기는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시나 책의 표지와 중간중간엔 사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자가 직접 세계 60여 개국을 여행하며 촬영한 사진이었습니다. 수만 장의 사진 가운데 36장이 책의 표지와 본문에 실렸습니다. 사진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어서, 늘 그렇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사진부터 아주 천천히 끝까지 살펴보았습니다. 50이 넘어 다시 영화를 전공하면서 예술학 박사학위까지 따낸 독특한 이력의 정신과 의사 김철권 작가는 사진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탐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사진이 너무 좋잖아!" 전문사진작가의 작품사진처럼 세련된 사진에 오히려 살짝 실망하며 글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아마추어의 시선을 기대했었나 봅니다.
1권의 표지 제목 '죽은 아들의 옷을 입고 자는 여자'가 첫 편이었습니다. 저자인 정신과 의사가 만난 한 분 한 분의 사례를 단편 소설처럼 엮었습니다. 첫 편을 읽었을 뿐인데, 먹먹한 눈물이 납니다. 대학원에서 예술치료를 공부하면서 사례집을 여러 편 읽어보았지만, 김철권 작가의 글은 좀 다릅니다. 단편 소설 같습니다. 또 영화를 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자 소개를 찾아보았습니다. 역시나 부산의대 재학시절 문학상을 받은 이력이 있더군요. 소설가나 철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지만 어머님의 바람으로 의대를 진학하게 되었다네요. 어쩐지...
[울기 위해 노래방을 찾은 남자]
127p 마지막 단락,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처방을 내겠습니다. 집에서 두 분이 부둥켜안고 소리 내어 우십시오. 온몸의 물이 말라버릴 때까지 우십시오. 함께 운다면 아들을 잃은 슬픔이 두 분의 눈물에 씻겨 나갈 겁니다.""
언젠가 가족에 대한 생각으로 사진관 문을 닫고 창고에 웅크리고 앉아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적이 있습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뵈러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우리 몸이 수분으로 가득 차 있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마음의 짐이 눈물에 씻겨 나갈 수 있음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시한부 인생]
142p
"우리 모두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단지 그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을 뿐이지요."
언제 죽을진 모르지만 우리 모두는 결국 종착지가 있는 삶을 살고 있죠. 하지만 끝없이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으로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내달리면 종착지에 더 빨리 다다를 뿐인데도 말이죠. 스쳐 지나가는 한 정거 한 정거를 소중히 기억하고 천천히 즐기면서 살고 싶습니다.
이 책을 중간쯤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진정한 위로는 위로의 말 몇 마디 혹은 처방약이 아니라, '그 사람이 되어 주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쉽게 '공감'이란 말을 사용하지만 공감한다는 것은 말처럼 쉽진 않은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된다는 것은 머리로만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물리적으로 심장이 뛰어야 하고, 때론 몸으로 참여해야 할 수도 있어요. 학교에서 공부할 때, 이런 과정에서 오는 역전이를 조심해야 한다고 배웠어요. 물론 역전이의 순기능 또한 배웠죠. 하지만 진짜 공감은 이런 계산 없이 나타나는 것 같아요. 전문지식으로 무장한 전문가의 문법적 오류가 없는 조언보다, 유가족의 곁에서 함께하는 자원활동가의 손길이 더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다른 책에서 읽었어요. 소개합니다.
[책] 당신이 옳다
저자 : 정혜신 지음
[자격증이 무용지물인 트라우마 현장]
트라우마 현장에선 심리치유 관련 전문가 자격증이 무용지물이라는 걸 숱하게 목격했다.---(중략)--- 세월호 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초기에 많은 (심리치유) 전문가들이 현장에 왔지만 이내 거의 사라졌다. 대신 "집에 앉아만 있을 수 없어서 무작정 왔다"---(중략)---그들은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라며 울면서 무슨 일이든 했다. 피해자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했으며 한없이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자신의 슬픔과 분노, 무력감을 호소하면서도 유가족들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중략)--- 피해자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결정적인 위로다.---(중략)--- 자원활동가들 중 몇몇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치유의 원리를 자기 언어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한다.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치유의 원리에 가장 근접한 것이라고는 짐작도 못한다.---(중략)---그들의 깨달음과 그 바탕에서 나오는 활동은 이론으로 무장한 전문가의 말과는 전혀 다른 결의 힘과 효력이 있다.
문법 학습만으로 그 나라의 언어를 온전히 습득하지 못하듯이, 심리치료 이론 학습만으론 은어를 공감할 방법이 없을 듯합니다. 그렇다고 시수만 채우는 수치화된 현장경험과 수퍼비젼은 자원활동가의 몸이 반응하는 경험과는 결과 질이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임상실습은 단순히 회차로 경험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무조건]
223p
인간의 적응 능력은 경이로울 정도로 뛰어나기에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회복된다. 오직 시간이 문제일 뿐이다. 도와 달라는 손길을 뿌리치지 않고 계속 잡고만 있으면 웬만한 문제는 해결된다. 그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버텨주는 것, 버팀목 역할을 하면서 시간을 버는 것, 그게 치료자가 해야 할 일이다.
너무도 힘들었을 때, 내 손을 잡아줄 사람이 주변에 아무도 없었을 그때, 버틸 수 있도록 시간을 벌게 해 준 것은 매일 들었던 한 곡의 노래와 눈물이었습니다.
"형도 그랬단다, 죽고 싶었지만, 견뎌보니 괜찮더라, 맘껏 울어라 억지로 버텨라,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뜰 테니, 바람이 널 흔들고, 소나기 널 적셔도, 살아야 갚지 않겠니. 더 울어라 젊은 인생아, 져도 괜찮아, 넘어지면 어때, 살다 보면 살아가다 보면, 웃고 떠들며 이날을 추억할 테니~ [노라조 / 형]
억지로 버티라는 말이 나에게 힘을 주었죠. 더는 못 버틸 것만 같았던 그 순간에 들려온 이 노래가사가 힘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버티면 아주 조금씩 조금씩 삶은 밝아지더군요. 이렇게 힘이되어준 노래를 소개할 정도로 말이죠.
[취생몽사주]
267p. 268p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에 기억을 지우는 술 '취생몽사주'가 등장하는 모양이에요. 우리는 모두 아픈 기억을 잊고 싶어 하니 그런 술이 있다면 저도 한잔하고 싶은 맘도 생기네요. 마지막 단락에 프로이트의 말을 소개하고 있어요.
프로이트는 말한다. <인간은 사건 때문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오직 기억 때문에 괴로워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증상은 기억의 상징이다. 기억이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라 증상이다.
기억 때문에 우리는 괴로워한다는데, 저는 역행하는 프로젝트를 얼마 전 시작했어요. 참여자를 모집 중이죠. 마음치유 사진촬영 프로젝트, <조각모음 리추얼>입니다. 기억의 조각을 다시 찾고 아픈 기억이 있다면 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직면하려고 시도하고 있어요. 세월 속에 왜곡된 기억이 우리를 괴롭힐 수도 있고, 흐려진 기억은 잠재의식, 무의식 속에 갇혀 미해결과제처럼 남아 나도 모르게 불안과 우울로 얼굴을 내밀수도 있으니까 말이죠. 프로이트의 말처럼 기억 때문에 우리는 괴로워하고 있어요. 사건 때문이 아니라면 그 사건을 <조각모음 리추얼>을 통해 다시 만나서 지금의 내가 그 사건을 제대로 다시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책을 3/4쯤 읽고 나니 한 편 한 편의 사연을 읽어 내려가는 게 숨 가쁘게 느껴집니다. 282p 마지막 글에서 작가는 '말을 많이 하고 나니 갑자기 피곤함이 몰려온다.'라고 글을 마칩니다. 저 역시 기가 빨리는 느낌마저 듭니다. 이렇게 강한 사연을 가진 내담자를 계속해서 쉼 없이 만난다면 가슴이 터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을 통해 사연을 접하는 거지만, 내담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다녀가고 나면, 크게 심호흡을 하게 됩니다. 어떤 내담자의 사연에선 눈물이 나기도 하는데, 차라리 눈물이 나면 다음 내담자를 맞이할 마음속 공간이 생깁니다. 글로 읽고 있으니 울기라도 할 수 있습니다. 사진치유에 대한 관심으로 대학원에서 예술치료를 공부하고 있지만, 끝까지 학업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정신과 의사 선생님처럼 대면상담을 통해서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더욱더 자신이 없습니다. 책의 3/4을 읽는 동안 한 가지 든 생각은 내담자 한 분 한 분을 그냥 꼬~옥 안아주면, 그렇게 하면 해결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것이 진짜 치료에는 위험할 수 있는 역전이 현상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답답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269p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은 위험한 말이다]의 상담내용이 더 깊게 박힙니다.
[삶은 볼래 그런 것이다]
317p 마지막 문단입니다.
그러니 무너지지 않고 꾸역꾸역 살아나가면 된다.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달하듯이, 어떤 생각이 들더라도 하루하루 버티면서 살아가다 보면 많은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은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가면 모두 다 해결된다. 그게 인생이고 그게 삶이다.
억지로 버티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던져진 이 세상을 그래도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특별히 무언가를 이루는 것이 삶이 아니라, 우리의 삶은 그냥 이런 것 같네요.
[성깔이, 텅빈이 그리고 기대니]
336p
힘든 환자를 만날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든다. '도대체 그녀와 나는 전생에서 무슨 인연이었을까? 내가 얼마나 큰 은혜를 입은 것일까?' 그 더운 여름이 가고 선선한 가을이 오듯이 그녀의 흔들리는 마음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기를 바랄 뿐이다.
마지막 단락을 읽으면서 갑자기 나와 얽혀있는 인연 중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떠올랐어요. "내가 갚아야 하는 차례구나. 내가 많은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구나" 원망, 서운함, 분노, 복수심 같은 감정이 측은한 맘으로 바뀌고 있어요. 갚아야겠어요. 견뎌야겠어요. 그게 인생이구나 싶어 졌어요.
[위로와 공감 사이]
344p
위로와 공감의 차이는 무엇인가? 위로는 그 상황이나 행동에 초점을 맞추어 제안이나 조언, 따뜻한 말을 하는 것이다. 반면 공감은 느낌과 감정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뭐라고 말하기보다는 그냥 조용히 함께 있는 것, 말없이 옆에 앉아 어깨에 손을 얹는 것, 말없이 손을 잡아주는 것, 그것이 공감이다. 공감은 말 없는 위로다. 심리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위로가 아니라 공감이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다고 느길 때만 비로소 마음이 열리고 입을 연다.
언제나 너무 힘들고 지칠 때 원하는 만큼 쉬어갈 수 있는 나무 그늘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